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47) <노참봉>

우현 띵호와 2021. 10. 11. 01:47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47) <노참봉>

‘정력절륜’ 다섯 첩 거느린 노 참봉

돈 모으는 재주 또한 남다른데…

노 참봉은 첩을 다섯이나 거느린 정력절륜(精力絶倫)의 영감이다.

키는 5척 단신이지만 어깨가 떡 벌어지고 허벅지가 또래 친구들의

몸통만큼 튼실하다. 하수오·사향으로 환을 만들어 장복하고

삼지구엽초를 달여서 차 마시듯 하니 절륜할 수밖에 없다.

그가 실전에 뛰어난 것은 이론도 탄탄하기 때문이다.

<소녀경(素女經)>을 필두로 중국 왕실의 방중술에 대한 책을 모조리 탐독했다.

물건 큰놈이 코도 크다는 옛말도 바로 노 참봉을 두고 한 말이다.

코는 물건처럼 생겨서 큰데다, 코밑 수염은 턱까지 덮어

그것으로 남근을 대신하니 접하기 전에 여자들의 숨이 넘어가는 것이다.

노 참봉은 자기와 방사를 치른 여인은 절대로 다른 남자 품에 안기지 않는다고

철저히 믿었다.

그는 돈을 모으는 데도 남다른 재주를 갖고 있다.

조무래기 돈놀이꾼들은 저잣거리에서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을 맞지만,

노 참봉은 사랑방 보료 위에 누워 있어도 큰손들이 찾아온다.

그렇게 거금을 신용으로 빌려주는 통큰 장사를 하면서도 돈 떼이는 일이 없다.

큰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지긋한 거상들이다.

신용으로 큰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은 한나절에 뚝딱 해치우지 않는다.

빌리려는 사람은 자신의 장사 실적과 신용을 부품하게 부풀려서 허풍을 떨고,

빌려주는 사람은 상대방을 요리조리 샅샅이 훑어본다.

노 참봉은 집사를 셋이나 두고 있다. 셋은 각자 장기 하나씩을 갖고 있다.

남의 뒤를 잘 캐는 사람, 관상을 잘 보는 사람, 계산 치부에 밝은 사람.

여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사람이 더 있으니, 바로 첫째 첩이다.

나이가 서른이 넘은 첫째 첩은 눈밑에 잔주름이 생기고 유방도 늘어지니

자연히 노 참봉이 찾는 빈도가 낮아졌다.

첩이 노 참봉에게 객줏집을 하나 차려 달라고 청을 넣었다.

그때 노 참봉 머리를 번개처럼 때리는 생각이 있었다.

신용으로 거금을 빌리려는 사람을 첩의 객줏집에 투숙시키고

그녀와 합방시켜 보는 것이다.

노 참봉이 집사 셋의 보고보다 더욱더 믿는 것은

‘새벽에 아랫도리가 천막을 치지 않는 놈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째 첩과 노 참봉의 공생관계는 이렇게 성립됐다.

노 참봉은 중요한 정보를 얻고,

첫째 첩은 외간 남자와 합방을 인정받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작년에 왔던 구 대인이 노 참봉을 찾아왔다.

구 대인은 허여멀끔하게 생긴 꺽다리 대상(大商)으로 입이 무거워

허풍을 떠는 잡상들과는 달랐다.

구 대인의 한마디에 노 참봉은 까무러칠 뻔했다.

10만냥을 빌려달라는 것이다.

단 두달만, 그리고 이자는 3할!

작년에 구 대인은 노 참봉에게 7000냥을 빌려 개성에 가서 인삼을 왕창 사다가

두달반 만에 세곱절로 도매상에게 넘겨 큰 이문을 남기고,

5000냥을 얹어 1만2000냥을 정한 날짜에 갚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10만냥이라니!

구 대인은 곰소에 가서 새우젓을 매점매석하겠다고 했다.

집사 셋은 이구동성으로 빌려주자고 말한다.

구 대인은 노 참봉의 첫째 첩 객줏집 큰방에 묵었다.

첫째 첩이 안방에 저녁상을 차려놓고 구 대인을 모셨다.

이튿날, 노 참봉과 첫째 첩이 사랑방에서 몰래 만났다.

“구 대인 어땠어?”

“그 양반 육십줄에 든 노인네가 어휴 제 옥문이 닳아 없어지는 줄 알았구먼요.

한마디로 참봉 나으리 머리 꼭대기에 앉았습디다.

밤에 소첩을 두번 기절시키더니 아침에 또 한번…”

노 참봉은 울컥 질투심이 생겨 오랜만에 첫째 첩을 쓰러뜨렸다.

노 참봉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구 대인을 질투하면서 한편으로는 존경했다.

수중에 있던 6만냥에 저잣거리 조무래기 돈놀이꾼들에게서 끌어모은

4만냥을 보태 10만냥을 구 대인에게 전했다.

그런데 두달이 지나고 석달이 지나도 구 대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첫째 첩도 사라져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노 참봉이 중얼거렸다. “그년(첫째 첩)이 거짓말을 한 거야.

비쩍 마른 놈이 어떻게 밤에 두번이나 그년을 기절시키고 새벽에 또!

새벽에 천막을 치는 놈은 남의 돈 떼먹고 도망가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