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녹림(綠林)

우현 띵호와 2022. 10. 5. 22:59

녹림(綠林)

도둑의 소굴, 도둑들. 
[푸를 록(糸/8) 수풀 림(木/4)]
 
나무가 우거져 빽빽한 푸른 숲
(綠林)을 뜻하는 이 말이 왜 다른 뜻으로 화적이나

도둑의 소굴을 뜻하게 됐을까.

중국 후베이[湖北]성 荊州(형주)에 위치한 綠林山(녹림산)에서

이름을 따 왔다.

前漢(전한) 말기에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백성들은

죽지 못하여 반란군에 합류하고 근거지가 있는
녹림산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녹림군으로 불리며 무능한 나라를

무너뜨리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

처음에는 살길을 찾아 도둑질도 마다 않았으나
後漢(후한) 왕조를 세우는데 공이 있어 도둑떼 群盜(군도) 라기 보다

義賊(의적)에 가까운 뜻으로 사용됐다.

그래서 綠林豪客(녹림호객)이나 綠林豪傑(녹림호걸)로 불리기도 했다.
 
劉邦(유방)이 세운 漢(한) 나라가 200년 가까이 지나자

환관과 외척이 정치를 농단해 나라가 어지러웠다.

이 틈을 타 서기 8년 외척 王莽(왕망, 莽은 풀 망)이 정권을 찬탈하여

新(신)나라를 세우고 개혁정책을 펼쳤다.
 
부패한 정권을 타개하기 위해 토지문제, 노비문제, 화폐개혁 등에

과감한 정책을 도입하여 초기는 박수도 받았다.

하지만 뿌리 깊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진적인데다 정교하지도 않아

실패로 돌아갔고 더 큰 혼란만 가져왔다.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자 지방 호족들이 중심이 되어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山東(산동)의 泰山(태산)에서 樊崇(번숭)이 이끄는
赤眉(적미)군이 관군에 연전연승했다. 명망이 높은
王匡(왕광)과 王鳳(왕봉)을 우두머리로 하는 농민군은

녹림산을 근거지로 하여 綠林兵(녹림병)으로 불리며

대군으로 세력을 떨치게 됐다.

이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後漢書(후한서)‘에는 이렇게
나타냈다.
 
’함께 공격하고 고향을 떠나 모여들어 녹림산에 숨어 들었는데

수개월 사이에 칠팔천 명에 이르렀다

(共攻離鄕聚 臧於綠林中 數月間七八千人/

공공리향취 장어녹림중 수월간칠팔천인).‘

녹림병은 이후 5만이 되는 대세력으로 발전하여 光武帝(광무제)
劉秀(유수)가 후한을 세우는데 힘을 보탰다.
 
조선 明宗(명종)때의 임꺽정은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앗아

빈민들에게 나눠줬다.

법치로 유지되는 오늘날에는 이런 의적이라도 모두 범죄인으로 처벌받는다.

하지만 소득의 격차가 갈수록 까마득해지고,

재벌의 탐욕은 끝이 없고, 공직자들은 청렴과 먼 사람이 수두룩하다.

정치가 부패하고 나라가 어지러울수록 불만세력이 늘어나고

뒤집을 의적을 은근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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