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53) *내불왕(來不往)의 감춰진 속 뜻.

우현 띵호와 2021. 9. 27. 23:27

방랑시인 김삿갓 (53) *내불왕(來不往)의 감춰진 속 뜻.

제천과 원주 사이의 산길을 진종일 걸은 김삿갓, 힘도 들고 허기도 지는데,

석양 노을 조차, 붉게 물들고 있었다.
정처없는 나그네의 심사가 가장 고된시간은

지금처럼 저녁노을이 짙게 깔리는 시간이다.

유람을 떠난 바가 아니라면 수중에 돈 이 넉넉히 있을리 없고,

그러다 보니 먹고 잘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삿갓이 이런 마음 급한 해걸음에 어떤 마을에 당도하니,

마을 한복판 고래등 같은 기와집 마당에는 큰 잔치를 벌이는지, 많

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며 한편에서는 떡을 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을 부치는등,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삿갓은 전을 부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더욱 허기가 느껴져,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보았다.
"이 댁에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죠 ? "
"아따, 이 양반이..

내일이 이 집 주인이신 오진사님 진갑날이라는 것을 모르시오 ? ..

게다가 이번 진갑 잔치에는 본관 사또님까지 오시기로 하여,

돼지도 잡고 큰 암소도 잡았다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힐책하듯 한마디 하는데,
"이 사람아 ! 사또께서 내일 오실지 안 오실지 몰라,

진사 어른이 사랑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골머리를 앓고 계시는데, 당신은 무슨 연유로 오신다는 장담이야 ?"

"허긴 ..허헛 ! "
두 사람의 주고 받는 말의 의미가 야릇햇던 김삿갓이 물었다.

"사또님을 초청 했으면 오신다 안 오신다 대답을 하셨을 것이오.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면 모르겠거니와, 도데체 어떤 까닭에 오신다,

안 오신다를 모른다 하시오 ? "

그러자 나중에 말을 한 사람이 말을 하는데,
"진사 어른께서 며칠 전에 사또님께 사람을 보내,

저의 집 진갑 잔치에 꼭 왕림해 주십시오, 하고
서한을 보냈더니, 사또께서 즉석에서 답장을 써 주셨는데

그 답장의 내용이 얼마나 어려운지 오시겠다는 것인지,

안 오시겠다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고 합니다."

"사또께서 어떤 답장을 보내셨기에 설왕 설래하고 있단 말이오 ?
혹시 암호(暗號)로 당신 의사를 보낸것 아니오 ? " 김삿갓이 이렇게 묻자,

"천만에요 ! 명명백백 (明明白白) 알아 볼 글짜로 쓰셨다는데 ,

도무지 그 뜻을 알수 없어, 진사님과 사랑에 든 선비님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합니다."

"허허, 그것 참 우습구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또의 답장을 나한테

한번 보여 주면 어떻겠소 ? 내가 한번 풀어 보아 드릴 터이니 .. "

김삿갓이 이렇게 말을하자,
"여보시오, 유명한 선비들 조차 알아보지 못한다는 편지를

당신 따위가 무슨 재주로 알아보겠소 ? " 하며,

김삿갓을 싹 무시하는 태도로 말을한다.

그러자 김삿갓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편지라면 나에게도 한번쯤 보여 주기로

손해가 날 것은 없지 않소 ?

개똥도 때로는 약이 된다 하였으니,

속는 셈치고 사랑에 진사님께 내 말을 전해 주시오."

김삿갓은 저녁을 얻어먹을 속셈으로 일단 큰 소리를 치고 나왔다.
그러자 마을 사람은 김삿갓의 허술한 차림새를 위 아래로 훝어보며 말하는데,
"당신은 낫 놓고 ㄱ 자도 알아볼 것 같지 못하구먼 ..

과연 무슨 배짱으로 흰소릴 하는가 ? "

김삿갓은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길고 짧은 것은 맞대 보아야 알수 있다 안 합디까 ? ..

아뭇소리 말고 사랑에 내 뜻을 전하시오."

이렇듯 김삿갓이 당당하게 나오자

사내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저희끼리 말하는데,

"여보게 최서방, 이 양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예사롭지 않구먼 ..

자네가 사랑에 올라가 진사 어른께 이 양반 얘기를 전해 올리게."

"그랬다가 진사 어른께서 야단을 치시면 어쩌지.."
"야단은 무슨 .. 물에 빠진 사람의 심정으로,

이 양반을 보자 하실 것이 틀림없네 ! "

"그럴까 ? .. 그렇다면 내 다녀옴세."
그리하여 최서방이란 자가 부랴부랴 사랑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잠시 후 최서방을 앞세운 오진사가 나타났는데,

얼마나 똥이 탔던지 손님을 불러 올리지도
못한채, 몸소 달려 나왔던 것이다,

"사또의 답장을 읽어 보아 주시겠다는 어른이 어느 분이시오 ? " 하며

김삿갓을 찾는 것이었다.

김삿갓이 오진사 앞으로 썩 나서며 정중히 머리숙여 인사를 하는데 ,

"지나가던 과객이올시다.

댁에서 어떤 편지로 인해 심려중에 계시다기로 시생이 그 내용을

풀어 볼까 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사람을 들여 보냈던 것 이옵니다."

오 진사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듯이 김삿갓을 사랑으로 정중히 모셔 올리며 말한다.
"어서 올라 가십시다. 어려운 것을 도와 주시겠다니 고마운 일입니다."
이렇게 오진사의 안내로 사랑에 들어 가니

사랑방의 크기와 규모가 가히, 고대광실이었다.

그리고 넓은 사랑방 안에는 사또의 편지를 읽어 보아 주려고 모여 든

10여명의 늙은 선비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있는 그들의 얼굴에는 편지의 해석이

뚜렷하지 못했던 탓인지 계면쩍은 표정이 면면히 보이고 있었다.

주인은 김삿갓에게 그들을 일일히 소개하고 난후,

손수 술을 한잔 권하며 말을 하였다.

"우선 술을 한잔 드시고, 나를 꼭 좀 도와 주소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모두 이름난 학자님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또의 편지를 알아보는 분이 한 분도 없으니,

나로서는 애가 탈 노릇 입니다."

김삿갓은 주인의 말을 면전에서 직접들으니

과연 어지간히 곤란한 지경이었던 모양이다.

김삿갓은 술을 한잔 마시고 나서,

빈 술잔을 늙은 선비들에게 골고루 한 번씩 돌려 주었다.
이렇게 하므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서 술을 여러잔 얻어 먹을 심산이었다.

늙은 선비들은 술을 한 잔씩 받으면서도 김삿갓의 행색이 못마땅 했던지

자신들이 풀지 못한 사또의 편지를 풀겠다고 나타난 그를 몹

시 아니꼽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늙은 선비들이 어떻게 생각 하든지 간에

출출하던 차였기에 술과 안주를 닥치는 대로 주워 먹었다.

이윽고 주안상을 물리자 오진사는 문갑 속에서 사또의 편지를 꺼내 보이며

김삿갓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사또께서 나에게 보내 주신 친필 서찰 올시다.
우리 집 진갑 잔치에 꼭 참석해 주십사 하는 초청장을 보냈는데,

사또께서 보내 온 답장의 문장의 내용이 어찌나 괴상한지,

사또께서 오시겠다는 말씀인지, 혹은 못 오시겠다는 말씀인지,

도무지 알아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한번 펼쳐 보시고 사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김삿갓은 방안에 선비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사또의 편지를 펼쳐 보기 시작했다.

사또의 편지는 한지로 두겹이나 싸여있어 겹겹히 벗겨야 했고 ,

김삿갓은 편지의 내용이 한지의 두께로 보아, 매우 복잡하려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작 알맹이를 꺼내 보니 사또의 편지는 한지 반절 크기의 지면에

커다란 글씨로,
來不往

來不往
단, 여섯 글자만이 쓰여져 있을뿐이 아닌가 ?
김삿갓은 그 내용이 너무나 간단한데 놀랐다.

(태산명동 서일필(太山鳴動 鼠一匹) 이라더니 ..

정작 편지의 내용은 장난기가 철철 넘쳐 흐르는구나..그렇다면 ? ...)

"음 ... 편지의 내용이 매우 기묘한 문장이군 ! "
김삿갓은 우선 생각할 여유를 갖기위해 중얼거려 보였다.

방안에는 잠시 숨막히는 긴장감과 함께 정적이 맴돌았다.
오진사는 참고 기다리기가 초조했던지, "선생 ! 어떻습니까 ?

사또께서 와주시겠다는 말씀 입니까, 못 오시겠다는 말씀 입니까 ? "
김삿갓은 대답 대신 다시 혼자 중얼 거렸다.

"음 ... 사또 어른하고 주인 어른하고는 친분이 매우 두터우신가 보구려 .

그렇지 않으면 이런 장난스런 편지는 보내지 않으셨을 터인데 ..."

김삿갓은 무척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남에 집 경사스런 자리에

이런 장난기 어린 편지를 보낼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오 진사는 만면에 웃음을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을했다.
"이 편지 속에 우리들 사이의 친분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 있소이까 ?

선생께서 그렇게 물어 보시니 하는 말이오만,

본관 사또하고 나 하고는 가깝다 뿐이겠소이까.

지금은 비록 관(官)과 민(民)으로 다르지만,

우리 두 사람은 어려서는 동문수학(同門修學) 하면서

별의별 글장난을 주고 받아 온 사이랍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또의 편지는 진갑 잔치에 틀림없이 참석하겠다는

의사가 확실 하다는 판단을 하였다.

왜냐하면 친구 지간에 초청을 받고 못올 형편이라면

한마디 사과를 뜻하는 글이 있어야 할 것이거늘,

사또의 답장에 쓰인 글은 단 여섯 글자로,

그런 빛은 전혀 찾아 볼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간파한 김삿갓은 대뜸 편지의 내용을 선언해 버렸다.
"사또 어른께서 반드시 오시겠다고 하셨으니, 영접할 준비를 서두르시죠."

오진사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되물었다.
"내불왕 내불왕의 풀이가 어떻게 되기에 그런 해답이 나오게 됩니까 ? "

그러자 자기들은 머리를 쥐어 짜도 얻지 못한 해답을,

자신만만하게 답안을 내놓는 김삿갓에게  열등감을 느낀 선비들이

제각기 한 마디씩 하는데,

"귀공은 그 문장을 어떻게 해석했기에, 그런 단안을 내리시오 ?"

"그 문장을 어떻게 사또가 오시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는지,

설명을 좀 들려주시오."

"제가 왜 그런 해석을 했는지는 여러분들도 이모저모로 분석을 해보시죠.

그러면 반드시 저와 같은 결론에 다다르게 될것 입니다."

하며 , 김삿갓은 자신을 고깝게 여기는 선비들을 향해,

"당신들은 아직도 모르겠냐" ? 하는 어투로, 한마디했다.

선비들은 김삿갓의 이같은 말을 듣고 모두 얼굴이 머쓱해지며

제각기 심각한 생각에 잠긴다.

그러자 오진사도 답답한 심정을 견딜수 없었던지,

"여보시오 선생 ! 나는 편지의 내용을 알수 없어 속이 타다 못해,

이제는 간이 타오를 지경이오.

그것은 이곳에 모신 선비들도 모두 궁금하기는 매 일반일 것입니다.

편지의 내용을 알고 계시다면
애를 태우지 말고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시오..." 하며 간청을 하였다.

김삿갓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 편지는 결코 어려운 내용이 아니옵니다.

"來不往"이 두 개로 겹쳐져 있어서 혼동을 일으킬 뿐입니다.

그러니 읽을 때는 점을 찍는 위치에 따라서,

같은 글자 임에도 풀이는 두가지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오진사와 선비들은 누구도 삿갓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오히려 ..
"그런 설명만을 들어서는 알 수 없으니

쉽게 알아 듣도록 설명을 해주시오." 한다.

"하하하, 이렇게 까지 설명을 하였는데도 모르시겠다는 말씀 입니까 ?

그렇다면 제가 우리 말로 표현해 드리지요.

내불왕의 "來不, 往"과 뒷글자의 "來, 不往"에 점을 찍고

제각기 토를 달아 해석하면 ..

(오지 말라 하여도 가겠는데, 하물며 오라고 하는데 가지 않겠느냐)

하는 뜻이 되옵니다."

김삿갓의 설명을 듣고난 좌중에는 별안간, 감탄의 탄성이 터졌다.
"과연 듣고보니 선생의 해석이 귀신과 같소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머리가 아둔해

거기 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구려."
모두 감탄해 마지 않는데, 오진사는 무릎까지 치면서 칭찬을 한다.

"선생 덕분에 만사가 시원하게 풀려서 내가 이제야 살아나게 되었소이다."
그리고 아랫사람들을 급히 불러,
"여봐라 ! 내일은 사또 어른께서 영광스럽게도 우리 집에 행차 하실 것이니

이제부터 음식도 특별히 만들도록 하고,

내일 아침에는 사또를 마중 나갈 채비도 차리도록 하여라."

하며 추가로 분부를 내리는데,
"지금 우리 사랑에는 귀한 선비님이 와 계시니,

술상을 새로 푸짐하게 차려 내오도록 하여라."

이리하여 김삿갓은 사또의 편지를 풀어 준 덕분에

술과 음식을 배불리 얻어먹었고, 그날 밤에는

오진사 댁 사랑방에서 하룻 밤을 편히 지낼 수가 있었다.
이튼날 아침 날이 밝자, 잔치
준비로 다시 집안이 시끌벅적 하였다.

게다가 사또의 행차가 가까워 온다는 전갈이 있자,

오진사는 직접 마중을 나간다고 야단법석이 일었다.

김삿갓은 이쯤에서 아침을 한 술 얻어 먹고,

조용히 오진사 집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어제 저녁 오진사 집 사랑에서의 일을 회상하며

빙그레 웃으면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