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박진 장관에 대한 추억

우현 띵호와 2022. 8. 31. 17:54

박진 장관에 대한 추억 
 
신림동 서울대학 근처에 있는 막걸리집에 친구들이 모였다.

그때 어느 하나가 슬픈 목소리로 상사병을 호소하였다.

술 한 잔 마신 김에 모두 호기를 부리며 그 여성의 집에

찾아가자고 하여 우루루 나섰다.

그 여성 이름의 발음에 빗대어 우리는 ‘조총련’이라고 불렀다.

조총련 학생의 집 앞에서 우리는 소란을 벌였다.

그때 그 여성의 아버지가 나와 엄히 훈계하는 사이에

조총련 학생도 나와 분하다고 눈물을 흘리다,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머 박진 씨가 여기 웬일이에요?”  
 
진이는 서울법대에 재학하며 그룹사운드를 이끌었는데,

이대나 다른 대학 축제가 되면 원정을 자주 갔다.

그러면서 둘은 알게 된 모양이다.

갑자기 코메디처럼 분위기가 반전되었는데,

어쨌든 참 시시하고 초라했고 별 볼 일 없던 청춘의 한 때가 남긴 잔상이다. 
 
그런데 진이는 열심히 공부해서 재학 중 외무고시에 합격하였으나,

상사가 장발을 자꾸 지적하자 때려치우고 나와버렸다.

그만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 뒤 영국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김영삼 정부의 의전비서관으로 발탁되어 돌아왔다. 
 
내가 말한 이야기로도 박진이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잘 알겠으나,

그가 가진 많은 장점 중 하나는 영어가 유창하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이냐 하면,

방한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훌륭한 영어구사라고 칭찬했을 정도다.

내 소견으로는, 클린턴의 구사언어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최고라고 본다.

그런 클린턴이 박진을 칭찬한 것이다.

박장관은 이번에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왔다.

보도를 통해 듣는 그의 말은 믿음직스럽게 대단히 논리적이고 치밀했다.

그리고 그는 이 자리에서 중국의 까다로운 왕이 외교장관과

일본의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교장관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런데 사진에 나타난 3인의 표정으로 보기에는, 그가 주역이고

중, 일의 외교장관은 들러리처럼 만들고 있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중국과 일본에서는 자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보다

영어를 잘 하는 외국인을 좀 더 존중하며 받들어준다.

박 장관의 유려하고 거침없는 영어구사에 아마 중, 일 외교장관은

부러움의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헌법학회장시 중,일을 포함한 아시아 헌법학자들의

리더가 되어 ‘아시아헌법포럼’을 창설하였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중국과 일본의 대학에서 영어로 강연한 것이었다고 본다.

어느 쪽이건 강연 후 나에 대한 태도가 확 달라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외교안보라인이 대단히 허약하였다.

한국의 대통령이 중국에 가서 혼밥을 하고,

중국 주재대사를 중국어 한 마디 못하는 사람으로 보내는 것 따위에서

그 단면을 잘 엿볼 수 있다.

요즘 드러났으나, 흉악범이라는 추정으로 귀순 북한주민을 북송하여

사형당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무능이 빚어낸 참사였다.

그때의 외교라인 구성의 면면과 지금 박진 외교부를 비교해보라.

어쩌면 비교의 대상이 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이제 중국과 북한을 상대로 한 굴신(屈身)외교의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는 더 이상 지난 정부 때처럼 혹시 정부가 외교면에서

무슨 뜻하지 않은 실책을 범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방한했을 때 윤석열 대통령이

면담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비난하는 견해가 있다.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이 부족한 소치이다.

우리 측으로 봐서 미국은 가장 높은 단계의 가치동맹국이고,

세계의 험한 파고를 넘어가는데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한반도는 미국, 일본과 같은 해양세력과 중국의 대륙세력이

맞부딪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는 점을 어느 때건 잊을 수 없다. 
 
내가 지난 선거 때처럼 윤 대통령께 조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더라면,

나는 당연히 펠로시 의장을 직접 만나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강하게 했을 것이다. 아마 틀림없이 박 장관이 조언했을 것이다.

이 조언을 수용한 윤 대통령이나 박 장관의 조합이 참으로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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