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퇴계 선생과 기생 두향의 사랑 이야기 전설

우현 띵호와 2021. 9. 25. 23:05

퇴계 선생과 기생 두향의 사랑 이야기 전설

이황(李滉) 퇴계(退溪)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직히도 사랑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선생이 경상도 풍기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변고였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며
어느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

퇴계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선생은 두향을 보듯 매화를 애지중지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퇴계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선생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
퇴계선생의 시 한 편이다.

퇴계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죽기까지 사랑한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