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 할머니'
집이 시골이었던 저는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자취를 했습니다.
월말 쯤,
집에서 보내 준 돈이 떨어지면,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곤 했어요.
그러다 지겨우면, 학교 앞에 있는
‘밥할매집‘에서 밥을 사 먹었죠.
밥할매 집에는 언제나
시커먼 가마솥에 누룽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 하시곤 했어요.
“오늘도 밥을 태워 누룽지가 많네.
밥 먹고 배가 안 차면
실컷 퍼다 먹거래이.
이 놈의 밥은 왜 이리도 잘 타누.“
저는 돈을 아끼기 위해 늘 친구와
밥 한 공기를 달랑 시켜놓고,
누룽지 두 그릇을 거뜬히 비웠어요.
그때 어린 나이에 먹고
잠시 뒤돌아서면
또 배고플 나이잖아요.
그런데, 하루는 깜짝 놀랐습니다.
할머니가 너무 늙으신 탓인지,
거스름돈을 원래 드린 돈보다
더 많이 내 주시는 거였어요.
'돈도 없는데 잘 됐다.
이번 한 번만 그냥 눈감고
넘어가는 거야.
할머니는 나보다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한 번 두 번을 미루고,
할머니의 서툰 셈이 계속되자
저 역시 당연한 것처럼
주머니에 잔돈을 받아 넣게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 날 밥할매 집엔 셔터가 내려졌고,
내려진 셔터는 좀처럼
다시 올라가지 않았어요.
며칠 후 조회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단상에 오르시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 하셨어요.
“모두 눈 감어라.
학교 앞 밥할매 집에서 음식 먹고,
거스름돈 잘못 받은 사람 손 들어라.“
순간 나는 뜨끔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
부스럭거리며 손을 들었습니다.
“많기도 많다. 반이 훨씬 넘네.“
선생님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밥할매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아들에게 남기신
유언장에 의하면 할머니 전 재산을
학교 장학금에 쓰시겠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이셨어요.
“그 아들한테 들은 얘긴데,
거스름 돈은 자취를 하거나
돈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에게
일부러 더 주셨다더라.
그리고,,,새벽부터 일어나
그날 끓일 누룽지를 위해
밥을 일부러 태우셨다는구나.
그래야 어린 애들이 마음 편히 먹는다고~"
그날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유난히 '밥할매 집'이라는
간판이 크게 들어왔어요.
나는 굳게 닫힌 셔터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할머니가 만드신 누룽지가
세상에서 최고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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