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20) *인생자고 수무사(人生自古誰無死

우현 띵호와 2021. 9. 29. 22:58

방랑시인 김삿갓 (120)
인생자고 수무사(人生自古誰無死),

건곤불노 월장생(乾坤不老月長生).

희환산은 황해도와 평안도 사이에 걸쳐 있다.
김삿갓은 그 희환산 기슭에 있는,용천관(龍泉館) 주막에서

술을 마시며 주모에게 물었다.

"혹시 이 근방에 구경할 만한 명소가 없는가 ?"
"이곳 용천관이 얼마나 유명한 곳인데 그러세요.

여기서 산속으로 5리쯤 들어가면 환희정(歡喜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정자 아래에는 오열탄(嗚咽灘)이라는 유명한 여울이 있지요."

"오열탄 ? .. 이상하구려, 이곳에 와보니 산의 이름이 희환산이요,

정자의 이름도 환희정이라 하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오열탄이라니?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선남 선녀가 그 여울물 앞에서 이별을 나누며

흐느끼기라도 했던 모양이구려."
"손님은 오열탄의 유래를 잘도 알고 계시네요."

"이 사람아! 나는 오열탄의 유래를 알고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세.

오열탄이라는 이름을 듣게 된다면,

누구라도 그만한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

"어마, 그러세요? 아닌게아니라,

오열탄이라는 여울에는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것은 사실이랍니다."

"나는 평양으로 가는 길인데,

오열탄이라는 여울을 꼭 구경을 하고 싶네그려.
자네가 그 여울목에 얽혀 있는 설화를 좀 말해 줄 수 있겠나 ?"
"그러시지요. 이 근방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애긴걸요."
그러면서 주모는 다음과 같은 말을 김삿갓에게 들려 주었다.

오래전에 유홍준(劉弘俊)이라는 사람이 황주 고을에

선위사(宣慰使)로 와 있는 동안,

안악 기생 옥향(玉香)과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유홍준이 평양으로 떠나게 되자,

옥향은 용천관 여울목 앞까지 전송을 나왔는데,
서로 헤어져야 할 순간이 되자 이별이 서러운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목이 메도록 흐느껴 울었다.

그러자 여울목도 무심치 않았던지,

지금까지 조용히 흐르고 있던 여울물이 갑자기 흐느껴

우는 소리를 내며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그 여울의 이름을 오열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삿갓은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하였다.
"그것 참, 기가 막힌 설화일세. 사람이 흐느껴 울자,

여울물도 흐느껴 울었다 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동화(同和)>가 아니던가.

이렇게 우리네 조상들은 자연과 어울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며

함께 호흡하며 살아왔다네 ! "

인간 세계에서는 만남과 이별이 항상 존재한다.

영원한 삶도 있을 수 없으며, 백 년 전에 살기시작한 사람이

지금에 존재 할수 없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백 년 후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천지 자연은 어떠한가.

오늘날 우리가 매일 만나 보고 있는 하늘과 땅과,

별과 달은, 천 만년전부터 있어 온 것이 아니던가.

김삿갓은 감회에 젖어 문득, 인생자고 수무사,

건곤불노 월장생 (人生自古 誰그無死 , 乾坤不老 月長生) ...

<인생은 자고로 죽지 않는 사람이 뉘 있으리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늙지도 않고 달과 함께 영원히 살아온다 >

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희한산 계곡은 과연 천하의 절경이었다.

기암괴석 사이로 도도하게 흘러 내리는 물은 돌에 부딪쳐 구슬이 되고,

언덕을 흘러 넘어 가선, 폭포가 되었다.

환희정(歡喜亭)이라는 정자는

오열탄을 눈 아래 굽어볼 수 있는 언덕위에 있었다.

김삿갓은 정자위에서 쉬고 있는 늙은 나무꾼에게 물어 보았다.
나무꾼은 땀을 닦으며 대답한다.
"내가 어릴적 만 해도 저 여울물을 <황공탄>이라 불렀다오.

그러나 4,50년 전부터 오열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옛날에 어떤 임금님이 저 여울물을 친히 건너가셨다고 해서,

그때부터 황공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지요."

그러나 임금님이 이 깊은 산속에 올라

저 여울물을 친히 건너셨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오열탄을 옛날에 황공탄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틀림 없었던지 서거정(徐居正)의
시 두 편이 정자 위에 걸려 있었다.

皇恐灘前皇恐意 황공탄전황공의
황공탄 여울 앞에 황공스러운 마음

喜환山下喜환情 희환산하희환정
희환산 아래에서의 뜨거운 애정

如何嗚咽龍泉水 여하오인용천수
용천물은 어이하여 목메어 우는고

去似情人哭別聲 거사정인곡별성
애인끼리의 이별로 흐느끼는 것 같구나

黃州관裡花滿開 황주관리화만개
황주관에 꽃이 만발한 걸 보니

前度劉郞三度來 전도유랑삼도래
지난날의 유랑이 다시 찾아왔던가

嗚咽灘聲何日歇 오인탄성하일헐
목메어 우는 소리 언제나 끊이려나

朝朝送別哭如雷 조조송별곡여뇌
날마다 우는 소리 우뢰소리 같구나.

오열탄 여울로 가까이 내려가 물소리를 들어 보니,

수많은 바위들에 부딪쳐 흘러 내려가는 물소리가,

아닌게 아니라, 흡사 사람이 목메어 흐는끼는 울음소리와 같았다.

만남은 한없이 기쁜 일 이지만,

이별이란 언제나 슬프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별을 그토록 슬퍼했던 그들도 시간이 흐른 지금은

모두 저승으로 갔을 것이 아닌가 ?
김삿갓은 문득 한 해 전에 사별한 수안댁을 떠올려 보았다.

한때나마 정을 붙이고 살던 마누라와 사별한 것은

정녕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었다.

그 옛날 지금 저 오열탄 앞에서 이별의 슬픔에 흐느껴 울던

유홍준과 옥향의 슬픔도 자기와 다르지 않겠다고 느낀 김삿갓은 ,
(당신네들이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거든,

저승에서나마 꼭 이루소서 ! ) 하며,
두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 부터의 축원을 올리며

계곡을 따라 발길을 상류로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