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
꽃이 필 때는 비바람이 많다, 고난을 이겨내야 화락이 온다.
[꽃 화(艹/4) 필 발(癶/7) 많을 다(夕/3) 바람 풍(風/0) 비 우(雨/0)]
꽃은 침묵의 언어를 가지고 사랑을 말하고 꿈을 말하며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게 해 준다는 멋진 표현이 있다.
계절에 따라 아름답게 피는 꽃에 사람마다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봄꽃놀이, 단풍놀이를 즐긴다.
꽃이 피기 위해 수많은 나날을 보낸 뒤 활짝 핀 모습은
오래도록 간직하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자연의 이치다.
‘봄꽃도 한 때’, ‘열흘 붉은 꽃이 없다’란 말과 똑같은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이 잘 나타낸다.
때가 지나면 반드시 쇠한다는 이 말과 비슷한 어감의
꽃이 활짝 피면(花發) 비바람이 많은 법(多風雨)이란 성어도 좋다.
꽃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르는 바람의
시샘을 이겨낸 결과인 것이다.
시가 만개했던 중국 唐(당)나라 후기의 시인 于武陵(우무릉)의
‘勸酒(권주)’에서 나온 한 구절이다.
그는 초기 진사 시험에 낙방한 뒤 각지를 방랑하며
五律(오율)에 뛰어난 시를 남겨 ‘全唐詩(전당시)’에 실려 있다.
이 책은 淸(청)나라 康熙帝(강희제)의 명으로 시인 2200명의
작품 4만8900편의 시를 900권에 모았다는 방대한 규모다.
1권으로 편집된 우무릉의 잘 알려진 시 전문을 보자.
‘그대에게 금빛 술잔 권하니, 가득 채운 술 사양 마시게
(勸君金屈卮 / 권군금굴치 만작불수사), 꽃 피면 비바람 많은 법이고,
세상살이 이별로 가득 차 있네(花發多風雨 人生足離別/
화발다풍우 인생족리별).’ 卮는 잔 치.
화려한 꽃은 비바람의 고난을 잘 이겨낸 결과인 만큼
사삼의 인생살이도 좌절과 시련은 늘 따라다닌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무릉의 시를 연상하는 우리의 좋은 시도 있다.
조선 宣祖(선조)때의 宋翰弼(송한필)의 ‘偶吟(우음)’을 보자.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네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화개작야우 화락금조풍).
슬프다 봄의 한 가지 일도, 바람과 비에 왔다가는구나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가련일춘사 왕래풍우중).’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스스로의 인생을 서글퍼하는
심정을 노래했다.
경북 醴泉(예천)의 선비로 알려져 있는 조선 후기의
崔成原(최성원)도 같은 심정이다.
‘세상에는 부귀를 오로지 누리는 일이 없고,
비바람은 꽃 필 때에 많다네
(世無專富貴 風雨多花時/ 세무전부귀 풍우다화시),
어제까지 붉은 꽃이 나무에 가득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절반이나 빈 가지로구나
(日昨紅滿樹 朝來半空枝/ 일작홍만수 조래반공지).’
겨우내 꽃을 피우기 위해 애태우던 꽃이 필 때는 꽃샘바람이 따른다.
활짝 핀 후에도 비바람을 이겨내듯이 사람의 한 평생도
喜怒哀樂(희로애락)이 없을 수 없다.
나에게만 고난이 따른다고 한탄만 한다면 꽃피는 시절은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