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51) <천도재>

우현 띵호와 2021. 10. 11. 02:34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51) <천도재>

심마니 삼복이와 말 못하는 칠석이

사이좋게 약재 캐러 산에 갔는데…

첩첩 산속 곰솔골에는 화전민 다섯집이 살고 있었다.

사촌이 이들보다 가까울까? 형제간이 이들보다 가까울까.

둔촌네 둘째 아들 삼복이는 심마니로 산속을 헤매며 가끔 심도 보고

하수오와 상황버섯도 따고 석청도 채취해 대처로 나가 팔았다.

옆집에 사는 칠석이는 삼복이보다 세살 아래로 벙어리다.

장날이면 대처에 나가 외상술을 마시고 툭하면 행패 부리기 일쑤라

그 아버지가 뒷수습하느라 애를 먹었다.

어느 날, 삼복이가 장터에서 또 행패를 부리는 칠석이를 뜯어말린 뒤

주막으로 데려갔다. 원래 벙어리는 말을 못하지만 남의 말을 들을 줄은 아는 법.

둘은 술을 잔뜩 마시고 곰솔골로 돌아왔다.

이튿날부터 삼복이가 칠석이를 데리고 다니며 산(山) 지식을 하나하나 가르쳤다.

한해가 지나자 칠석이도 꽤 배워 제법 약재도 채취하고 송이도 땄다.

둘은 산에서 채취한 걸 대처로 나가 팔았다.

각자 채취한 값어치로 보면 삼복이가 7쯤 되고 칠석이는 3쯤 되는데도

돈을 반반으로 나눴다.

칠석이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어버버 어버버~”를 외쳐도

삼복이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칠석이 부모는 말썽꾸러기 아들을 사람 만들어준 삼복이의 두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 조용하고 서로 화기애애하던 곰솔골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터졌다.

늦가을 어느 저녁나절, 칠석이가 짐승 같은 고함을 지르며

피투성이 삼복이를 업고 내려왔다. 삼복이 몸은 벌써 싸늘했다.

칠석이는 땅을 치며 울다가 상황설명을 하려고 손짓 발짓을 다했지만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의원과 관가의 포졸들이 올라와 칠석이를 찾았지만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웃음소리 끊이지 않던 첩첩 산속 곰솔골에 을씨년스러운 적막만 감돌았다.

시간이 흘러 삼복이의 죽음도 잊힐 즈음,

난데없이 탁발승 하나가 칠석이네 집을 찾았다.

탁발승은 칠석이 아버지에게 “댁의 아드님이 살인하고 도피하고 있소이다”라며

이 일을 없던 일로 하려면 삼백냥을 공양하라고 했다.

그러나 산골 화전민에게 그런 큰돈이 어디 있겠는가.

탁발승은 삼복이네 집도 찾았다.

“댁의 아드님 원혼이 구천을 떠돌고 있소이다”라는 말에 삼복이 아버지는

백냥을 공양하고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지난해 늦가을, 삼복이와 칠석이는 산속을 헤매다가 백년근 산삼 열두뿌리를 캤는데

칠석이가 그걸 독차지하려고 절벽에서 삼복이를 밀어버렸다는 것이다.

탁발승은 칠석이가 한양에서 산삼을 팔아 큰돈을 벌었고

돈을 어딘가에 묻어놓은 채 산속 암자에 숨어 지낸다고 했다.

삼복이 아버지는 생빚을 내서 탁발승에게 백냥을 더 주고

칠석이가 숨은 암자를 알아냈다.

이튿날, 삼복이 아버지는 시퍼렇게 날을 세운 낫을 허리춤에 차고 집을 떠났다.

낮에는 걷고 밤에는 주막집에서 자며 열이틀을 걸은 끝에 탁발승이 일러준

산골짝 조그만 암자에 이르렀다.

승방을 발로 차 부수고 낫을 치켜들었다.

방안의 노승은 놀라지도 않고 촛불을 켜며

“칠석이를 죽이러 온 삼복이 아버지시군요”라고 말해

오히려 삼복이 아버지가 놀랐다. “저 법당은 아직 불이 켜졌지요.

칠석이가 삼복이 극락왕생 천도재를 지내고 있소이다.”

놀라 주저앉은 삼복이 아버지에게 노승은 삼복이가 죽던 날을 얘기했다.

삼복이와 칠석 이는 절벽에 달린 석청을 채취하려고 절벽 위 나무에 밧줄을 묶고

나머지 밧줄을 각자 몸에 둘렀다.

밧줄에 의지해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데 나무가 부러졌다.

썩은 나무였다. 질질 절벽 끝에 겨우 달린 삼복이가 허리춤의 칼로 밧줄을 끊었다.

한데 운 나쁘게도 나뭇가지에 발이 걸려 머리가 아래로 박혀 죽은 것이다.

“스님, 말 못하는 칠석이를 데리고 어떻게 그걸 알아냈습니까요?”

삼복이 아버지가 묻자 “산속을 헤매다 암자에 들어온 칠석이가 울면서 부처님께

절만 하기에 무슨 사연인가 궁금해 소승이 글을 가르쳤지요.”

삼복이 아버지는 칠석이를 안고 함께 울었다.

“그럼 우리 동네에 찾아온 그 탁발승은 누굽니까?” 노승이 큰 한숨을 쉬더니

“원래 내 수제자였는데 그놈이 속세의 달콤한 맛에 빠져 방탕하고 포악해졌죠.

그래서 소승이 이 암자를 칠석이에게 대신 물려주려 하자

그런 짓을 벌인 겁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