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57)

우현 띵호와 2021. 9. 26. 23:48

방랑시인 김삿갓 (57)
* 첫날밤 소박맞은 세 자매 "하편"

..인생은 모름지기 여자로 태어나지 말지어라..

"첫날밤에는 신부가 반드시 옷을 벗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

옷을 제가 직접 벗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신랑님이 벗겨 주시겠습니까 ? "
큰언니는 옷을 벗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워 소박을 맞았고,

둘째 언니는 자기 손으로 옷을 벗은 탓에 소박을 맞은 고로,

신부 동순은 신랑의 의사를 존중해 줌으로써 소박을 면할 생각 이었다.

그러나 신랑은 신부로 부터 그런 질문을 받자,

눈 알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놀라는 것이었다.
"뭣? 이게 무슨 소리야 ! 신부가 제 손으로 직접 옷을 벗겠다고 ? "

"신랑께서 옷을 벗겨 주시거나,

저더러 벗으라고 하시던가 신랑님 좋으실 대로 하세요."

신부는 어떡하던지 소박을 맞지 않기 위해서

자기 정신이 아닌 듯 말했던 것이다.

신랑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입을 딱 벌린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용수철 퉁기듯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지르는데,
"계집년이 얼마나 많이 놀아 먹었으면 이 모양이야 ! "
하며, 쏜살같이 밖으로 달아나 버리더라는 것이다.

"하하하, 소박맞을 운명은 어쩔수 없었던 모양이군요."
"모두가 아버님 산소를 잘못 쓴 탓이예요."
주인 노파는 자기네 삼 형제가 한결같이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것을

산소를 잘못 쓴 탓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산소를 잘못 써 집안이 망하거나

알수 없는 우환과 질병에 고생 한다는 말은 들은적 있으나,

딸 삼형제가 첫날밤에 모조리 소박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그후로 세 분은 아무도 재혼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 "
김삿갓이 이렇게 묻자 주인 노파는 펄쩍 뛸 듯이 놀라며 말한다.
"여자가 한번 혼인을 했으면 그만이지, 재혼은 무슨 재혼이예요."

"그렇다면 세 분은 명색만 혼인을 했다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일생을 처녀로 늙어 오신 것 아닙니까 ?

"이를테면 그런 셈이지요.

우리 세 자매는 아버님이 물려주신 이 집에서 함께 살아 오다가,

큰언니는 십년전에 돌아 가셨고 작은 언니는 삼년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나 혼자 남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주인 노파는 한평생을 처녀로 늙어온 터라,

칠십을 넘겼음에도 말씨가 처녀처럼
상냥하고 정갈스럽기가 이를데 없었다.

"이 깊은 산중에서 혼자 살아 가시기가 외롭지 않으십니까 ?"
김삿갓이 이렇게 물어 보니 노파는 고개를 살랑살랑 내저으며 대답한다.

"낮이면 온갖 새소리를 들으며 농사를 짖고,

밤이면 별과 달을 바라보며 살아 온 탓인지 별로 외로운줄 모른다오.

언니들이 돌아가신 뒤에는 일시 외로운 적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그런 외로움 조차 남아있지 않다오."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란

시조가 불현듯 떠 올라 주인 노파 앞에서 시조를 읊어댓다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 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다섯밖에
또 두어서 무엇하리.
구름 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 없노매라
좋고도 그칠 적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김삿갓의 시조를 듣고난 주인 노파는 말을한다.

"청풍과 명월은 돈 한 푼 주지 않고도

이곳에서 마음껏 즐길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김삿갓은 첫날밤에 불행하게도 소박을 맞고도

이를 운명으로 받아 들여 평생을 보낸 여인의 삶이

불현듯 애처럽고 불쌍하여 시인 백낙천의

여자들의 신세 한탄을 읊은 구절이 생각났다.

인생은 모름지기 여자로 태어나지 말지어라
한평생의 고락이 남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人生某作女人身
百年苦樂由他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