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어명과 임기응변

우현 띵호와 2021. 9. 25. 23:04

어명과 임기응변
경복궁 경내(境內)에 경회루가 있고

이 경회루는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다.

조선시대에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면 임금과

대신(大臣)들이 이 루에서 연회를 베풀고는 하였다.

오래 전에 들은 것인지라 어느 임금과 어느 대신과의

이야기인지는 잊어버렸으나 다음과 같은 실화(實話)가 있다.

하루는 임금이 대신들과 경회루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취기(醉氣)가 거나하게 오르자 임금의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임금 “경들은 짐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겠소?”
대신 “물론이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임금 “어떤 방식으로 충성을 맹세할 수 있겠소?”
대신 “전하께서 죽으라는 어명을 내리신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라도 죽겠습니다.”

임금은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말이 진실이렸다? 만약 경이 짐을 기망(欺罔)한다면

경은 목숨을 보전하지 못하리라.”

임금의 엄숙한 표정을 본 대신은 속으로 은근히 겁을 집어먹으며,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전하를 기망하겠나이까?”

임금은,
“짐은 그대를 매우 아끼는 바이나 다른 대신들에게

내 말의 위엄을 세우기 위하여 부득이 읍참마속(泣斬馬謖)

①의 심정으로 경에게 명하노니 그대는 저 연못에 빠져 죽어보라.”

술김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대답한 말이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를 상황으로 돌변하자

대신은 무척 당황하였으나 지엄한 임금의 명인지라

연못에 죽으러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은 연못 가운데 물이 목까지 차는 곳에 들어가서

머리를 물 속에 쏙 집어넣고 한참 있다가 고개를 들고는

슬금슬금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임금 “경은 어찌하여 어명을 어기고 물에 빠져죽지 않고 나왔는가?”
대신 “전하 제가 물속에 들어갔더니 옛날 중국 전국시대의

초나라 재상 굴원(屈原)

②의 혼을 만났는데 그의 말을 듣고는 얼른 다시 나왔나이다.”

임금 “굴원이 무슨 말을 하였기에 나의 명을 어겼는가?”
대신 “굴원의 말이 ‘나는 무지하고 못난 왕을 잘못 만나서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지만 그대는 어찌하여

명석한 성군(聖君)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한단 말이요. 어서 나가서 임금을 잘 보필하시오.

’ 하기에 정신이 번쩍 들어 급히 나왔나이다.”

이리하여 술김에 한 농담으로 인하여 임금은 졸지에 성군이

되었고 대신은 목숨까지 바치는 신하가 되었으니

연회는 더욱 흥겨웠고 임금과 대신들은 대취하도록 마셨다고 한다.

이정도의 임기응변과 재치가 있어야 명신(名臣)이 되지 않을까요?

註① 泣斬馬謖: 삼국지에 나오는 말로서 재갈량이 마속을

목을 베고 눈물을 흘렸다는 말이다.

마속은 촉나라의 지략을 겸비한 장수였다.

그러나 재주가 넘쳐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유비가

재갈량에게 마속을 중용하지 말라는 유언까지 하였다.

초나라가 위나라 조조의 군사와 싸우게 되었을 때 마속이

자원하여 조조의 군사를 격파하겠다고 선봉장을 자원하였다.

재갈량은 유비의 유언이 있어서 주저하였으나 마속이 적극

원하고 나섰고 또한 평소에 그를 신임하였는지라 선봉장을

맡기면서 군량미의 길목인 협곡에 매복하였다가 공격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마속은 그 명을 듣지 않고 높은 지역에 진을

치고 적군을 섬멸하려다가 도리어 조조의 명장 사마의(司馬懿)의

군사에게 포위되어 대패하게 되였다.

이에 재갈량은 군령(軍令)의 지엄함을 보이기 위하여

여러 장병들이 보는 앞에서 총애하는 장수 마속을 눈물을 흘리며

참수(斬首)하였다.

註②

屈原: 중국 戰國時代에 楚나라의 재상으로서 정치가이며 문장가이다.

生沒年代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기원전 342년~278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굴원은 강국인 秦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齊나라와 合從하여야

한다고 왕에게 진언하였으나 懷王은 간신과 애첩의 반대로 이를

듣지 않았다가 진나라에서 객사하였다.

회왕이 죽고 나서 그의 장남이 왕이 되고 둘째 아들은 재상이

되었는데 굴원은 회왕을 객사하게 한 그의 둘째 아들을 비난하는

바람에 奧地로 추방되었다가 강물에 투신하여 죽었다.

그의 유명한 漁父詞는 流配地를 떠돌다가 지은 글로서

어부를 만나서 대화하는 형식으로 지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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