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18) <원숭이띠>

우현 띵호와 2021. 10. 9. 02:08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18) <원숭이띠>

제일 똑똑하다고 큰소리 친 ‘오수’

재주만 믿다 나무서 떨어진 원숭이처럼

손대는 일마다 쫄딱 망하는데…

오수는 민첩하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해도,

헤엄을 쳐도 또래 친구들이 그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머리까지 팽팽 잘 돌아 영악스럽기 짝이 없다.

한가지 흠이라면 ‘자만’이다.

세상에서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없기에 항상 자기 주장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고, 남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는다.

어느 날 밤, 친구들이 모여 수박서리를 가기로 했는데

오수가 나서 임 첨지네 집에 닭서리를 가자고 방향을 틀었다.

임 첨지는 며칠 전에 족제비한테 닭을 몇마리 잃은 터라

잔뜩 긴장해 있었다.

게다가 성질이 고약해 들키면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모두가 반대했다.

하지만 오수는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아니나 다를까, 닭장 안에서 도롱이를 덮어쓰고 앉아 족제비를

잡으려던 임 첨지에게 잡혀 매타작을 당했다.

오수는 그것을 운 탓으로 돌렸다.

어른이 되어서도 오수는 달라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오수네 북향 밭에 복숭아 과수원이 맞지 않다고

말렸지만 귓등으로 들었다. 보리 심는 것보다 몇 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대처에 나가 비싸게 복숭아 묘목을 사와서 심었다.

거름을 주고 잡초를 매고 봄가뭄이 올 때면 밤새도록 개울에서

물을 길어 대며 갖은 정성을 쏟았다.

3년째가 되자 과수원은 제법 모양을 갖췄고, 4년째엔 복숭아를 따기 시작했다.

수확 첫물이라 장에 내다팔 정도는 아니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맛보기로 돌리는데, 안된다고 말렸던 사람들에게 먼저 안겼다.

‘너희들이 뭘 안다고 되느니 안되느니 입방아를 찧는 거냐.’

대놓고 말은 안해도 오수의 표정에 여실히 드러났다.

5년째 겨울, 혹한이 찾아왔다.

복숭아나무는 추위에 약한 법, 이듬해 봄 복숭아나무에 꽃이 맺히지 않았다.

팔할이 얼어 죽은 것이다. 오수는 복숭아 과수원이 잡초밭으로 변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더니 거간꾼에게 논밭을 몽땅 팔려고 싸게 내놓았다.

노모가 울며불며 막아서고 집안 어른들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오수는 그 돈으로 장삿길에 들어섰다.

그는 머리를 굴렸다. ‘작년에 무·배추가 금값이었지.

올해는 너도나도 배추와 무를 심을 거야.

상강쯤 되면 아마 똥값이 돼 이집 저집에서

배추와 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겠지. 그럼 필요한 게 뭐야?

소금이야 소금! 배추고 무고 김치를 담그려면 소금으로 절여야지.’

오수는 전라도땅 소금 포구 곰소로 달려갔다.

소금을 바리바리 사다가 소금창고에 집어넣고 물표를 챙겼다.

그는 휘파람을 불며 집에 돌아와 날짜 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해는 장마가 짧고 날씨가 쾌청한데다 바람까지 불어

염전마다 소금이 산처럼 쌓여 소금값이 폭락했다.

그러자 화주들이 창고에 쌓아두었던 소금가마까지 풀어

값이 바닥을 모른 채 계속 떨어졌다. 무와 배추도 대풍을 이뤄

똥값이었지만 집집마다 싸다고 분별없이 사는 게 아니어서

밭에서 썩어 나갔다. 결국 헛똑똑이 오수는 쫄딱 망했다.

 그래도 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여기고

인삼을 사러 금산을 향해 산 넘고 개울을 건넜다.

그렇게 길을 계속 걷다 보니 다리가 아프고

목도 마르고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

그때 수염이 한자나 늘어진 노인이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마차에 좀 태워줄 수 있습니까?”
“타게나.”
오수는 날렵하게 올라탔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여기서 금산까지 얼마나 됩니까?”
“사십리.”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오수는 그동안 복숭아 과수원이며

소금장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가는 길에 주막집이 나타나 막걸리 한 호리병을 사서 나눠 마시고

다시 수레에 올라 한참을 갔다.

“이제 얼마나 남았습니까?”
“어디까지?”
“금산까지요.”
“여기서는 칠십리.”
오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처음에는 사십리라 하더니 얼마를 왔는데 칠십리라니요?”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초행길인가 본데, 자네는 이 수레가 금산 쪽으로 가느냐고 물어봤어?”
오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이 멍해졌다.
“자네 원숭이 띠지?”

오수는 대답도 않고 수레에서 뛰어내려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맞아, 내 인생은 항상 방향을 잘못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