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행마시(膝行馬矢)
무릎걸음으로 말똥 위를 기다, 누구에게나 아첨하다.
[무릎 슬(肉/11) 다닐 행(行/0) 말 마(馬/0) 화살 시(矢/0)]
돈이나 권세 있는 자에게 알랑거리는
阿諂(아첨)을 모두들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인간은 아첨하는 동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힘 앞에 무력해지는 사람은 많다.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왔다 갔다 하면서
살살 듣기 좋은 소리로 비위 잘 맞추는 사람은
‘오래 해 먹은 面主人(면주인)’이라는 속담으로 남았다.
비슷한 성어는 많은데 이중에 몇 개만 보면
奴顔婢膝(노안비슬), 五方猪尾(오방저미),
搖民乞憐(요민걸련), 長立待令(장립대령) 등이다.
仰人鼻息(앙인비식)이나 嘗糞之徒(상분지도)는
아첨의 최고봉이다.
변까지 핥는 냄새나는 嘗糞(상분)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말똥(膝行) 위에서 무릎으로 긴다(膝行)는 이 성어도 못지않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지조와 체면을 내던지고
여기저기 누구에게나 아첨하는 것을 가리켰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徐居正(서거정, 1420~1488)은
여러 중요저작 외에 설화문학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太平閑話滑稽傳(태평한화골계전)’도 남겼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각계서 떠돌던 해학적인 기문과
일화를 엮은 책이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옮겨보자.
한 內侍別監(내시별감)이 날이 더워 냇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 타고 왔던 말이
남의 콩밭에 들어가 마구 뜯어 먹었다.
화가 난 밭주인이 그의 종을 잡아서 매질을 했다.
이를 본 내시가 황급히 물에서 나와 물에 젖은
머리카락 위에 紗帽(사모)를 쓰고 벌거벗은 몸 위에
冠帶(관대)를 찬 채 양반에게 무례하다고 호통 쳤다.
꼴에 양반 행세한다고 아니꼽게 여긴 밭주인이
흘겨보면서 비웃었다.
‘나도 정승댁 종 출신인데 다른 내시들이 우리 대감을
뵈러 올 때에는 말똥 위에서 무릎으로 기다시피
쩔쩔 매었소
(謁家公膝行匍匐於馬矢之上/
알가공슬행포복어마시지상).’ 행색을 보니
그들과 다름이 없다는 소리에 별감은 무안만 샀다.
匍는 길 포, 匐은 길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