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의 유래
영광굴비는 예로부터 '임금님의 수랏상에 으뜸으로 오르는
법성포 생산의 특산품'입니다. 고려때부터 유래되어 온 것으로
동지나 해역에서 월동한 조기가 해빙기가 되면 산란하기 위하여
연평도까지 북상하는 도중 영광 법성포 근해인 칠산 앞바다에서
4월 10일부터 30일 사이에 산란하기 때문에 알이 들어 맛도 좋고
대량으로 잡혀 이때의 조기가 영광굴비의 진맛을 나타냅니다.
굴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고려 16대 예종때 이자겸은
그의 딸 순덕을 왕비로 들여 그 소생인 인종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종에게도 3녀와 4녀를 시집 보내 중복된 인척관계를 맺고
이자겸은 날으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권력을 휘둘렀던 외척
대신이었지만,왕비인 자기 딸을 시켜 왕을 독살하고 왕위를
찬탈할 야망을 품고 시도 하였으나 인종 4년(1126년) 이자겸 일당인
척준경을 매수하여 이자겸을 체포하여 지금의 영광 법성포로 유배시켰다.
유배지였던 법성포는 조기를 ‘전라도 명태’라고 부를 만큼 풍부했다.
특히 소금에 절여 말린 조기를 천지어(天知漁)라고 불렀는데,
그 지역의 특산물이었다.
현지에서 처음 천지어를 맛본 이자겸은 천지어 맛도 모르고
정권 다툼에 빠져있던 시절을 후회했다.
이자겸은 이렇게 맛있는 생선을 혼자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말린 조기와 자신의 심경을 담은 장문의 글을 인종에게 올렸다.
글에는 억울하게 죄를 받아 귀양을 왔지만, 결코 비관하지 않고
초야에서 다시 복권될 때를 기다리겠다는 다짐과 임금에게
일편단심으로 충성하겠다는 맹세가 담겼다.
그날이 올 때까지 결코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말린 조기를 ‘비굴(非屈)’이라는 글자의 순서를 바꿔 ‘
굴비(屈非)’라는 이름으로 진상했다.
이자겸의 결연한 뜻이 임금에게 닿았을까.
역사적 사실 따르면 인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종을 핍박하고 임금을 깔봤던 이자겸을 다시 불러올릴 리 없었다.
그해 12월 이자겸은 유배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때부터 영광굴비는 임금님의 수랏상에 진상되고
궁궐에서부터 영광굴비가 명물로 등장하여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럼 조기의 뜻은 무엇일까요??
조기의 '조(助)'는 도울 조로서 좁는다는 뜻이며,
'기(氣)'는 기운 기로서 기운을 말합니다.
즉, 기운을 돕는 생선이라는 뜻이 됩니다.
한방에서도 굴비는 음식이기 전에 약이라 합니다.
굴비는 비굴을 거꾸로 한 말이다.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이 말린 조기에 붙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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