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53) <남산골 점집>

우현 띵호와 2021. 10. 11. 02:57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53) <남산골 점집>

허불도사가 육갑을 짚어보는데

점을 보러온 선비가 도사 부인을…

땅거미가 스멀스멀, 남산골 골목에 내려앉았다.

갓을 눌러쓴 건장한 선비 한사람이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

어느 대문 앞에 다다랐다.

기둥 위에 늘어진 노끈을 당기자 짤랑짤랑 집안에서 방울 소리가 났다.

대문 기둥에 걸린 ‘占(점)’이라는 글자가 박힌 초롱이 바람에 흔들렸다.

선비를 맞이한 사람은 박가분 냄새가 퍼지는 젊은 여인인데,

엉덩이 윤곽이 드러나게 허리끈을 바짝 내려 매고 분홍색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 색기를 내뿜는다.

허불도사가 좌정하고 있는 사랑방으로 들어간 선비가 그와 마주보고 앉았다.

흰 수염이 성성한 허불도사가 “임자, 마숙차 한잔 내오시오.” 외치자

소반에 차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이 바로 색기 넘치는 그 여인이다.

가운데 앉아 차를 따르고 은장도로 어란을 얇게 자르며 선비를 쳐다본다.

“집사람은 개의치 말고 서슴없이 말해.” 선비는 머뭇거리다가 “소인이 요즘 에~.”

“나쁜 짓을 하고 있구먼.” 선비가 눈을 크게 뜨더니 “소인이 간통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 남편이 눈치를 챘을까요?” 허불도사가 중얼거리며 육갑을 짚어보고 있는데

놀라운 모습이 펼쳐졌다. 선비가 바짝 다가앉아 허불도사 부인의 엉덩이를

쓰다듬는 게 아닌가! 허불도사는 장님이다.

허불도사가 “그 남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해. 꿈에도 눈치 못 채!”

“고맙습니다 도사님.” 그때 짤랑짤랑 방울이 울렸다.

선비는 점상 위에 복채를 놓고 일어서서 문을 열고 나갔다.

새로 온 손님이 들어서며 “도사님과 단둘이…”라고 하자

부인이 발딱 일어나 안방으로 갔다. 안방엔 그 선비가 이미 두루마기를 벗고 있었다.

선비가 촛불을 끄려하자 부인이 귓속말로 “끄지 마세요.

폭풍우가 몰아칠 때 서방님의 용안을 보고 싶습니다.”

둘은 부둥켜안고 입맞춤을 하며 상대의 옷을 벗겨 내렸다.

부인의 감창이 어찌나 요란한지 선비는 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용암 같은 욕망을 쏟아낸 선비는 서둘러 옷을 입고 대문을 빠져나갔다.

얼마 후,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는 초로의 영감이 들어와

살며시 부엌을 통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여보게, 오늘은 열두냥밖에 없네. 좀 봐주게.” 영감이 사정하자 “안 됩니다.”

부인은 매몰차게 고개를 저었다.

영감이 주머니에서 세냥을 더 꺼내며 부인의 엉덩이를 때렸다.

부인의 화려한 방중술에 영감은 금방 쓰러져 떨어졌다.

영감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대문을 빠져나갔다.

도사 부인이 옷매무새를 고치며 천장을 향해

“오늘 밤은 이걸로 마감했습니다”라고 소리치자

천장 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안방 장롱 옆, 다락으로 통하는

쪽문이 열리고 이 진사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나왔다.

문 밖으로 나가는 그를 부인이 잡으며

“진사 어른, 오늘 밤엔 두편을 보셨으니

열냥을 더 내야 하지만 다섯냥만 받겠습니다.”

이 진사는 엽전을 방바닥에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점잖은 이 진사가 그 시각에 점집 안방 다락에서 기어내려오는 연유는 무엇인가?

그는 관음증(觀淫症) 중독자다.

어려서부터 개울에서 멱 감는 동네 여인들,

부엌에서 하녀들 목간(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다가 점잖은 진사가 되어도

이런 추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 진사가 천장 다락방에서 구멍을 뚫고 내려다보기에

부인은 손님들이 촛불을 끄자 해도 한사코 불을 밝히는 것이다.

기묘한 일로 가득 찼던 이 남산골 점집도 모든 손님들이 떠나고 대문을 잠갔다.

사랑방에서 안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점쟁이 허불도사가

“수월댁, 오늘 거 계산하세.” 하자 여인이 “뻔하지요 뭐, 스물다섯냥.”

“삥땅 치지 말기요! 천장 다락방에서 내려온 이 진사에게 다섯냥 더 받았잖아.”

여인이 다섯냥을 더 내놓았다.

합계 서른냥. 도사와 여인은 열다섯냥씩 챙겼다.

“내가 따로 나가야지.” 수월댁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도사가 “수월댁, 잘못 생각하는거야.

손님들은 수월댁이 내 마누라인 줄 알고 찾아오지.

과부이거나 홀몸이라면 삼패 유곽에 가지.”

수월댁이 생긋이 웃으며 눈을 흘기자 장님 행세하던 도사가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허리를 당겼다. “오늘 수월댁 너무 예쁘네.” “열냥 내세요. 선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