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독불염(百讀不厭)
여러 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다,
잘 읽히는 좋은 글, 꾸준한 노력을 뜻함
[일백 백(白/1) 읽을 독(言/15) 아닐 불(一/3) 싫어할 염(厂/12)]
예로부터 책을 많이 읽으라고 깨우치는 글이 많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 속에서 황금의 집이 나온다고
書中自有黃金屋(서중자유황금옥)라 강조해도
실제로 가까이 하기는 쉽지 않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책을 읽어 뜻을 이룬
중국 東晋(동진) 때의 학자 車胤(차윤)과 孫康(손강)은
車螢孫雪(차형손설)의 성어에도 이름이 남았다.
머리카락을 묶고 넓적다리를 송곳으로 찔러 잠을 쫓으며
공부한 懸頭刺股(현두자고)의 자학 독서인도 있다.
魏(위)의 董遇(동우)는 여러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고
讀書百遍 義自見(독서백편 의자현)이라 했는데
이렇게 되려면 백번을 읽어도(百讀) 싫증나지 않을 만큼
(不厭) 글도 좋아야 할터이다.
이 성어는 蘇軾(소식)의 시 구절에서 나왔다.
소식이라 하면 아호 東坡(동파)와 명작 赤壁賦(적벽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北宋(북송)을 대표하는
제1의 시인이자 문장가였다.
후일 대신까지 오르는 安惇(안돈)이란 사람이
처음 향시에 낙방했을 때 풀이 죽어 술만 마시는 것을 보고
소식이 위로의 시를 써 주었다.
‘옛 책을 싫다 않고 백번이나 읽었으니,
숙독하고 깊이 생각하면 스스로 알게 될 걸세
(舊書不厭回讀 熟讀深思子自知/ 구서부염회독 숙독심사자자지).’
그러면서 벼슬자리에 올랐을 때는 그만 두지 못할까 두려워할 것이니
지금의 은거생활을 고마워하며 독서에 힘쓰라고 당부한다.
시의 제목도 ‘실의에 빠져 낙향하는 안돈을 전송하며
(送安惇秀才失解西歸/ 송안돈수재실해서귀)’이다.
실제 백번 읽어 싫증나지 않는다고 한 시가 있다.
唐(당)의 유명시인 王昌齡(왕창령)과 王之渙(왕지환) 등의 작품을 읽고
‘변새시의 명작으로 백 번을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邊塞名作 百讀不厭/ 변새명작 백독불염)’고 평한 淸(청)의 施補華(시보화)다.
匈奴(흉노)와 대치한 변방을 노래한 시들인데
정서가 슬퍼서 백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峴傭說詩(현용설시)’에 표현했다.
왕창령이 지은 ‘出塞(출새)’의 첫 한 구절만 보자.
‘진나라 때 떴던 달 한나라 때 관문을 비추건만,
만 리 먼 길 출정한 사람들 돌아오지 못했네
(秦時明月漢時關 萬里長征人未還/
진시명월한시관 만리장정인미환).’
책을 읽는데 백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으면 그만큼 좋은 글일 수 있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어떤 목표를 두고 꾸준히 정진했을 수 있다.
이처럼 여러 번 들어도 싫증이 안 나는 百聽不厭(백청불염)의
좋은 소리는 찾아가 듣고, 孔子(공자) 말씀처럼
‘묵묵히 마음속에 새겨 두고 배우는데 싫증내지않는다면
(默而識之 學而不厭/ 묵이지지 학이불염)’
학문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바람직하다.
한 가지 남을 속이는 것에 절대로 싫증내지 말라는 말이 예외다.
그러나 이 말은 생사가 걸린 전장에서 적을 속이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兵不厭詐(병불염사)이니 걱정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