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글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우현 띵호와 2024. 5. 25. 21:41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평생 교감 승진도 사양(辭讓)하시고

교장(校長)자리도 마다하시면서
초등학교 교사로만 아이들 앞에서

교편을 잡으셨던 우리 아버지 십니다.

하루 종일 재잘대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버지에게는 더 없는 행복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정년퇴임을 하신 후 아버지는 학생들이

그리워셨는지 저녁이면 앨범을 펼쳐 들고 ​

지난 날 만났던 학생들 얘기부터

그리운 옛 이야기를 들려 주셨던 아버지 였습니다.

“이 아이는 정말 말썽 꾸러기였지
하루도 안 싸울 날이 없었단다.
그래도 심성은 착하고 붙임성도 좋아서

나만 보면 떡볶이 사달라며 날마다

조르곤 했던 아이지”

“유진이 얘는 공부도 잘했고 참 의젓하고

밝은 아이였었지.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지.
아프신 어머니 때문에 늘 의사가 되겠다고

말하곤 했었단다.
내가 가끔 집에 찾아가서

♥ 유진이 몰래 고기며 쌀이며 사다 놓곤 했었는데....…”

아버지의 줄줄이 이어지는 추억담은
늘 우리 자식들 마음을 촉촉이 적시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산책을 다녀 오시던

아버지가 그만 쓰러졌습니다.
폐암 말기…...
한 평생 칠판에다 쓰고 닦고 하시더니
폐암이 되셨던것 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의사들의 말을 뒤로 하고

우리는 아버지를 병원에서 집으로 모셔와

정성을 다해 할 수 있는 치료를 계속 했습니다.
종종 아버지 제자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오곤 했었지요.

그럴때엔 아버지 께서는 또 한 참을 옛 추억에 잠겨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습니다.

그때 만큼은 아버지 얼굴에도

생기가 돌아오곤 하셨지요.

그러나 아버지 병세는 날이 갈수록 점점 나빠졌습니다.
기침 때문에 잠을 못 이루시는 날들이 잦아지고,

가래 끓는 소리도 거칠어졌습니다.

마침내 대화조차 나누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나빠졌습니다.
그때 마침, 진료 받았던 병원에서
의사 한 명을 보내주셨습니다.
20대 후반의 여의사였는데,
아버지께서 가래가 끓으면 젖은 가재로

손가락을 넣어 가래를 꺼내주곤 하면서

가족 만큼이나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 여의사가 오는 날이면 말씀을 못 하시던

아버지께서도 유난히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한 번은 아버지가 기침이 무척이나 심해져서

얼굴은 핏발로 벌게지고 목은 가래가 들끓어

숨쉬기 조차 답답해 하시자,
손으로 가래를 꺼내던 의사는 난데없이

음료수 빨대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대체 빨대로 무엇을 하려나 하고
모든 식구들이 의아해 하고 있는데
음료수 빨대를 가져다 드렸더니
여의사는 빨대 한 끝을 아버지 목구멍으로

깊숙히 넣고 한 끝은 자기 입에다 물고서는

아버지의 목구멍의 가래를 입으로

빨아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식들도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젊은 여의사가 하고 있었습 니다.
폐암 말기 환자였기 때문에

가래에서 악취가 심했지만

여의사는 내색하지 않고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여의사는 그렇게 빨아내기를

몇 십분 정도 하고 난 후,
아버지께서는 가래 끓는 소리가
잠잠해 지고 아버지 얼굴에는
평온한 얼굴과 화색이 돌았습니다.

그 일이 있고 몇 달이 지난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의사를 본내준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네??.. 의사 보내드린 적 없는데요?”
“분명히 병원에서 왔다고 했는데요?”
“의사 분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
“아무튼 저희 쪽에서는

의사를 보내드린 적이 없습니다.”

여의사의 이름도 몰랐던 나는 헛걸음만 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외국에서 한 통의 편지가 집으로 배달 되었습니다.
수신인이 돌아가신 아버지께 온 편지였습니다.
"선생님, 저 유진이에요.

선생님이 참 예뻐해 주시던 유진이 입니다
가끔 너무 어렵게 살던 저희 집에 쌀이며

고기와 반찬이며 몰래 놓고 가셨던 거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그때는 자존심이 상해서 차마 고맙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지만,
그 못난 제자가 의사가 됐어요.
이 소식을 알면 제일 기뻐하실 선생님을

다 방면으로 수소문해서 선생님을 찾았을 때,

많이 아프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침상에 누워 계신 선생님을 뵈었을 때

의사 가운을 입은 저를 보시며

비록 말씀은 못하셨지만
‘유진아, 어서 오렴’ 하시며
반겨 주시듯 제 손을 꼭 잡아주신 선생님!
선생님은 그날 절 알아보신 거 맞죠?

학창시절 언젠가 선생님께 제 꿈이

의사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유진이는 사람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고쳐주는 훌륭한 의사가 될 거야'

그렇게 말씀 하셨죠.

선생님,
부족한 제자 유진이는 이곳, 아프리카 오지에서

가난하고 헐벗은 빈촌 환자들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치유해주는 의사가 되어 분주하게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거죠?

사랑합니다, 선생님."
아프리카에서 유진이 올림

저는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그 여의사의

편지를 아버지 묘소에 고이 놓아드렸습니다

위의 아름다운 감동실화를 접하다 보니

가슴이 뭉쿨해 지면서
다시 한번 옛날을 더듬어 보며
혹시 위와 같은 사실을 우리는 일상에서도

까막득히 잊고 살아 오지는  않았는지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필히 지켜야할 "감사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며 살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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