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81)<명품하인>

우현 띵호와 2021. 10. 5. 00:44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81)<명품하인>

볼품없지만 학식 많은 맹초시

감기 걸려 서원 강의 걱정이…

언변 좋은 종 허서방이 나서는데

맹 초시는 참으로 볼품없다. 오척 단신에 눈은 단춧구멍이요,

납작한 콧등엔 살짝곰보 자국까지 찍혔다.

그런 몰골에 비해 머릿속에 들어 있는 학식은 대제학 못지않다.

특히 그 어렵다는 <주역>에 관한 한 조선 천지에서 맹 초시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맹 초시는 팔도강산의 서원이나 서당을 찾아다니며

<주역>을 강의해주고 몇푼의 돈을 받거나 쌀 됫박을

받아서 노자로 쓰고 또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떠돌이 신세가 몸에 배었다.

맹 초시가 가진 것이라고는 당나귀 한 필과 고삐를 잡는 종, 허 서방이 전부다.

그런데 이 종 녀석이 걸물이다.

맹 초시보다 세살 아래이지만 허우대가 멀쑥하고 언변이 좋다.

수완도 뛰어나 맹 초시 시름을 덜어주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맹 초시도 사람은 좋아 나으리 행세를 하지 않고

고삐 잡는 종 허 서방을 친구처럼 대했다.

허 서방은 농담도 잘하고,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아는 것이 많아

맹 초시에게 신세 한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공히 술을 좋아해 주막에라도 들르면

겸상에 탁배기잔을 주거니 받거니 밤 깊어가는 줄 몰랐다.

그날도 주막 객방에서 하룻밤을 묵어갈 요량으로

맹 초시와 허 서방은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이는데….

설거지를 마친 주모가 머리를 매만지며 다가왔다.

“나도 술 한 잔 주시오.”
주모가 탱탱한 엉덩이를 평상 머리에 디밀었다.

벌써부터 눈웃음을 치더니 기어코 합석을 했다.

당연히 맹 초시 옆이 아니라 허 서방 옆에 착 달라붙었다.

이내 탁배기가 몇 순배 돌았다.

그러자 주모가 “술을 얻어 마셨으니 쇤네가 안주 하나 대접하리다”

하더니 금세 부엌에서 닭볶음을 한 뚝배기 들고 왔다.

잠시 후, 허 서방이 소피를 보러 뒤뜰 토란밭으로 가자

주모가 쪼르르 따라와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초시 어른이 잠들거든 안방으로 오시오.”
허 서방이 폭포수 같은 오줌발을 뻗치며 한 손으로 주모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술판이 끝났을 때는 이경(밤 9시부터 11시 사이)이 다 되었다.

객방에 들어온 허 서방은 “초시 어른, 주무시지 말고

연초 한 대 태우고 계세요” 하고선 안방으로 들어갔다.

주모는 벌써 옷고름을 풀고 있었다.
“주모, 초시 어른은 내 상전이오. 상전을 제쳐 두고 내가 먼저

주모와 합방을 할 수는 없는 일이오. 먼저 초시 어른과….”

주모가 눈을 크게 뜬 채 옷깃을 여미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렇다면, 소인도….”
허 서방이 일어서려 하자 몸이 달아오른 주모가 “알았수”하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허 서방이 객방으로 건너와 말한다.

“초시 어른, 냉수도 순서가 있는 법인데….”

맹 초시가 허허 웃으며 안방으로 건너갔다.

맹 초시가 그렇게 객고를 풀고 나자 주모는 부엌에 가서 뒷물을 했다.

뒤이어 허 서방이 안방으로 들어가 밤은 깊어 삼경까지

걸쭉하게 주모를 죽여줬다.

다음날,

봄볕이 내려앉은 들길을 허 서방은 고삐를 잡고,

맹 초시는 당나귀를 타고 까닥까닥 양반촌 청계서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맹 초시가 느닷없이 “감기에 걸려서 목이 부었는데

설을 풀어야 하니 앞이 깜깜하네.”
그러자 허 서방이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초시 어른

강의를 하도 들어서 달달 외우고 있습니다.”
청계서원 앞뜰, 당나귀 등에서 내린 사람은 꽉 조인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풍채 좋은 허 서방이요, 고삐를 잡은 이는 조끼 자락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맹 초시였다.

서원을 가득 채운 양반들 앞에서 허 서방의 강의가 시작됐다.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하(夏)나라 때의 <연산역>,

상(商)나라 때의 <귀장역>이라는 역서가 있었는데….”

허 서방이 낭랑한 목소리로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청산유수처럼 강의를 이어 나가자 양반 선비들은 쥐 죽은 듯이 경청했다.
강의가 끝나자 요란한 박수 속에 평소에 없던 일이 일어났다.

늙은 선비 하나가 일어서더니 “질문 하나 하겠소이다.

역에는 몇가지 뜻이 있다던데?”

서원 방구석에 앉아 있던 마부(?)는 하얗게 질렸는데, 강사는 담대했다.
“어흠 어흠, 내가 목감기에 걸려서….

그런 질문의 답은 고삐 잡는 종이 하겠소이다.”
맹 초시가 얼른 뛰어나가며 대답했다.
“예~, 역에는 세가지 뜻이 있습지요.

이간(易簡), 변역(變易), 불역(不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