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78) 개구리

우현 띵호와 2021. 10. 4. 23:24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78) 개구리


아들이 천석꾼 부자가 되라고 천석이라 이름 지어놓고,

아비는 밭 한뙈기 물려주지 않고 역병에 걸려 죽었다.
어미는 아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바람에 쓸려갔다.
그 할머니마저 이승을 하직하자 혈혈단신

일곱살 천석이는 지독한 고생길에 들어섰다.
다리 밑에서 거지 생활도 하다가 저잣거리에서

똥도 푸다가 짚신장수 집에서 일도 하다가

열여섯살이 되자 머슴으로 들어갔다.

삼년을 뼈가 부서져라 일하고 약속한 새경

나락 육십가마를 받으려 하니 수전노 주인이

스무가마밖에 주지 않았다.
울며불며 별수를 다 써봤지만 허사였다.
관아에 발고하자 주인이 사또 앞에 펼쳐놓은 것은 종이쪼가리였다.
3년 전 한문으로 써놓은 종이에 손도장을 찍으라 해서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찍었는데 그게 올가미가 됐다.
천석이는 주막에서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시고

모든 걸 털어버리기로 했다.

그때까지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산비탈 밭뙈기

세마지기를 사려는데 주모가 묘한 제안을 했다.
지금 소금을 사놓으면 내년 봄 장 담그는 철에 값이 두배가 된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넉달 만에 소금값이 두배로 뛴다요?”
천석이가 눈을 껌벅이며 묻자 주모가 빙긋 웃으며 하는 말.
“우리 친정 오라버니가 그러는데 서해안 염전이 지난여름 죽을 쑤었다네.
장마가 하도 길어서. 김장 소금은 소금장수가 쌓아놓은 걸로

충당이 됐지만 내년 봄 장 담글 때는 난리가 날 거여.”

손님이 모두 자리를 뜬 늦은 밤, 주막 안방에서 술상을 가운데 두고

색기 넘치는 주모와 어리숙한 천석이는 소금 장사할 궁리로 이마를 맞댔다.

“소금을 사다가 곳간에 바리바리 쌓을 필요도 없어.
물표만 허리춤에 차고 있으면 돈벼락을 맞는 거여.”

그날 밤, 열아홉살 천석이가 할까 말까 망설이자

서른이 갓 넘은 육덕 푸짐한 주모는 호롱불을 끄고

천석이 목을 두팔로 감았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여인의 살냄새에 천석이는 그만 정신이 혼망해졌다.
펄펄 끓는 젊음이 농익은 요염 속에 빠져 녹아버렸다.
그날 밤 다섯차례나 주막이 흔들렸다.
천석이는 이튿날 덕스럽게 생긴 주모의 오라버니에게

전대를 풀어주고 소금 오십가마 물표를 받았다.

천석이는 주막 안방을 차지하고 주모의 기둥서방이 됐다.
어깨가 떡 벌어진 천석이는 밤마다 흐느끼는 주모의 품에 파묻혀 살았다.
둘 다 그 짓도 싫증이 날 즈음, 장 담그는 철이 오고 소금 물표는 휴짓조각이 됐다.
정월 보름날 온다던 오라버니는 안 오고, 자신은 소금 칠십가마를 샀다며

한숨을 쉬는 주모를 족칠 수도 없었다.

천석이가 안방을 차지하고 있으니

장사가 안 된다며 주모는 천석이 등을 떼밀었다.

“이놈의 세상은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구나.”

천석이는 주막을 나와 뒷산 소나무에 목을 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눈밭에 누웠고 스님이 내려다보며

“에이, 못난 놈” 하고 혀를 끌끌 찼다.
스님을 따라 허실암으로 갔다.
스님은 그림을 그리는 화승(畵僧)이었다.

“작년 봄이었네. 두루미 한마리가 개구리를 쪼아 막 삼키려는데

발버둥치던 개구리가 앞발로 두루미 목을 죄었어. 그러곤 살아나 도망쳤지.”
화승은 그 그림을 천석이에게 주었다.
“그래, 절대 포기하지 않겠어. 개구리처럼!”
*
*천석이는 스님에게 큰절을 하고,

그 그림을 접어 기름종이에 싸 품에 넣고 하산했다.
이를 꽉 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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