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52) 보쌈

우현 띵호와 2021. 10. 11. 02:47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52) 보쌈
긴 세월 보부상 남편 기다린 홍씨
어느날 아들에게 소식을 듣는데…

깊은 산골 외딴 너와집에 가물가물 관솔불이 켜 졌다.

방과 부엌 사이 흙벽을 뚫어 그 사이에 관솔 불을 켜니

방과 부엌이 동시에 밝아졌다.

희미한 등불 아래 저녁상이 차려졌다.

이상한 것은 식구는 셋뿐인데 밥그릇은 넷이요. 수저도 넷이다.

“오매, 언제까지 밥그릇 하나 더 차릴 겁니꺼?”

“너거 아부지 올 때까지.” “아부지 집 떠난 지 십팔년이 됐슴니더,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티끌만한 소식이라도 있을긴데.”

“시끄럽다.” 어머니가 말을 잘랐다.

저녁상을 치우고 나자 어머니는 관솔불 아래서 바느질 바구니를 펼쳤고

열여덟살 아들은 윗방으로 갔다.

부엌에서 뒷물을 한 며느리는 아들 방으로 들어갔다.

안방과 아들 방 사이, 칸막이가 있고 샛문이 달렸다지만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불김은 안방을 지나 아들 방으로 가니,

두방이라기 보다는 같은 방에 칸막이를 쳤다는 표현이 맞지 싶다.

혼례를 올린 아들 칠석이 이 선선한 가을밤에 얌전 하게 잘 리가 없다.

아랫방의 어머니는 솜으로 귀를 막고 장화홍련전을 소리 높여 읽어보고

회심곡도 뽑아보지만 지척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내는 절구 소리를 막을 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바늘로 허벅지 를 찔렀다. 방울방울 피가 맺혔다.

열일곱에 시집와 이듬해 아들 칠석이를 낳았으니

어머니 홍씨 나이 이제 겨우 서른여섯.

칠석이 아버지 박 서방은 소백산 자락, 이 너와집에 살면서

심마니들이 캔 산삼을 모아 이 고을 저 고을 돌아다니는 보부상이었다.

18년 전 칠석이를 뱃속에 품고 있을 때 박 서방은 산 너머 심마니 최씨가 캔

백년근 열두뿌리를 팔러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최씨는 착한 사람이다.

그때 스무살이었던 심마니 최씨는 보부상 박 서방이 산삼을 팔아오면

그 돈으로 장가나 들려고 했는데 팔러 나간 사람의 생사조차 알 수 없으니

아직도 서른여덟 노총각으로 지내고 있다.

몇년 전부터 칠석이는 최씨를 삼촌이라 부르며 산을 따라다닌다.

여덟살 때부터 이십 리 밖 저잣 거리의 포목점에 가서 바느질거리

보따리를 메고 와 어머니에게 전해주고 다 된 바느질은 포목점에

갖다주던 일을 그만두고 최씨를 따라 다니며 약초를 캐다 약재상에 팔아

양식을 사니 이제 가장이 된 것이다.

어느 날 칠석이가 어머니 홍씨에게 말했다.

“산꾼 생활 그만하고 저도 보부상이 되겠심더.”

어머니의 만류, 새색시의 눈물, 최씨의 반대를 무릅쓰고 칠석이는

보부상이 되어 집을 떠났다.

보부상으로 돈을 벌겠다는 뜻보다는 어머니가 기다리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겠다는 것이다.

어머니 방 횃대엔 철따라 옷이 주렁주렁 걸렸다. 며느리가 물었다.

“어머님, 저 많은 옷은…?” “너희 시아버지 돌아오면 입힐 옷이다.”

옷뿐만이 아니다. 토끼털로 만든 모자, 족제비털로 만든 토시,

산돼지 가죽 신발….

춘하추동이 바뀌었다.

며느리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고 한달쯤 지났을 때,

일년여 만에 칠석이가 돌아왔다.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한숨만 쉬었다.

어느 날, 저잣거리에 나가서 술을 잔뜩 마시고 들어온 칠석이가 관솔불 아래서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칠석이는 머리를 땅에 박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더니

“오매, 아부지 소식을 들었심더.” 긴 한숨을 토하더니 “최씨가 맡긴

백년근 산삼을 팔아 거금을 손에 쥐고 어린 기생 하나 머리를 얹어주고 사라졌답니더.”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던 어머니가 삼일 만에 일어나 며느리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밥을 세그릇만 상에 올려라.”

그리고 남편이 돌아오면 입히겠다고 방 횃대에 걸어두었던 옷과 모자,

토시를 꺼내 아궁이에 처넣으려는 걸 칠석이 본인이 입겠다고 막아섰다.

달 밝은 가을밤, 덥수룩한 산꾼들 넷이 칠석이네 너와집에 들이닥쳤다.

다짜고짜 안방으로 들어가 어머니 홍씨를 이불로 감싸 마당에서 두사람이

벌리고 있던 섬 속에 넣어 주둥이를 꽁꽁 묶어 굵은 막대기에 매달아 달아났다.

그 난리를 치는데도 칠석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칠석이는 삼촌이라 부르던 최씨를 “아부지”라 불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