정치사회

최근세사의 재인식(3)

우현 띵호와 2021. 9. 22. 23:53

최근세사의 재인식(3)

독일은 우리나라에서 광부가 가기 전에 유고슬라비아, 터키,

아프리카 등지에서 많은 광부들을 데리고 왔었다.

이들은 아주 나태하여 결국 광산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광부들이 투입되면서 생산량이 엄청나게

높아지자 독일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였고,​

이렇게 근면한 민족을 처음 봤다면서 한 달 급여 120달러에

보너스를 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한편 왜, 간호사가 필요하였느냐?

국민소득이 올라가니 3D 업종이나 힘든 일은

기피하는 현상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특히 야간에는 일할 간호사가 없었다.

특근수당을 많이 준다 하여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한국 간호사들에 대하여서는

아주 후진국에서 왔는데 일을 맡길 수 없다하여

​일부는 죽은 사람 시체를 알코올로 닦고,

수의를 입히는 일도 하였으며,

일부는 임종이 가까운 환자들을 돌보도록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근무하였는데,​

한국 간호사들은 환자가 사망하면

그 시신을 붙들고 울면서 염을 하는 것을 보고

독일 사람들이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담당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든지 아니면

갑자기 간호사가 없을 경우면 주사도 놓고

환자를 다루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한국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의료 분야를 맡기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위급한 사고환자가 피를 흘리면서 병원에 오면

한국 간호사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그 피를 온몸에 흠뻑 적시면서도

응급환자를 치료하는가 하면,

​만약 피가 모자라 환자가 위급한 지경에 빠지면

한국 간호사들은 직접 수혈을 하여 환자를 살리는 등

​이런 헌신적 봉사를 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은 간호사가 아니라 천사다”하면서

그 때부터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하였고,

​이런 사실이 서독의 신문과 텔레비전에 연일 보도되면서

서독은 물론 유럽 전체가 "동양에서 천사들이 왔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우리 간호사들의 헌신적 노력이 뉴스화 되자,

서독 국민들은 이런 나라가 아직 지구상에 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라며,

​이런 국민들이 사는 나라의 대통령을 한번 초청하여

감사를 표하자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특히 도시에 진출한 간호사들의 실력이 독일 간호사들 못지않다는

인정이 일고 있던 시기,

​한독협회 '바그너 의장'은 병원에 오면

꼭 한국 간호사만 찾는데 왜 그러느냐고 기자가 물으니​

'주사를 아프지 않게 놓는 특별한 기술자'라 하여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는 것이다.​

서독정부도 '그냥 있을 수 없다'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하였다.

​이것이 단군 이래 처음으로 우리나라 국가 원수가

국빈으로 외국에 초청되는 첫 번째 사례였다.

​우리로서는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할 다급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모든 준비를 하였으나

제일 큰 난제는 일행이 타고 갈 항공기였다.

​한국이 가진 항공기는 일본만을 왕복하는 소형 여객기로

이것을 갖고 독일까지 갈 수 없어,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전세내기로 하였는데,

​미국 정부가 군사 쿠데타를 한 나라의 대통령을 태워갈 수 없다하여

압력을 가해 무산됨으로 곤경에 처한 것이다.

​​그래서 연구한 것이, 어차피 창피는 당하게 되었는데 한 번 부딪쳐 보자,

​이래서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었던 최두선 선생이 특사로 서독을 방문하여,

​<뤼브케>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각하!' 우리나라에서는 서독까지 올 비행기가 없습니다.

독일에서 비행기를 한 대 보내주실 수 없습니까?

​당시를 회고하는 백 박사에 의하면

그들이 깜짝 놀라 말을 못하더란 것이다.

​결국 합의가 된 것이 홍콩까지 오는 여객기가 서울에 먼저 와서

우리 대통령 일행을 1 ‧ 2등석에 태우고 홍콩으로 가서

​이코노미 석에 일반 승객들을 탑승케 한 후

홍콩, 방콕, 뉴델리, 카라치, 로마를 거쳐 프랑크푸르트로 간 것이다.

​1964년 12월 6일, 루프트한자 649호기를 타고 간 대통령 일행은

쾰른 공항에서 뤼브케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총리의 영접을 받고

회담을 한 후,​다음 날,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우리 광부들이 일하는 탄광지대 '루르' 지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서독 각지에서 모인 간호사들과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까지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탄가루에 범벅이 된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강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새까만 얼굴을 본 박정희 대통령은 목이 메기 시작하더니

애국가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였고, 연설 중 울어버렸다.

광부들과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부둥켜안고 통곡의

바다를 이루었으니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독일 대통령도 울었고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마저 울었다.

​떠나려는 대통령을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았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대한민국 만세", "대통령 각하 만세"로 이별을 고하였다.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계속 우는 우리 대통령에게

뤼브케 대통령이 자신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주기도 하였는데

대통령을 붙들고 우는 나라가 있다는 이 사실에

유럽의 여론이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선 것이다.​

​박 대통령 방문 후 서독은 제3국의 보증이 없이도 한

국에 차관을 공여하겠다는 내부결정을 하였지만

​국제관례를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이 받는 월급을 일개월간 은행에 예치하는 조건으로

당​초 한국이 요구하였던 차관 액보다 더 많은 3억 마르크를 공여하였다.

​서독에 취업한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이 본국에 송금한 총액은 연간 5000만 달러,

이 금액은 당시 한국의 국민소득의 2%를 차지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으며,

이 달러가 고속도로와 중화학공업에 투자되었다.

​이후 한국과 서독 간에는 금융 문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진정한 우방이 되었다.

​서독에서 피땀 흘린 광부와 간호사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조국근대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위대한 '국가유공자'들임에도

우리들은 그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국가는 당연히 그들에게 '국가유공자'로 대우하여야 한다.

​아우토반, 1920년대 말, 히틀러가 만든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다,

히​틀러는 이 도로를 전쟁을 위하여 만든 것이지만

이 도로가 있었기에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경제부흥의 초석이 된 것이다.

​이 도로를 달리던 우리 대통령은 세 번이나 차를 세우고서

도로 상태를 면밀히 조사하면서 울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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