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두자고(懸頭刺股)
머리칼을 매달고 넓적다리를 찌르다.
[달 현(心/16) 머리 두(頁/7) 자(刂/6) 넓적다리 고(肉/4)]
옛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를 할 때 어떻게 했을까.
오늘처럼 환경이 좋지 않았지만 반딧불과 겨울철 쌓인 눈빛으로
(螢窓雪案/ 형창설안) 글을 보거나 벽에 구멍을 뚫어
이웃집에서 새어 나오는 촛불 빛을 훔쳐
(鑿壁偸光/ 착벽투광, 鑿은 뚫을 착, 偸는 훔칠 투)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고통을 주어가며 공부를 한 사람들이 있으니
졸음을 쫓으려고 머리카락을 대들보에 묶어두고(懸頭)
넓적다리를 송곳으로 찔러가며(刺股) 책을 읽었다.
오늘날은 이렇게 하지 않아도 효과적인 학습법으로
실력을 배양하지만 옛날의 이 방법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모두 큰 인물이 되었으니 열심히 공부하는 비유로 전한다.
대들보에 매달았다고 들보 梁(량)을 써서 懸梁刺股(현량자고)라고도 한다.
이 성어는 두 사람의 고사에서 따와 합성했다.
宋(송)나라 李昉(이방, 昉은 밝을 방)이 편찬한 백과사서
‘太平御覽(태평어람)’에 머리칼 이야기가 실려 있다.
송 태종이 1000권이 넘는 책을 1년에 걸쳐 읽었다고 하여
이름을 얻은 그 책이다.
漢(한)나라 때 학자인 孫敬(손경)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집에서
책만 읽어 閉戶先生(폐호선생)이란 별호로 불렸다.
졸리기라도 하면 그 시간까지 아끼려 노끈으로 머리칼을
대들보에 매달고 공부했다
(好學 晨夕不休 及至眠睡疲寢 以繩繫頭懸屋梁/
호학 신석불휴 급지면수피침 이승계두현옥량).
晨은 새벽 신, 睡는 졸음 수, 疲는 피곤할 피, 繫는 맬 계.
넓적다리 이야기는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때
강국 秦(진)에 대항하려면 6국이 연합해야 한다는 合從策(합종책)을
주창했던 蘇秦(소진)에서 유래한다.
한때 유세에 실패하고 집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공부할 때
한밤 잠이 오면 다리를 송곳으로 찔렀다.
잘못 찔러 피가 흐르면 복사뼈까지 이를 정도였다.
이런 노력의 결과 소진은 6국의 재상이 되었다.
劉向(유향)이 전국시대 전략가들의 책략을 모은
‘戰國策(전국책)’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