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고금소총 제171 ~180화

우현 띵호와 2021. 9. 25. 23:04

고금소총 제171 ~180화

제171화 평양기생 모란

평양기목단 (平壤妓牧丹)
평양 기생 모란은 재주와 미모가 출중하였다.

장사꾼으로 이씨(李氏) 성을 가진 사람이

평양에 당도하여 여각(旅閣)에 묵는 데
마침 모란의 집과 가까운 곳이었다.

모란이 그의 행장과 장사할 재물의 규모를 보고는
그것을 낚아채고자 하여 여염 여인으로 꾸미고

이씨의 숙소를 우연히 지나는 척 하다
거짓으로 놀라는 체 하며 말하였다.
"귀하신 어른께서 오신 것을 몰라 뵈었습니다.

 저의 집은 바로 이웃입니다."
그리고는 즉시 돌아가니 이씨는 적이

아름다운 미모의 그녀를 사모하게 되었다.
하루 저녁은 이씨가 홀로 앉아 있는 것을

엿본 모란이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권하면서 이씨를 위로하였다.


"어른께서 한창 나이에 이곳에서 나그네살이를

하시자니 적적하지 않으십니까?
쇤네의 지아비도 멀리 북관(北關 ; 함경도)으로

수자리(병역) 살러 나가 3년 후에나
돌아오게 되었습지요. 속담에도 홀아비

심정은 홀어미가 안다 하였으니 괴이쩍게
생각지는 마십시오."


거듭 교태스러운 말로 유혹하여 드디어

두 남녀는 사통(私通)을 하게 되었다.
며칠 후 이씨는 숙소를 아예 모란의

거처에 옮겨 동거하게 되었는 데,
모란은 매일 아침 여종을 불러 귀에 대고

소근거리며 음식을 이씨에게 사치스럽게 바쳤다.


이씨는 아름다운 짝을 얻었노라고 기뻐하였다.
하루는 모란이 낙심하여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었으므로 이씨가 위로하였다.
"네가 나에게 싫증이 나는 것이냐? 아니면 옷과

밥이 네 마음에 차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니오라 아무개 나으리가 아무개

기생을 총애하는데 금비녀와 비단옷을
사주었더랍니다.

아무개 나으리야 말로 호걸입지요."
"어려운 일도 아니지.

내 마땅히 네 원대로 해주마."
"당신과 함께 사는데 어찌 헛된 곳에

재물을 함부로 쓰겠습니까?"


이씨가 노하여 말했다.
"재물은 나의 것인데

내가 내 맘대로 쓰던 말던 무슨 상관이냐?"
하고는 모란이 원하는 것을 사주었다.
하루는 장사꾼이 모란의 집을 찾아왔는 데 짐

보따리에서 아름다운 구름무늬 비단을 내놓았다.


이씨는 모란에게 비단을 사주려 하자

모란은 거짓으로 말리는 체 하며 말하였다.
"좋기는 좋네요! 그렇지만

이 비싼 비단을 굳이 살 필요가 있겠어요?"
이씨가 모란을 꾸짖었다.


"내가 재물이 넉넉한데 무슨 걱정이냐?"
이렇게 하여 모란은 갖은 교태로

이씨를 꾀어 재물을 야금야금 취하다가
재물이 바닥이 날 즈음하여

이른 새벽에 여종과 함께 도망을 가버렸다.


해가 높이 솟아 일어난 이씨는 모란에게

속아서 재물을 몽땅 털린 사실을 늦게야 알고
분한 나머지 마당가의

나무에 목을 매어 목숨을 끊으려 하였다.
그 때 이웃집 노파가 말리며 말하였다.


"그 여인네는 평양의 유명한 기생 모란인 데,

당신에게 한 일은 기생들이 늘 저지르는 작태라오.
그대는 진실로 깨닫지 못하셨소? 매일 아침

여종과 귓속말을 하였던 것은 재물을 탈취 후 몰래


밤도망을 하자고 공모하는 것이었고, 물건을 살 때

다른 사람을 칭찬하였던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 사람을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소.

비단을 팔러 온 사내는 기생의 기둥서방이었지요."
이씨는 그 후 거지가 되어 걸식을 하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제172화 천하에 어리석은 자는 선비들이니라

천하지치자토류지 (天下之癡者士類也)
어떤 한 선비가 금강(錦江)의 나룻배 안에서

전일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던
공산(公山, 공주)의 기생과 이별하는 데,

기생이 통곡을 하며 물에 빠져 죽을 것처럼 하자
선비도 눈물을 흘리며 기생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달래었다.
"얘야, 얘야. 나 때문에 목숨을 버리지는 말아라."
그리고는 행낭(行囊)에서 수백 냥 값어치가

나가는 은 주발을 꺼내 기생에게 정표로 주었다.


강을 건너 선비와 작별하고 되돌아오는

나룻배 안에서 기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
장가(長歌)를 부르며 희희낙락하였다.
이를 본 기생의 벗이 책망하였다.
"이별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태연히 노래를

부르다니 너의 정이라는 것은 믿을 수가 없구나."


기생은 웃으면서 은그릇을 꺼내어 두드리며 말했다.
"통곡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고,

노래를 부른 것 또한 이것 때문이었단다."
이 말을 들은 뱃사공이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천하에 가장 어리석은 자는 선비들이지.

한 번 보고 말아버릴 과객(나그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창기(娼妓)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이를 들은 어떤 나그네가 시를 한 수 지어 조롱하였다.


"물에 빠져죽겠다는 창기의 꾀 믿지 마소(莫信娼妓墮水謀)
은 주발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웃으리니(箇中可笑爲銀器)
지금도 뱃사공들은 이야기하네(至今留得 工話)
천하에 어리석은 자는 선비들이라고(天下癡者是士類)"

제173화 추위에 신음하며 후회한들 소용 없도다

이동음한회가추 (忍凍吟寒悔可追)
영남에서 고을살이를 하던 사또가 임기가 끝나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새재鳥嶺)에서 정을 통하였던
애기(愛妓)와 이별하는 데 서로 붙들고 통곡하니

곁에 있던 노파가 또한 같이 통곡하였다.


사또가 물었다."자네는 왜 우는가?"
"이 늙은 것이 저 기생이 이곳에서 정인(情人)과

이별하는 것을 족히 20여 차례는 보았습죠.
예전에는 그리 슬퍼하지 않아 실낱같은 가는 눈물을

흘릴 뿐이더니, 오늘은 여러 갑절을 슬퍼하여
통곡까지 하여 눈물 줄기가 대나무처럼 굵습니다.

 사또께서는 얼마나 방중술이 훌륭하시고
정력이 절륜하시기에 저 기생의 마음을 이처럼

사로잡으셨는지요? 이 늙은 것이 감동되고
부러워 부지불식중 눈물을 흘렸사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또는 기뻐하며 옷을 벗어 노파에게 주었다.


이별을 마치고 새재를 넘어 한참 길을 가는데

풍설(風雪)이 치므로 추위를 견디느라 신음하며
혼잣말로 말했다.
"할망구 술수에 빠졌군. 그러나 후회한들 어쩌겠나."
지나가는 어떤 자가 있어 시를 한 수 지어 읊었다.


"새재에서 가인과 이별할 적에(鳥嶺佳人泣別時)
어떤 노파 또한 울었네(老婆何物亦啼爲)
마음 미혹되어 옷 벗어 주고(解衣一贈緣心惑)
추위에 신음하며 후회한들 소용없네(忍凍吟寒悔可追)"

제174화 죽은 개처럼 늘어지다

약사구연 (若死狗然)
양씨 성을 가진 하급관리가 있었는 데 기생

내한매(耐寒梅)에게 반하여 유혹하였으나
뜻을 얻지 못했다. 후에 대관(臺官, 사헌부관리)이

되자 관직의 위세를 빙자하여 또 다시
내한매를 유혹하기로 하고 하루는 일찍

퇴청을 하게 되자 내한매의 처소에 이르렀다.
그러나 관행에 따르면 사헌부 관리들은

기생집에 출입을 할 수 없었다.


이에 양씨는 관복을 벗어 하인에게 주어

말과 함께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내한매와 더불어 비밀리에 주안상을 마주하여 앉았다.
그러나 미쳐 담소를 나누기도 전에 대문 밖에서

문득 방울소리가 나더니 조정의 높은 관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이에 양씨는 자신이 사헌부

소속 관리인 사실이 탄로 나면 낭패인지라
방 뒷문을 열고 나가 마루 밑에 숨어들었고

내한매는 관원들을 맞아들여 방안에 들게 하였다.


이 때 한 자리에 있던 어느 관원과 내한매는 일찍부터

각별한 사이였으므로 내한매가 그를 위해
성대한 주안상을 차리니 여러 관원들은 차례로

술잔을 돌리며 우스개 소리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양씨는 마루 밑에서 소리를

삼키고 숨을 죽인 채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때는 혹독하게 더운 삼복의 계절이었으므로 양씨의

정신은 몽롱하고 뼈는 풀어지는 듯하였는 데
설상가상으로 모기가 무더기로 모여들어 사정없이

물어대므로 양씨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마치 죽은 개처럼 늘어져버렸다.


관원들은 밤이 이슥해지자 술자리를 파하고

흩어지고 양씨는 간신히 마루 밑에서 기어

나왔는 데 땀이 흥건하게 옷을 적신 위에

먼지를 온통 뒤집어 써 사람 꼴이 아니었다.
이에 내한매는 그를 위로하고 도와주려 하자

양씨는 부끄러운 나머지 곧장 집으로 달아나 버렸다.

제175화 과연 누가 벼의 주인입니까?

하인도주 (何人稻主)
옛날 시골의 한 사내가 장가든 지 10년이 지나도

아내에게 태기가 없어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해

여러 명의 씨받이 여인까지 가까이 해 보았으나

 허사인지라, 그제야 사내 자신의 몸에 여인에게
뿌릴 씨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낙심한 가운데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절친한 친구를 은밀히 찾아가


대를 잇지 못하여 조상에게 면목이 없게 된

사정 이야기를 하고서, 아내와 합방하여
포태를 시켜 줄 것을 간청하자, 이 민망한

부탁에 처음에는 몇 번이나 사양하던 친구도
간절하게 애원하는 사내의 부탁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친구와 약속한 날이 다가온 사내는

밤이 깊어갈 때 주안상을 들이라 해서 아내에게
몇 잔 억지로 권하여 크게 취기가 올라 깊은 잠이

들게 한 후 안방에 눕히고 집 밖에서 기다리는
친구를 조용히 불러들여 아내와 합방을 하도록 하였다.


아내는 바로 태기가 있어 배가 불러왔고

드디어 아들을 순산하게 되었으며
이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다섯 살에 벌써

글공부가 일취월장하여 인근에 신동(神童)으로
소문이 자자하게 되니 사내 부부의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어 아들을 애지중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내의 부인과 합방하여 포태를 시켜준 친구는

이 신동 아이가 자신의 친아들임을 생각하며
항상 아깝고 애석하게 여기다가, 고을 사또에게

아들을 찾아달라고 고하기에 이르렀다.


사또는 사내와 사내의 친구 등을 관아로 불러들여

문초를 한 바, 아들을 찾아달라고 고한 친구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긴 하였으나,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하여 부득이하게 행한 일이었으며
친구가 비밀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약속을 어긴 점과,

 그간의 기른 정을 내세워 신동 아들을
친구에게 내 줄 수 없다는 사내의 주장이 워낙 드세어

사또는 어찌 판결하여야 할지 난감하였다.
사또는 며칠간 궁리를 해보았으나 묘안이 없어

 

신동이라는 그 어린 아들의 생각하는 바를
들어보기 위해 사내와 친구, 신동 아들을 다시

관아로 불러들여 신동 아들에게 그간의 자초지종과
포태 과정을 설명하고 어찌 생각하는지

아뢸 것을 명하였다.


그러자 신동 아들은 주저 없이 사또께 아뢰었다.
"사또 나으리! 어떤 농부가 봄이 되어 논농사를

시작하고자 하였으나, 볍씨 종자가 없어
이웃 친구에게서 이를 얻어다 못자리에

뿌린 후 모를 길러 모내기를 하였습니다.


그 후 벼가 논에서 탐스럽게 자라 익어 가는지라,

볍씨 종자를 빌려준 농부의 친구가 탐을 내어
농부의 논에 자란 벼를 추수할 주인은 볍씨

종자의 주인이었던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데
과연 이 벼의 주인은 누가 되겠습니까?

 

사또께서 이를 참작하시어 처결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을 들은 사또는 그제야 무릎을 치며 신동

아이의 진정한 아비는 신동을 포태시킨 사내의
친구가 아니라 포태를 부탁한 사내로

판결하고 욕심을 부린 친구를 훈방하였다.

 

제176화 새색시의 걱정

신부우려 (新婦憂慮)
서생원 집 막내딸이 시집을 갔다가 한 달 만에

친정에 왔는 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친정 어머니가 이 애가 아무래도 시집살이가

고되어 그런가보다 생각되어 물어 보았다.


“그래 시집살이가 고되더냐?” 그러자 딸이

아니라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아픈데라도 있는게냐?”
“아뇨, 별로 아프지는 않은데, 뱃속에

뭐가 들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래? 그렇다면 큰일이로구나”

어머니는 벌써 딸의 몸에 태기가 있다니

이건 보통 큰 변고가 아니로구나 생각하고
불야불야 이웃 마을에 사는 의원을 불러

진맥을 보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집간지


한 달도 안 된 딸의 몸에 태기가 있다면

딸의 운명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진맥을 해 보아도

딸의 몸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아무런 병도 없는데요.” 하고 의원이 말하자
딸이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 신랑이 밤에 자러

들어올 때면 꼭 무우만한 덩어리를 달고


내 몸속에 들어오는 데 나갈 때는 달린 것이

고추만해가지고 나가거든요,
그러면 그 줄어든 몫이 어디로 갔겠어요?

그것도 한달동안 매일밤 그랬으니“

제177화 외상술먹다

외상지음주 (外商之飮酒)
어느날 정가 성을 가진 어떤 선달이 술을 먹고

싶은데 돈은 없고 해서 늘 가던 술집에 가서
외상술을 달라고 했다.


"여보게 주모, 외상술 좀 먹세." 했더니
주모가 대뜸
"밀린 외상 값은 줄 생각도 않으시고,

오늘 또 외상을 달라시니 어쩌잔 말씀요,


미안하지만 그럴수 없구만요."

주모는 새침해가지고 한마디로 거절했다.
하는 수 없어 한옆의 툇마루에 멀쑥이 앉아 있는 데
마당에 펴 낸 멧밥을 돼지가 와서

마구 먹어대고 있었다.


그러자 얼마 후에 주모가 나와서

돼지를 쫒아 낸 후에 선달을 나무랬다.
"세상에, 선다님도, 그래 돼지가

멧밥을 다 먹도록 보고만 계셨단 말씀요?"


그랬더니 선달이
"허, 이 사람, 나는 저 돼지가

돈 주고 사먹는 줄 알았지 무언가."

제178화 황소머리를 문지르다

황우전두수소 (黃牛前頭手掃)
어느날 박서방이 암소를 끌고 접을 붙이려고

황소를 찾아 이웃 마을 강 첨지네로 갓다.
그러나 황소는 암소를 본체 만체 상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첨지가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되겠는데,

이놈도 한 달 동안 계속 그 짓만 해 대니 맥이

풀린 모양이야."에 박 서방이 "하루 품을

메고 암소를 끌고 왔는 데 무슨 수가 없을까?"


"옳지 참, 동네 노인들한테 들은 얘긴 데

소가 피로했을 때는 뿔과 뿔 사이를 비벼서
문지르면 정력이 생긴다던 데

한번 시험해 보면 어떻겠나?"


이말에 황소 임자는 큼직한 쇠솔로

황소의 양 미간을 쓸어 주었다.
그러자 황소가 정력이 솟아나서

암소가 씨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박서방은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그 다음 달에 박 서방은 또 다른 암소를 끌고 가서
"여보게 강첨지, 이번에도 황소가 피로해

한다면 어서 쇠솔을 가져오게나." 하자
"응 그건 알고 있네, 그런데 이걸 좀 보게"
하면서 강 첨지가 자신의 머리를 내 보였다.


강첨지의 머리는 앞머리가 몽땅

빠져서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요전에 자네가 다녀간 뒤로 내 마누라가

그것을 보고 매일 밤 내 앞 머리빡을 어찌나
문질렀는지 그만..."

 

제179화 솔방울 두개를 보내다

승부이송자 (送附二松子)
한 농부가 쌀을 꾸러 이웃에 있는

선비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그 집에서도 아침 밥을 못 짓고 있었는 데

주인 선비는 무언가 편지를 쓰고 있었다.
"아침도 못 잡수셨으면서 무슨 편지를

그렇게 쓰고 계신감유?"


"오죽 답답하면 이른 아침에 쌀 좀 꿔 달라고

친구한테 편지를 쓰고 있겄소?"
농부는 그럴싸하다 싶어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여보, 우리도 아무게네 집에다 쌀 좀

꿔 달라고 편지를 써 보냅시다그려."


그런데 무식해서 글을 쓸 수가 없어서

종이에다 쌀섬 두개를 그려 보냈다.
그랬더니 얼마 안 있어 회답이 왔는데 무었이

똘똘 싸여 있기에 풀어 보니 솔방울 두 개가 나왔다

아내가 이상스럽게 생각하고 물었다.


"여보 그 방울은 무슨 뜻일까요?"
그러자 농부가 벌컥 화를 내면서 말했다.
"멍충이같이, 그것도 몰라!

아 자기네 집도 양식이 딸랑딸랑해서

못 꾸어 주겠다는 것이 아니여?"

제180화 黃牛와 암소를 바꾸다

황우교환 (黃牛交換)
어느날 김영감이 소를 팔러 장에 갔는 데

거기서 역시 소를 팔기위해 먼저 와 있는 사돈 되는
박영감을 만났다.


“아이구 오랫만이구먼유.”
“아이구 오랫만유” 하고 서로

인사를 나눈 뒤 김영감이 먼저
“난 암소를 팔아 황소로 바꿔 사려고 왔구먼유”

  하자, 박영감이 기쁜듯이
“아따, 그럼 잘 됐구먼유, 난 황소를 팔아 암소를

사려고 왔응께 서로 바꾸면 되겠구먼유”
“그려유?, 증말로 잘 됐네유, 우리끼리 소를 바꾼다면
중개인헌티 구문 줄 필요도 없으니 월매나 좋소?“


“그럼 우리 소를 서로 바꾸기로 하고

구문 줄 돈으로 술이나 한잔 합시다”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두 사돈 영감은 술집에

들어가 권커니 잣커니 하면서 술을 진탕 마셔댔다.


해가 다 넘어가 땅거미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두 영감은 술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서로 소를 바꿔어 타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소들은 그 속을 알 까닭이 없는지라

각각 새로운 주인을 싣고 원래 자기 집으로 갔다.


(김영감 집)

깜깜한 밤에 소가 사람을 싣고 오니까

주인 마나님은 으레 자기의 바깥 영감인 것으로만

알고“어휴, 먼 약주를 이렇게 많이 잡수셨대유?”

하고 핀잔을 주면서 술내가 코를 찌르는 것을
억지로 참고 부축해 깜깜한 방에 요를 깔고 뉘여

그대로 같이 한 이불속으로 들었다.

 한참을 세상 모르게 잠에 떨어졌던 박영감은

갈증기를 느껴 머리맡에 놓여 있던 냉수그릇을
집어 물을 벌컥벌컥 마시니 그제사 정신이

좀 나는 것 같고 잠도 좀 깨는 것 같았다.


옆에서 자고 있는 마누라 모습을 보니 갑자기

아랫도리에 팽팽한 기운이 움터 올라 슬그머니
마누라 위에 포개져 일을 하고 있는 데

 

그때 장지문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에
마누라 얼굴이 비춰 지는데 마누라가 아니고

다른 여인의 얼굴이었다.


깜짝 놀라 자세히 살펴보니, 아뿔사!

안사돈 얼굴이 아닌가. 더군다나 밑에 안사돈도
이미 잠을 깬 상태에서 사태를 파악한 듯

성난 얼굴로 박영감을 쏘아보고 있는게 아닌가.


이게 도데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오늘 낮부터의 일을 곰곰이 더듬어 보고서야
사태를 짐작 할수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밑에 안사돈 반응만 보고 있는 데
안사돈이 갑자기 성난 목소리로
“위에 올라와 있는게 사돈영감 맞쥬?,

아니, 어쩌다가 일이 이지경이 됐대유?


나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사돈영감이 알아서 책임 다 져유.“
이에 박서방은 풀이 다 죽어 기어가는 목소리로
”알겠구먼유, 지가 모든 책임을 다 지겄슈,

근디, 방은 일단 뺄까유?" 하자


밑에 안사돈이“아니, 말이 그렇다는 얘기쥬”

하면서 위에 사돈영감을 세게 끌어 안았다.
(박영감 집)
한편 박영감의 소도 김영감을 싣고

박영감 집에 도착하였다.


소가 주인을 싣고 오자 박영감 마누라는

반가워 초롱불을 들고 나와서
소위에 업푸러저 실려 온 사람을 보고
“아니 누구랑 이렇게 술을 많이 드셨대유”

 

하면서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주인영감이 아니고 사돈영감 김서방이 아닌가.
자초지종을 알고 싶어 흔들어 깨워 봤으나

인사불성이었다. 하는 수 없이 머슴을 불러
사랑채로 부축해 뉘여 놓고 대문밖에 나가 한참을

기다려 보아도 남편이 돌아오는 기척은 없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안채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으나 쉽게 잠이 오질 않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사랑채에서 인사불성으로 잠에 곯아 떨어젔던

 

김서방은 밤이 이슥해질 무렵 오줌보가 터질 듯한
뇨통을 느껴 반사적으로 일어 났으나

아직도 정신은 몽롱한 상태다.


간신히 미닫이 문을 열고 밖에 나가 그집 마당에다

시원하게 일을 본 다음 사랑채 잠자리를
찾아 든다는게 그만 안채 마나님 방으로 들어갔다.

 

덮여있는 이불을 제치고 속으로 들어가니

옆에 누가 자고 있는 것 같은 데 으레 마누라거니
생각하고 그대로 누워 잤다.


이른 새벽녘 술기운과 잠에서 약간 깨어난

김서방은 으레 하던 습관대로 비몽사몽간에
옆에 자고 있는 마누라 위에 올라가 일을 보기 시작했다.


얼마후 밑에 안사돈은 갑자기 가위 눌린 듯하여

어렴풋이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영감이 돌아와
자기를 안고 있는게 아닌가. 당장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지금 분위기도 그렇고 해서


일이 끝난 뒤에 물어 볼려고 꾹 참고

영감의 하는 일에 조용히 호응해 주었다.
그러나 일이 끝나자 마자 영감은 다시

잠에 곯아 떨어졌다. 안사돈도 하는 수없이
“이따가 아침에 물어 보지 뭐”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이른 아침이 되자 안사돈이 먼저 일어 났는 데

옆에 누워 자고 있는 사람이 아무리 봐도
자기 영감이 아니었다. 그래서 얼굴을 약간 돌려

살펴보니 어제 저녁에 소에 실려온 사돈영감이
아닌가. 기절초풍 할 노릇이었다.


급히 김영감을 흔들어 깨우자 김영감도

눈앞에 벌어진 일에 대경실색하였다.
서로는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눈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안사돈이 살그머니 미닫이 문을 열고 밖을 살핀 뒤

김영감에게 빨리 서둘르라고 눈짓을 보낸다.
김영감은살그머니 미닫이 문을 열고 나와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마당으로 내려와 간신히 사랑채로
들어가 어제저녁 자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생각을 해 보니 기막힐 노릇이다.

내 집에서도 똑같은 이변이 일어 났을게 아닌가.
불야불야 옷을 주워입고 소를 끌고 가는 것도

잊은채 자기 집으로 내 달렸다.


(두 사돈 길에서 마주치다)
박영감과 김영감은 각자 자기 집으로 황급히

내 달리는 도중 길에서 맞딱드렸다.
두 사람은 서로 놀라 땅에 얼어 붙은 듯 걸음을

멈추고 상대방의 어제밤 행적을 훤히 알고 있는 듯


아무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처다만 보고 있었다.
잠시후 박영감이 심드렁하게 말문을 열었다.

 

“동서, 소는 워쩔꺼유?” 하자
김영감이 “워쩌긴 뭐 워쩌유,

다시 장에 끌고가 바꿔 와야쥬” 하자
박영감이 “그러면 이번에는 아예

마누라까지 끼워서 바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