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집(雲集)
구름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들다.
[구름 운(雨/4) 모을 집(隹/4)]
하늘에 떠 있는 작은 물방울,
구름이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워 수시로 변한다.
새털구름이란 구름이 있듯이 새털같이 가볍고
종류도 많은 것이 구름이다.
‘구름 雲(운)’의 아래에 있는 ‘이를 云(운)’은 처음 뭉게구름이
피어오른 모습을 그린 것인데 날씨와 관련된 글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비 雨(우)를 더했다고 한다.
중국은 간체자로 云(운)을 다시 쓴다.
모을 集(집)의 나무 木(목) 위에 있는 글자는
‘새 隹(추)‘로 새를 대표하는 鳥(조)에 비해
참새와 같은 작은 새를 가리켰다.
나무 위에 사는 새는 떼를 지어 모이니
많이 모인다는 뜻이 됐다.
처음엔 나무 위에 새가 세 마리나 있는 雧(집)이나 雦(집)을
모은다는 뜻으로 썼다는데 너무 복잡하여 줄였다.
참고로 새 세 마리라도 雥은 ’새떼모일 잡‘이란 다른 글자다.
구름처럼 모이고 새떼처럼 한 곳에서 재잘대면
그 수가 많음이 절로 드러난다.
이 말을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는 뜻으로 된 것은
‘史記(사기)’가 처음이다.
중국의 첫 통일제국을 이룩한 秦始皇(진시황)이 죽은 뒤
학정에 시달린 농민들이 곳곳에서 들고 일어났다.
품팔이꾼 출신의 陳勝(진승)은 재능과 지혜도 없었으나
王侯將相(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난을 일으켰다.
萬里長城(만리장성)을 수비하는 일에 동원됐다가
폭우를 만나 늦어지자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마찬가지인
900여 명의 인부들이 적극 호응했다.
楚(초)나라를 넓힌다며 張楚(장초)라 이름 짓고
가는 곳마다 기세를 올렸다.
진승이 기치를 올릴 때 처음부터 위협적이 될 수 없었으니
그때의 묘사를 보자.
진시황 本紀(본기)에 있는 부분이다.
‘나무를 베어 무기로 삼고 장대를 높이 세워 깃발로 삼으니
(斬木爲兵 揭竿爲旗/ 참목위병 게간위기),
천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메아리가 울려 퍼지듯 호응했다
(天下雲集響應/천하운집향응).’
최초의 대규모 농민반란으로 각지의 호족 무사들이 호응했다가
점차 분열돼 장초도 부하에 피살됐다.
하지만 이 기세로 項羽(항우)와 劉邦(유방)의 봉기를 촉발했고,
6개월 남짓 이어진 장초의 진승은 후일 隱王(은왕)으로 추존되며
제후나 왕의 반열인 世家(세가)에 이름을 올렸다.
구름과 같이, 새떼를 모으듯 많은 사람의 뜻을 결집한 진승은
전제 왕조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데는 성공했다.
구름이 높은 곳에 떠 있어 높은 지위를 꿈꾸는 靑雲(청운)이나
용이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 듯 두각을 나타내는
風雲兒(풍운아)의 좋은 뜻이 많다.
반면 높은 곳에서 내려 보다가도 금방 흩어지니
雲集霧散(운집무산)이라는 말대로 ‘뜬구름을 잡다’란
말도 명심하는 것이 좋다.
어느 구름에 눈이 들며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더 좋은 말이 있다. 구름보다 더 무상한 것이 인심이란 격언이다.
‘구름은 인간들보다 기분파가 아니다.
인간들의 마음이나 사상은 구름 못지않게 날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