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고금소총161-170화

우현 띵호와 2021. 9. 25. 23:03

고금소총161-170화

제161화 어떠한 벼슬을 주랴?(何官除授)

시골에 살던 어떤 상번군사(上番軍士, 지방군인이

서울 근무명령을 받고 올라감))가종묘 문지기로 배정이 되었다.

그 때에 군사의 상관인 수문부장과 종묘령(宗廟令)등은 일 없이

한가로이 늘 베개를 높게 베고 잠을 자거나

술과 밥 내기 노름이나 할 따름이었으므로, 군사는

늘 마음 속으로 부러워하였다.

군사는 지방에서 올라와 여비가 부족하여 여각이나

주막이 아닌 여염집을 밥집으로 정해두고

왕래하며 밥을 먹었는 데, 주인집은 과부가 살았고

주인은 안채에 있으면서 여종을 시켜 밥을

지어내어다 중문 바깥의 툇마루에 갖다 바치도록 하였다.

하루는 군사가 밥집으로 가 중문 밖에서 밥을 달라고 외쳤는데

마침 여종이 심부름을 나가고

없어 아무 대답이 없자 곧장 중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채 마루 한쪽에 밥상은 이미 차려져

있었는 데 주인 과부는 마루 위에 드러누워

네 활개를 벌리고 곤하게 자고 있었다.

그리고 마루 한쪽 끝에는 아교가 담긴 그릇이 있었으므로

군사는 아교를 조금 덜어 물에 묽게

타서 과부의 음문(陰門)에 몰래 발라놓고는 마루에 걸터앉아 밥을 먹었다.

얼마 되지 않아 과부가 잠에서 깨어났는 데,

음문이 축축한 것 같아 살피니 진득하고 끈끈한 물에

젖어있고 군사는 밥을 먹고 있었다.

과부는 잠든 틈에 군사가 몰래 자신을 범한 후 밥을 먹고 있는

것이라 여기고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대가 어찌 안채까지 들어왔소?"

"때는 늦은데다 몹시 배고픈 나머지 당돌하게 들어와 밥을 먹었으니 용서해 주길 바라오."

군사가 이렇게 말하자 다시 과부가 말하였다.

"흉악한 일이오. 당신 이제 어떻게 할 터이요 ?"

하고 책망하는 척 하더니 마침내 군사의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가 마음껏 서로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었다.

이때부터 과부의 접대하는 정성이나 음식의 풍족함이

전 보다 몇 배는 더하였으므로 군사는 몰래

마음 속으로 자랑스럽고 기쁜 생각이 들어

하루는 자신의 양물(陽物)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너의 팔자는 정말 좋다. 네게 관직을 줄 수 있다면

어떤 관직을 제수해야 마땅할꼬?

선전관(宣傳官)은 네가 무과(武科)를 하지 않은데다

외눈박이이니 아니 되고,

한림학사(翰林學士)는 네가 문과(文科)를 하지 않은데다

시골의 글도 못 배운 한미한 출신이니

감히 바랄 수가 없지. 내가 보건대 수문부장(守門部將)과

종묘령(宗廟令)이 녹봉도 많이 받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허구헌 날 편안하고 한가로우니

정말 좋은 직책이로다. 너에게 줄만 하도다."

이러더니 갑자기 자기 양물을 향하여

"수문부장님 !"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곁에서 우연히 엿들었던 사람이 이 말을 사람들에게 전하자

듣는 사람들이 박장대소하였다.

그 후로 수문부장이나 종묘령 같은 벼슬아치들을

바로 '호팔자(好八字)'라며 놀리게 되었다.

 

제162화 내 말을 들어주면 아무 말 않겠소(若聽吾言 當無言矣)

영남의 어떤 군사가 서울에서 번(番)을 서고 한 달의 기한이 차

시골로 돌아가는데 충주에 이르자

날이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떤 시골집에서 하룻밤 자려고 하였으나 그 집에서는 바야흐로

제사상을 차려놓고 주인인 듯한 여인이 말도 붙일 수 없게

굳이 거절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군사는 마침 울타리 밖에 버려진

헛간이 있는 것을 보고선 잠시 들어 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울타리 안쪽에서 여인이 제사음식인 떡과 밥,

생선, 과일 등을 보자기에 많이 싸서 헛간으로 던지며

은밀한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돌개 아재 오지 않았어요 ?"

군사는 그 여인이 과부가 된 후 사통하는 사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목소리를 낮추어 은근하게 속삭이며 응답해 주었다.

"와서 기다린 지 오래 됐소."

여자가 말하였다.

"먼저 음식 드시면서 요기나 하고 기다려요. 제사 끝나고 나올게요."

군사는 음식을 받아 배불리 먹었는데 만약 돌개 아재란 사내가

오면 마주쳐 봉변을 당할 거라는 생각에 헛간 한쪽 구석으로

몸을 숨기고 엎드려 있었다.

그러자 과연 어떤 사내가 오더니 목소리를 죽여서 묻는 것이었다.

"아줌마, 나 왔소!" 그리고는 들어와 앉더니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이제 밤이 깊어질텐데 왜 안 나왔지?"

시간이 조금 지나 여인이 다시 나와서 사내에게 과일을 조금 건네주자 사내가 꾸짖었다.

"죽은 남편 제사 술과 음식이 그득할 텐데 먹을 것이라고는 조금이고,

또 어째서 이렇게 늦게야 나왔소 ?"

"아니, 아까 술에 고기, 생선, 과일을 많이 주었는데

어째서 적으니 늦었느니 하는 거예요?"

여자가 대꾸하자 남자가 다시 투덜거렸다.

"나는 지금 막 여기 왔는데 당신이 먹을 것을 주었다는 사람은 누구란 말이오 ?

서로 두어 마디 더 따지더니 사내가 말하였다.

"여기 어디에 다른 사람이 있어 가지고 당신이

나인 줄로 잘못 알았던 게요. 함께 찾아봅시다."

마침내 헛간 속을 두루 뒤지는데 군사 또한 일어나

어둠 속에서 살금살금 그들의 꽁무니 뒤를

따라다니며 몇 차례 맴돌이를 한 끝에 끝내 서로 마주치지 않았다.

남녀는 헛간에 사람이 없는 것으로 여기고

마침내 집안으로 들어가 서로 정을 통하더니

닭이 울자 사내가 나가고 여인은 사립문에 기대어 사내를 배웅하였다.

사내가 멀리 사라지자 되돌아서는 여자를 헛간에서 뛰어나온 군사가 끌어안으며 말하였다.

"당신이 간부(姦夫)와 사통(私通)하다가 나에게 발각되었으니

내가 사방에 소문을 퍼뜨려야 마땅할 것이오.

하지만 당신이 내 말을 들어주면 아무 말 않겠소."

여인이 마침내 군사의 말을 따르자 군사는 여인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가 환락(歡樂)을 맛 본 후 길을 떠났다.

 

제163화 마님이 명하시는 데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主婦有命 敢不惟從)

어떤 시골 여인이 머슴의 양물(陽物)이 크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사통(私通)하려는 마음은

있었지만 미쳐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하루는 여인이 갑자기 아랫배를 부여 안고서 죽겠다고

소리 지르자 머슴은 그 뜻을 은연중에 알고서 말하였다.

"마님, 어디 아프십니까 ?"

"배가 차갑고 아파 죽을 지경이야.

듣자하니, 뜨거운 배를 서로 마주 대고 있으면 바로 낫는다던데."

"그런데 주인 나리는 멀리 출타하셨고 대어 줄 마땅한 배가 없으니 어찌할꼬?

아파서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너의 배를 가까이 하여 낫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마님께서 명하시는 데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남녀간에는 꺼리는 것이 있고 내외의 구별이 없을 수 없으니

나뭇잎으로 마님의 음호(陰戶)를 가리고서 서로 가까이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므나."

여인은 바로 나뭇잎으로 사타구니를 가리고서

머슴으로 하여금 옷을 모두 벗고 배를 서로 마주

대게 하였는데 모르는 사이에 이미 터질 듯이 커져버린

머슴의 불룩한 양물(陽物)이 나뭇잎을 뚫고 마님의 오목한

음호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여인이 물었다.

"나뭇잎은 어디에 있길래 너의 양물이 갑자기 내 몸 속으로 들어왔느냐?"

"제 양물이 본래 강해 놔서 나뭇잎을 뚫었으니,

이를테면 굳센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명주베를 뚫는 이치와 같습지요."

인하여 더불어 지극한 즐거움을 나누고 여인이 말하였다.

"배를 마주 대는 것이 과연 효험이 있구나. 복통이 어느새 씻은 듯이 사라졌구나."

 

제164화 음탕한 첩과 음흉한 종(淫妾兇奴)

어떤 사람이 그 첩을 친정으로 근친(覲親)을 보내면서 호위를 시키기 위해,

종들 중에서 어리석어 보이는 자를 골라 물어보았다.

"옥문(玉門)을 아느냐 ?"

"모르겠는뎁쇼."

이 때 마침 불나방 한 마리가 사람 사이로 날아가자 종이 이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저게 옥문인가요 ?"

주인이 기뻐하며 그로 하여금 첩의 호위를 맡겼다.

첩과 종이 길을 가다가 어떤 냇가에 이르러 첩을 업고

냇물을 건너던 종이 손가락으로 첩의 옥문을 간질이며 물었다.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요?"

"이것은 네 주인의 양물(陽物)을 가두는 감옥이다."

내를 건넌 후 종이 양물을 키워 세우더니 짚신을 벗어

양물에 걸어 두고서 거짓으로 잃어버린

짚신을 찾는 척 하자 첩은 종의 양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짚신은 여기 네 양물에 걸려있지 아니하냐 ?"

"그렇군요. 이놈이 바로 짚신 도둑놈일세.

이놈을 가두어 두게 마님의 감옥을 빌려 주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첩은 기뻐하며 후미진 수풀 속으로 같이 들어가 종의 말대로 좇았다.

 

제165화 늙은 기생의 명 판결(老妓明判決)

갑(甲)과 을(乙) 두 사람이 어느 날 음양(陰陽)에 관한 일을 논하였다.

"남자의 양물(陽物)이 크면 여자가 반드시 미혹(迷惑)된다네."

을이 대꾸하였다.

"그렇지 않네. 여자가 미혹되는 것은 오로지 잘 애무 주는데 있는 것이지

양물의 크고 작음에 있는 것이 아닐세."

갑과 을은 서로 다투다가 갑이 마침 지나가는 늙은 기녀(妓女)를 불러들였다.

"그대는 평생 매우 많은 남정네를 겪었을 터이니 판결을 할 수 있겠네 그려."

갑이 말하며 말다툼하는 자초지종을 들려주니 늙은 기녀가 웃으며 말하였다.

"건장한 양물을 음호(陰戶)에 심으면 여인의 정은 이미 넘쳐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여인들이 보배로 여기는 남자의 양물은 이렇답니다.

첫째는 높이 솟구칠 것이며(一昻),

둘째는 따뜻할 것이며(二溫),

셋째는 머리가 클 것이며(三頭大),

넷째는 줄기가 길 것이며(四莖長),

다섯째는 굳셀 것이며(五健作),

여섯째는 오래 끌어 더디 끝낼 것입니다(六遲畢).

진실로 머리가 큰놈을 깊이 심어 놓고 능히 오랫동안 희롱할 수만 있다면

이는 속말로 일컫는 바 '구천동이 반값'이라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시겠거든 집에 가셔서 생선을 사다 드셔보십시오.

커야 그 맛이 은근하게 깊은 것이지요."

이에 갑은 기세가 등등해졌고, 을은 말이 막혔다.

늙은 기녀는 다시 웃으면서 말하였다.

"소인의 오늘 판결은 아마도 후일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증보(增補)할 제 속편(續篇)에 올려

참고하도록 하여야 할 줄로 아옵니다."

이윽고 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허리를 잡고 웃었다.

 

제166화 임금께 아뢸 말을 외워 보여 투기심을 그치게 하다(講奏止妬)

한 판서가 있었는데 그는 이름난 재상의 사위였다.

사위인 판서는 매우 신중한지라 왕에게 아뢸 말씀이 있으면

반드시 하루 전에 향불을 피워놓고 의관을 바르게 한 후 꿇어앉아

미리 먼저 외워본 후에야 들어가 아뢰었고 그로 말미암아 매번

주청(奏請)이 윤허되었다.

그런데 그 부인의 성품이 질투가 무척 심하여 늘상 괴로웠다.

하루는 판서가 연회에서 시중드는 기녀와 수작을 하다 돌아오니

그 소문을 들은 부인은 질투하여 강짜를 부리며 소란을 피우는지라

판서가 문득 마음속에 계책을 하나 세우고 나서 말하였다.

"나는 내일 국왕전하를 뵙고 아뢸 일이 있소. 방에서 나가 주오."

그리고는 마침내 향을 피우고 관복을 갖춰 입은 후 하인들에게 명하였다.

"내가 전하께 주청 드릴 말을 미리 외우는데

몰래 엿듣는 자가 있으면 당장 쳐죽이리라."

부인은 어떠한 주청인가 하고 문에 귀를 대고 엿들으니

판서는 부인이 미리 이러할 것을 짐작하고 왕에게 아뢸 말씀을 낭랑하게 외웠다.

"소신은 관직이 판서인데도 성품이 몹시 우매하고 열등하여

끝내 사나운 아내의 투기심을 막지 못하고 있사오니 이는 집안을

다스리지 못한 죄이옵니다.

집안도 다스리지 못하는 데 어찌 감히 국정에 참여하겠나이까.

사직하고 낙향하고저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연습을 마치자 판서는 이내 취침하였다.

판서가 사직하고 낙향하면 하루아침에 부귀영화가

물거품이 되는지라 판서의 말을 엿들은 부인은 크게 겁이나

즉시 친정으로 달려가 재상인 아버지에게 이를 알렸다.

"오늘 남편의 주청 연습이 이와 같았는데 만약 그 주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저는 녹봉(祿俸)도 없이

 

가난 속에서 어찌 살 수 있겠사옵니까? 급히 좀 멈추게 해 주시어요."

재상이 딸을 크게 꾸짖었다.

"가장의 술자리 행동에 너그럽지 못하고 이처럼 큰 우환을

자초하였으니 누구를 허물 하겠느냐?

게다가 주청드릴 말을 미리 연습까지 한 터이니

내 말을 결코 듣지 않을 것이다.

네가 스스로 애걸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인은 즉시 귀가하여 남편 앞에 나아가 절을 한 뒤 엎드려 맹세하며 간청하였다.

"이제부터 만일 투기하는 행동이 있다면 비록 죽이고 내쫓는다 할지라도

저는 달게 받겠습니다.

애걸하옵건대 국왕전하께 아뢰는 것만은 보류해 주시고 지켜봐 주십시오."

판서는 거짓으로 마지못해 따르는 듯한 기색을 지어 보였다.

이후로 부인은 판서가 기녀의 집에서

수 일간씩을 지내고 돌아와도 다시는 투기하지 않았다.

 

제167화 숙모를 속여서 먹을 취하다(詐叔母取墨)

조선에서 먹(墨)의 생산지가 한 둘이 아니지만 해주(海州)의

수양매월(首陽梅月)이 최상품이다.

한 사람이 황해감사로 제수되어 나갔다가 임기를 마치고

판서로 승차하여 돌아오니,

그의 조카 중 숙부(판서)가 지니고 온 먹(수양매월)을 탐내는 자가 있었다.

조카는 판서에게 먹을 몇 개 나누어주기를 청하였으나

판서는 없다고 거절하니 조카는 유감을 가졌다.

뒷날 그는 숙부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숙모에게 은밀히 아뢰었다.

"숙부님께서 황해감사로 계셨을 때 두 기녀와

가까이 지내며 질탕하게 노셨다 합니다.

기녀의 이름이 한 명은 수양(首陽)이라 하옵고

다른 한 명은 매월(梅月)이랍니다.

숙부님께서는 한양으로 돌아오실 때 그 정을 잊지 못하고

두 기녀의 이름을 먹에 새겨 함 하나에 가득 넣어 가져 오셨답니다.

숙모님, 숙부님께서 가져오신 함을 열고 한 번 살펴보십시오."

숙모가 즉시 함을 열어보니,

함 가득한 것이 모두 수양(首陽)과 매월(梅月)의

이름이 새겨진 먹이었다.

숙모는 노기가 충천하여 함을 들어 마당에 던지니,

먹들이 땅에 흩어져 뒹굴었고

조카는 그 먹들 중 성한 것만 골라 절반 가까이

도포 소매 가득히 담아 가지고 돌아갔다.

저녁이 되어 밖에서 돌아온 판서는 먹을 담았던 함이 땅에 버려져

있는것을 보고 무척 놀라 물으니 부인이 꾸짖었다.

"사랑했던 기녀들의 이름을 어째 손바닥에는

새겨오지 않고 먹에만 새겨오셨소?"

재상은 부인이 조카에게 속은 것을 알아채고 부인에게 말했다.

"해주 진산(鎭山) 이름이 수양인데,

그 산에서 나는 먹의 이름을 매월로 삼은 것은 오래 전부터요."

하고 변명하였으나,

부인은 그래도 믿지 못하여 쉬지 않고 질책해 대는지라

판서는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었고,

이 이야기는 한 때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제168화 사다리에서 떨어져 시집을 가다(落梯成婚)

양주(楊洲)땅에 최씨의 세 딸이 살았다.

그들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오라비인 최생에게 의지하고 있었는 데,

최생은 재물에 인색하여 그 누이동생들을 시집보냄을

주저하는 사이에 맏이는 25세, 둘째는 22세, 막내는 19세로

꽃다운 나이에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 슬퍼하고 있었다.

마침 봄날을 만나 세 처녀는 집 뒤의 동산에 올라 놀았는 데,

맏이가 두 아우에게 말하였다.

"동산(東山)이 적막한데 아무도 없으니 우리 태수(太守) 놀이나 하고 놀까 ?"

마침내 맏이는 태수라고 자칭하고 근처에 있는 부서진 사닥다리 위에 걸터앉더니,

둘째는 형리(刑吏)로 명하고, 막내는 그녀들의 오라비인 최생으로 삼았다.

맏이는 막내의 머리를 끌어 앞에 꿇어앉히더니 죄과를 낱낱이 들추어내며 말했다.

"너의 세 누이동생들은 이미 부모를 여의고 너를 아버지처럼 믿고 있는데,

혼례를 치를 나이가 지났어도 시집을 보내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고?

가산도 제법 넉넉하고 전답도 넓은데다, 하물며 너의 누이들은 재색을 겸비하여

이웃과 마을에서 칭송 받지 않는고? 막내의 나이 19세이니 맏이와 둘째는 알 만 하다.

어찌 이처럼 잔인하게 세 누이로 하여금 빈 규방에서 헛되이 늙어가게 한단 말이냐?

너의 죄는 태형을 받아 마땅 하도다. 속히 잡아 매를 쳐라."

최생 역을 맡은 막내가 재삼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난리를 겪은 후 가산이 탕진되어 혼수를 갖추기 어려운지라

선비집안을 택하고자 하여도 한 집도 허혼(許婚)하지 않사옵니다.

소생이 혼사를 시키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니옵니다."

태수 역을 맡은 맏이가 말하였다.

"너의 말은 거짓이다. 난리를 겪은 후 가산이 탕진되었다고 핑계댄다면

난리를 겪은 자는 모두 혼사를 폐한단 말이냐?

혼사가 이루어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핑계 댄다면 딸을 둔 자는 모두

헛되이 늙도록 하여야 한단 말인고?

너의 집이 망했다면 혼수는 집안 사정에 맞도록 갖출 것이며,

또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저 건너 마을 김생의 아들이

배필감으로 적합하지 않은고?"

이때 관아의 매(鷹)를 관리하는 통인(通人)이 매를 쫓으며

동산의 세 처녀들 근처에 이르렀다가 처녀들이 하는 연극을 보고는

그만 소리를 내어 웃고 말았다. 세 처녀는 크게 놀라 달아나려다가

맏이가 그만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발을 삐고 말았다.

통인이 관아로 돌아가다가 길에서 한 나그네를 만나니 나그네가 물었다.

"이 고을 관아의 관인이시오 ?"

"그렇습니다."

"내 태수님의 집안 조카벌 친척으로서

이 고을을 찾아왔는 데 계시는가요?"

"계시기는 계시는 데, 오늘 발을 헛딛어 낙상을 하신지라

관아에서 조리중이십니다."

나그네가 관아에 들어가니 태수가 바야흐로

관아에 앉아 있는지라 나그네는 물었다.

"어르신께서 낙상하셨다고 들었는 데

무리하게 정사를 돌보고 계시는군요."

"낙상한 일이라곤 전혀 없었는 데 어디에서 그 말을 들었는가 ?"

"길에서 관아의 통인을 만나 안부를 물으니 그리 대답하던데요."

태수는 기이하게 여기고 통인을 불러들여 물으니

통인은 세 처녀의 일에 관해 모두 아뢰며 말했다.

"태수라고 자칭한 맏이가 사다리에 걸터앉아 있다가

소인의 웃음소리에 놀라 낙상한지라 나그네를

만나 그렇게 말했습니다. 농으로 대답한 것일 뿐이옵니다."

태수는 객과 더불어 박장대소하더니,

즉시 최생을 잡아오게 하여 문초하였다.

"너는 세 누이동생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혼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집보내지 아니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는 마침내 매질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최생이 태수에게

아뢰는 바가 통인에게서 전해들은 막내가 한 말과 한결 같은지라

태수는 또한 맏이가 한 말을 차례대로 말하며 꾸짖었다.

그리고는 꾸짖는 말끝에,

"저 건너 마을 사는 김생의 아들이 맏이의 배필로 적합하지 않은고?"

하니 최생은 이윽고 태수의 말에 따르기로 하여 그날로 김생을 불러

택일을 하고 혼수를 보내게 하여 맏이의 혼례를 치루게 하니

맏이는 과년한 나이 25세에 이르러 비로소 남녀상함(男女相合)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맛보게 되었다.

 

제169화 장차 그곳에 뼈를 묻어다오(將我老骨葬于那裡)

어떤 선비가 스승에게서 풍수지리(風水地理)를 학습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에

아내를 벌거벗긴 후 손으로 아내의 콧마루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곳은 용이 나오는 곳이오.(發龍之所)"

이어서 두 젖가슴을 쓰다듬더니 말하였다.

"좌청룡 우백호가 다 갖추어져 있군."

그리고 허리 아래를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금성호혈(金星虎穴)이군."

이윽고 선비도 옷을 벗고 아내의 몸 위로 올라가자 아내가 물었다.

"무엇을 하려는 거예요 ?"

선비가 대답하였다.

"산소자리의 형국이 다 갖추어졌으니 나성(羅星)을 쥐고 와서

물구멍(水口 ; 풍수지리의 정기가 흘러들어간 곳)을 막으려는 것이오."

선비의 부친이 건너방에서 잘못 알아듣고 아들 내외가 풍수를 논하는

것이라 여겨 큰 소리로 말하였다.

"세상에 그렇게 좋은 혈(穴)이 있다니!

장차 내가 죽거든 그곳에 뼈를 묻어다오."

하고 소리치니 후일 듣는 사람마다 웃었다.

 

제170화 박색이었더라면 틀림없이 침을 뱉었을 것이다(若汝妻之薄色 方伯必唾)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판서에까지 오른 송언신은 위인이 흉활(兇猾)하고

탐비(貪鄙)하여 음패(淫悖)스러운 행실이 많았다 하며 호색하였다.

스스로 말하기를 평생에 반드시 여색(女色) 일천(一千)을 채우리라 호언하고

비록 병든 할미나 한쪽 얼굴에 혹이 달린 추녀라도 가리지 않은 까닭에

물건 파는 여자나 나물 캐는 아낙네라 해도 감히 그 동네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일찍이 강원감사가 되어 관동지방을 순시하며 돌다가 원주(原州)의 흥원창(興原倉)에

이르렀을 때,

관아의 객사는 병화(兵火)로 불타 없어졌으므로 이방(吏房)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이방에게는 과년한 딸이 있었는 데 송언신이 마음을 두고 곁눈질을 하는데도

응하지 않았다.

이날 밤에 언신은 몰래 그들 모녀가 누운 곳을 눈여겨 두었는데 딸이 총명하였던지라

언신이 눈독들이고 있는 뜻을 알아채고서 어머니와 누운 자리를 바꾸었다.

밤이 깊어 언신이 옷을 추켜 잡고 들어가 그 어머니를 딸로 알고 덮치자

어머니가 도둑으로 여기고 소리를 질렀는 데 언신이 급히 입을 막으면서 말했다.

"나는 감사이지 도둑이 아니다."

어머니는 언신의 위세에 겁먹어 언신이 하자는 대로 응해 주었다.

그 뒤에 이방이 이웃 사람과 싸우는 데 이웃 사람이 이 일을 들어 꾸짖었다.

"너의 하는 짓이 이러하니, 네 아내를 방백(防伯)이 겁탈하여 마땅하지."

그러자 이방이 말하였다.

"내 처가 예쁘니 감사가 가까이 하였지,

네 처같이 박색이었다면 감사가 틀림없이 침을 뱉었을 걸"

듣는 자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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