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지신(尾生之信)
미생의 믿음, 융통성 없이 약속만을 굳게 지킴
[꼬리 미(尸/4) 날 생(生/0) 갈 지(丿/3) 믿을 신(亻/7)]
사람[人]과 말[言]이 합쳐진 것이 믿음[信]이다.
사람의 말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말로써 주고받는 약속은 그래서 지켜야 한다.
믿음을 강조한 좋은 말은 많다.
마음속으로 약속을 했더라도 지켰던 것이
季札掛劍(계찰괘검)이다.
믿음이 군사나 경제보다 앞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無信不立(무신불립)은
孔子(공자) 말씀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약속을 지키려 한 것으로 잘 알려진 것이
尾生(미생)의 믿음(之信)이다.
신뢰의 대명사가 된 미생은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魯(노)나라 사람이라는 것 말고는 전해진 행적이 없다.
믿음을 실천하려 했던 미생은 예로부터 옳다,
그르다 등의 논란을 불러왔다.
먼저 ‘史記(사기)‘에서 종횡가 蘇秦(소진)은 믿음을 강조했다.
’신의 있는 사나이 미생이 어느 날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信如尾生 與女子期於梁下/
신여미생 여녀자기어량하).
미생은 제시간에 나갔으나 여인이 오지 않고,
때마침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넘쳐도
다리 기둥을 부둥켜안고 있다가 물에 떠내려갔다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柱而死/
여자불래 수지불거 포주이사).’
사실 소진이 燕(연)나라 昭王(소왕)에게
한 이야기는 신의의 본보기로
예를 들었지만 나라를 맡기지는 못한다고 했다.
반면 ‘莊子(장자)’의 盜跖(도척, 跖은 발바닥 척)편에는
현신으로 알려진 伯夷(백이) 叔齊(숙제)와
희생의 충신 介子推(개자추) 등과 함께
홍수에도 피하지 않고 빠져 죽은 미생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들은 모두 명분에 집착하여 죽음을 가볍게 생각했고,
본래부터 목숨을 기를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며
이름을 구하는 꼴이 마치 쪽박을 들고
밥을 빌어먹는 거지와 다름없다고까지 했다.
흉악한 도적의 입을 빌어 장자는 명분을 앞세우는
儒家(유가)에 대해 헛되다고 공격을 퍼붓는다.
믿음에 대해 우직하게 지켜야 하느냐,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처하느냐는
중시하는 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믿음과 신뢰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는 정치권에서 언제나 공방전이 벌어지고
공허한 말싸움만 계속되니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