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80)<삼신할미의 오판>

우현 띵호와 2021. 10. 5. 00:02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80)<삼신할미의 오판>

정월 대보름날 저녁

부녀자들 성화에 못이긴 삼신할미

출산의 고통을 남편들에게 넘기는데…

설날에서 정월 대보름까지,

농사꾼들에게는 팔자가 늘어진 황금 기간이다.
박 서방은 매일 술이다.

정월 열이틀엔 이 서방 집에서 대낮부터 술을 마시다가

고개 너머 이웃 동네 오 서방 집에 가서 또 부어라 마셔라 하다 보니

짧은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런데도 며칠 남지 않은 좋은 날이 아까워

낄낄 웃으며 술타령이 한창이었다.

 

“아부지!” 그때 문밖에서 고함치는 목소리에

박 서방 술잔이 올라가다 딱 멈췄다.

열두살 먹은 박 서방의 맏아들이다.
“와?” 방문을 열고 박 서방이 혀 꼬부라진 소리를 뱉었다.
“오매가 얼라를 낳았심더.”
“아들이가, 딸이가?”
“딸입니더.”
“그, 그까짓~ 딸 낳고서~ 수, 술판을 깨, 깨다니~.”
부풀어 오른 달빛에 박 서방은 마지못해 아들 뒤를 따라 고개를 넘었다.

아들 녀석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아부지 집 나가고 바로 오매 산통이 이어져

한나절이 지나서야 얼라를 낳았심더. 오매 죽는 줄 알았어예.

내는 하루 종일 아부지 찾아다녔심더.”


“니 오매 얼라 낳는데 내가 지키고 있으믄 빼다 박는 수라도 생긴다더냐?”
동네 부녀자들이 박 서방네 집을 들락날락하며

막실댁 산후조리를 도와주다가 하나같이 모두 이를 박박 갈았다.


정월 대보름날 저녁,

동산에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자 어른들은 한낮부터

윷을 놀다가 질펀하게 술판을 벌이고

아이들은 쥐불놀이 하느라 정신이 팔렸다.

그런데 부녀자들은 모두 소복을 입고

육백년 묵은 회나무 당산목 아래 모였다.

이 집 저 집에서 장만해 온 제물이 당산목 제단에 비좁게 가득찼다.
동네 부녀계의 계주이자 동네 시어미 운산댁이 제단 앞에 꿇어앉자

모두가 그녀 뒤로 꿇어앉았다.
운산댁이 두 손을 싹싹 빌며

“천지신명, 삼신할미님! 미천한 중생 핏줄을 이어

자손만대 대대손손 끊어지지 않게 해 주시니…….”

그때 쟁반같은 보름달을 등지고 새하얀 치마저고리에

비단천으로 양손을 감싼 삼신할미가 사뿐히 하늘에서

내려와 당산목 가지에 앉았다.
운산댁이 삼신할미에게 절을 세번 올리고 읊조렸다.

“삼신할미님, 제 말 좀 들어보소. 사흘전 열이틀에

삼신할미 점지 덕으로 막실댁이 딸아이를 낳았는데,

그 산고가 어떠할지 잘 아실 것 아닙니까.”
회나무 가지에 앉았던 삼신할미가 물총새처럼 날아 내려와

제물을 한 치마 싸가지고 휙 다시 날아올라 앉았다.

그러고선 다리를 까닥이면서 떡과 약밥을

오물오물 씹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이불 속에서 합환할 때는 좋았지!”
그러자 막실댁이 타고 나섰다.

“삼신할미님, 합환할 때 저 혼자 좋았습니까?

어째 얼라 낳을 때 그 극심한 고통은 여자 혼자만 감당해야 합니까?

한나절 동안 생사의 갈림길에서 돌돌 구를 때

남편이란 작자는 시시덕거리며 친구들과 술 먹고 있었습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합니다.

씨를 받아 헛구역질에 점점 자라는 태아를 뱃속에 넣고

힘들게 열달을 나다니는 것만 해도 억울한데 출산 고통까지….”

“삼신할미님! 통촉하옵소서.”
“삼신할미님!” “삼신할미님!”
모든 부녀자들이 들고 일어나자 삼신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다. 이제 출산의 고통은 남편들에게 넘기겠노라.”

그로부터 한달이 지나자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은 삼신할미는

실컷 꾸중만 듣고 출산 고통을 남편에게 지우는 것을 취소했다.
그 한달 동안 윤 초시 며느리가 해산할 때 백일기도 들어갔던

영험사 주지승이 법당에서 떼굴떼굴 굴렀고,

민 진사네 행랑아범 마누라가 출산할 때

민 진사는 극심한 고통에 바지저고리가 다 젖었다.

조 참봉 며느리가 삼대 독자 낳을 때

마당쇠는 사타구니를 잡고 팔딱팔딱 뛰다가 기절을 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