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7)쥐뿔도 모르면서

우현 띵호와 2021. 9. 22. 02:51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7)쥐뿔도 모르면서

집에 들어가 안방문 연 서서방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부인과…
서로 진짜라고 우기더니
결국 진짜 서서방이 쫓겨나
목매려던 차에 만난 스님
보따리 하나를 싸주는데…

서 서방이 동구 밖 주막에서 친구들과 술 한잔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와 안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발가벗은 마누라가 밑에 깔렸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간부(姦夫)가

그 위에서 가쁜 숨을 쉬고 있는 게 아닌가.

서 서방은 다듬잇방망이를 치켜들고 고함쳤다.

“웬 놈이냐!” 하지만 연놈들이 도리어 성을 냈다.

“밤중에 남의 집 안방에 쳐들어온 네놈이야말로 날강도가 아니냐!”

때아닌 소동에 온 식구들이 깨어나 안방으로 몰려들었다. 이럴 수가!

서 서방은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마누라와 방사를 치르던 간부란 놈이 거울을 보듯 자신과 똑 닮은 것이 아닌가!

귀밑의 점, 왼 종아리의 상처 자국까지 똑같았다.

놀란 마누라와 식구들은 두사람을 번갈아 보며 비명을 토했다.

서 서방의 늙은 아버지가 나섰다. “내 이름이 뭐냐?”

“서봉섭.” 두사람은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 논밭이 얼마나 되느냐?”

“논이 열두마지기, 밭이 일곱마지기.” 이번에도 두사람은 동시에 정확하게 답했다.

지켜보던 서 서방 마누라가 물었다. “우리 집 수저가 몇벌이나 되지요?”

간부가 선뜻 대답했다. “놋수저가 열일곱벌이요, 은수저가 두벌.”

서 서방이 깜짝 놀라 덩달아 말했다. “놋수저 열일곱, 은수저 두벌.”

간부놈이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

“지난봄 아버지 생신잔치 하느라 놋수저 한벌을 잃어버려 지금은 열여섯벌입니다.”

“저놈이 가짜다!” 온 식구들이 달려들어 진짜 서 서방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당장 목숨이 위태로워 서 서방은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풍찬노숙하던 서 서방이 어느 날 소나무 가지에 새끼줄을 묶어 목을 매려는데

어디선가 지팡이가 날아와 뒤통수를 때렸다.

나동그라진 서 서방을 내려다보며 노스님이 대성일갈했다.

“못난 것 같으니라고! 젊은 놈이….” 그 길로 스님을 따라 소백산 깊은 암자에

들어간 서 서방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스님이 물었다. “혹시 집 안에 짐승을 키우는가?”

“개도 안 키우고 닭 한마리 키우지 않습니다.”

스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물었다. “잘 생각해 보게.”

한참을 생각하던 서 서방이 입을 열었다. “참, 생쥐 한마리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골방에서 새끼를 꼬고 있는데 조그만 생쥐 한마리가 흙벽 구멍에서 나오길래

먹이를 줬더니 제가 그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슬슬 기어 나왔지요.”

서 서방이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날 벽에 기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종아리가 따끔거려 눈을 떴더니

생쥐가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었지요.

그 배은망덕한 놈을 잡으려 했더니 팔짝 뛰어 쥐구멍으로 사라진 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스님이 싸준 보따리를 들고 서 서방은 소백산을 내려왔다.

사립문을 열고 집 마당에 들어서자 마루에서 저녁을 먹던 식구들이 놀라서

흠칫하는데 가짜 서 서방은 삿대질을 하며 벼락 같은 고함을 질렀다.

“저놈 잡아라!” 그때 서 서방이 들고 온 보따리를 풀자 고양이 한마리가

뛰쳐나와 쏜살같이 가짜 서 서방에게 달려들었다.

“찍찍.” 가짜 서 서방은 갑자기 생쥐로 변해 도망쳤지만 열걸음도 못 가

고양이 발톱에 낚아채였다.

온 식구들이 서 서방을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데

마누라는 치마를 덮어쓰고 울기만 한다.

마누라를 쫓아내진 않았지만 한평생 마누라는 쥐 죽은 듯 지냈다.

마누라가 나서기라도 하면 서 서방은 한마디로 잠재웠다.

“쥐뿔도 모르면서.” 뿔은 곧 양물이다. 마누라의 옥문으로

쥐의 양물이 그토록 여러번 드나들었는데도 제 서방의 양물과 구분도

못 했느냐는 질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