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1-33석왕사에 얽힌 내막. "상편"

우현 띵호와 2021. 9. 26. 23:46

방랑시인 김삿갓 01-33
석왕사에 얽힌 내막. "상편"

김삿갓은 마침내 본연의 생활로 돌아왔다.
집을 떠난지 이년째 ,

그는 안락한 생활보다 천대를 받으며

찬밥 한술로 끼니를 때우게 되더라도

술만 한잔 더해 진다면 바람따라 흘러다니는

지금의 생활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김삿갓이 안변 관아를 떠나 북쪽으로 길을 잡아

발길을 옮긴지 하루째 , 안변 설봉산 석왕사(釋王寺) 앞에 이르렀다.

이곳은 이태조(李太祖)의 건국신화가 서려 있는 곳이었다.

김삿갓이 이곳 석왕사에 온 까닭은 금강산 입석암을 떠나때

" 혹시 안변 석왕사에 가게되면 반월 행자를 찾으시오.

그 아이는 나의 제자로 지금은 그곳에 있소이다.

사람이 선량하고 다정하니 , 삿갓선생을 정성껏 도울것 이오."

라는 노스님의 당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설봉산 석왕사는 규모가 워낙 크고 웅장해서 금강산의 장안사나

유점사에 견주어도 규모면에서 조금도 손색없는 큰 절 이었다.

특히 절을 둘러싸고 있는 천년 노송들은 향기짙은 송진 냄새를

풍겨주고 있어 , 금강산과는 또 다른 정치가 물씬 풍겼다.

김삿갓이 경내에 들어서자 처음 보이는 것은 사대천왕 이었다.

사대천왕은 무시무시한 덩치에

머리에는 관(冠)을 쓰고 손에는 커다란 창을 꼬나쥐고,

앉듯이 서서 .. 두 눈을 성큼 부릅뜨고 이곳을 출입하는

죄 많은 중생들을 노려 보고 있었다.

김삿갓은 경내 곳곳을 휘둘러보며

입석암 노승이 말한 반월 행자를 찾았다.

나이가 삼십가량 되어 보이는 반월 행자는

김삿갓을 만나자 크게 반가워했다.

"삿갓 선생님이시라고요 ?

나의 스승이신 큰스님의 기별을 통해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곳에 계시는 동안 잘 도와 드리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내가 석왕사에 오래 머물러 있을 생각은 없지만 ,

있는 동안 구경이나 잘 시켜 주시오."

"예, 석왕사에 대하여는 제가 모르는 것이 없다고 여깁니다.

물으시는 대로 설명을 해올리지요."

반월 행자가 앞장서 석왕사 경내를 안내하며 하는 말이,
"선생은 이 절이 언제 누구의 손에 의해 창건 되었으며 ,

절 이름을 석왕사로 부르는지 아십니까 ?"
하고 물었다.

"글쎄요 , 석왕사는 어떤 유래를 가진 절 입니까 ?"
"그럼 제가 자세한 사연을 설명 드리지요."
그리고 반월 행자는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유래를 들려 주었다.

고려말 이성계가 영흥에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청년 이성계는 무예를 닦는라고 각지로 떠돌아 다니다가

어느 날 밤에 안변 산속에 있는 조그만 암자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에 무너져 가는 집에서 서까래 세개를 짊어지고 나오는 꿈이었는데 ,

집안에 거울은 깨져 있고 화원에 꽃은 모두 낙화(落花)되어 있었다.

꿈에서 깬 이성계는 마음이 착찹하기 이를데 없었다.
해서 , 암자의 중에게 물었다.

"스님은 혹시 해몽을 할 줄 아시오 ? "
"저는 꿈을 풀 줄 모릅니다."

"그러면 이 부근에서 혹시 해몽을 잘 하는 사람은 없을까요 ? "
"여기서 저 산속으로 십 리쯤 더 들어가면 토굴 속에서

수행중인 도사 한 분이 계신데,

그분이 파자점(破字占)을 잘 치기로 소문난 분이니

꿈 해몽도 잘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 도사의 이름은 무어라하오 ? "
"무학(無學) 도사라 부르옵니다."

이성계는 즉시 토굴로 무학도사를 찾아 갔다.
무학도사는 육십 가량 되었을까 , 토굴 속에서 혼자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파자점을 치러 먼저 찾아온 손님이 한 사람 있었다.
"평생 신수를 보려면 당신이 마음 속에 두고 있는 글자를

한 자만 써보여 주시오.

그러면 그 글자를 가지고 점을 쳐주겠소."
생긴 것도 준수하고 입은 옷도 말끔해 보이는 앞선 사람이

붓을 들어 문(問)자를 써보인다.

이성계는 글자를 가지고 어떻게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칠수 있겠나 하는

,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다.

무학도사는 問자를 손에 받아 들고 ,

눈을 감더니 오랫동안 명상에 잠긴다.

그러다가 홀연 눈을 뜨더니 ,

問 자를 이리도 놓고 저리도 놓고 바라 보면서

"쩝쩝" 소리를 내어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문득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을 하였다.
"음 ..평생 신수가 아주 고약하군 그래,

당신은 암만해도 거지 신세를 한평생 면하기가 어렵겠소."

그 소리에 놀란 것은 장본인 뿐만 아니었다.

등 뒤에서 무심히 듣고 있던 이성계도 깜짝 놀랐다.

무학도사가 말한 한평생 거지꼴을 면할수 없다는 사람은

어디로 보나 거지차림이 아니었다.

그는 옷도 깨끗하게 입었고 생김새도 준수하여 거지 같지 않았다.
"스님 ! 제가 어째서 거지 팔자를 타고 났다 하십니까 ?

저는 거지가 아니옵니다."

거지로 단정받은 사나이가 이렇게 항의하자

무학도사는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을했다.

"바른대로 말하라구 ! 問자는 입구(口)자가 문에 걸렸으니,

그대가 문전 걸식을 하는 거지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 "

당사자는 그 말을 듣고 움찔 하더니,

한동안 아무말 없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

"나는 거지 신세를 면해 볼까 하여

옷까지 깨끗하게 갈아 입고 점을 치러 왔건만,
아무래도 팔자 도망은 못 하는 모양이구나 ! " ...

혼자 장 탄식을 하며 총총히 달아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
그리고 보면 무학도사의 파자점은 족집게 처럼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이성계는 놀라면서도 의문이 생겼다.
그것은 무학도사의 이론대로라면 문(問)자를 써 보인 사람은

모두 거지라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계는 놀라움과 함께 은근한 실망감도 생겨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찾아 왔는고 ?"
무학도사가 이성계를 바라보며 물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이성계가 말했다.

"저도 파자점을 쳐보고 싶어 왔사옵니다."
"올치 , 그럼 마음 속에 두고있는 글자를 써 내보이게.

그래야 그 글자를 가지고 점을 칠게 아닌가."
도도하기 이를데 없는 말씨였다.

이성계는 도사를 골탕 먹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아무 글자나 써내도 상관 없겠습니까 ? " 하고 물었다.

"물론이지 ! 무슨 글자라도 좋으니 당신이 쓰고 싶은 글자를 써보이게."
이성계는 주저하다가 조금전 거지라고 단정 받았던

사내가 썼던 글자와 똑 같은 問자를 써보이며
말을 했다. "이 글자로 점을 쳐보아 주십시오."

무학도사는 問자를 받아 들더니 또다시 눈을 감고

오랫동안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런 연후 , 눈을 뜨더니 문자를 들고, 조금전 사내 때와 같이

이리저리 돌리며 바라보기만 할뿐,좀처럼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가다듬더니 앉아있는

이성계에게 합장 배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

깜짝 놀란 이성계가 만류하자 도사는 이렇게 말을했다.
"장차 이 나라에 주인이 되실 귀인께서 왕림해 주셨으니

이런 황공한 일이 없사옵나이다."
하는 것 이었다.

너무나 뜻밖의 말에 이성계는 크게 놀라며 당황했다.
"도사님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게요.

조금전에 다녀간 사람이 問자를 내 놓았을 때는

거지 신세를 한평생 면하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소.

나도 그사람과 같은 글자를 내 놓았는데

나에게는 어째서 엉뚱한 말씀을 하시오."

그러자 무학도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파자점이란 아무리 똑같은 글자를 내놓더라도

그 사람의 심지(心志)와 품성과 기상에 따라
점쾌가 제각기 다르게 나오는 법입니다.

글자가 같다고 점쾌도 같다면 그게 무슨 점이겠나이까 ? "

조금전 까지도 반말지거리를 하던 도사였지만 ,

어느새 말투가 존대어로 변했다.
"아무리 그렇기로니,

같은 글자의 해석이 그렇게도 다를수가 있단 말이오 ? "
무학도사는 다시 경건한 자세로 합장 배례하며 말을했다.
"소승은 다만 점쾌가 나오는 대로 여쭈었을 뿐이옵니다.

거기에는 추호도 거짓이 없사옵니다."

이성계는 기가 막혔다.
이런 그의 모습을 간파한 무학도사가 말을 이었다.
"똑 같은 問자라 하더라도 ,

조금전에 거지가 내 놓았던 問자와 귀공이 내 놓으신 問자는

근본이 아주 다른 問자 이옵니다."

"근본이 다르다니 그건 또 무슨소리오. 問자가 똑 같은데..."
"소승이 자세한 설명을 올리겠사옵니다.

아까 그 사람이 써낸 問자는 입(口)이 문(門)에 매달려 있는 問자 였습니다.

허나, 귀공께서 내 놓으신 問자는 입이 문에 매달린 문(問)자가
아니옵고 , 좌로 보나 우로 보나 ,임금군(君)자가 되오니

장차 이 나라에 임금이 되실 분의 글자라 아니하겠습니까 ? "

이성계는 너무도 기막힌 파자점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더구나 자신이 장차 이 나라의 임금님이 되실 분이라고 까지 하니 ,

가슴이 설레어 견딜수 가 없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짐짓 마음을 가라 앉히고 웃으며 말을 하였다.
"실상인즉 , 내가 도사를 찾아 온것은 파자점을 치려는 것이 아니고.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기에 하도 이상하여 해몽을 해 보고 싶어

찾아 온 것이오. 도사는 물론 해몽도 하시겠지요 ?"

무학 도사는 합장하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을했다.
"파자점이나 해몽이나 모두가 같은 원리이옵니다.

어떤 꿈을 꾸셨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해몽해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