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9)땅속에서 올라오는 부처

우현 띵호와 2021. 9. 22. 02:51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9)땅속에서 올라오는 부처

마을 사람들이 주막에 모여
노랑이 황 참봉을 욕하는데
엿듣던 땡추는 비웃기만…
어느날 황 참봉네 선산에서
땅을 뚫고 올라오는 돌부처에
사람들이 몰려와 엽전 던지는데

“그놈의 황노랑이, 자기 혼자서 다리를 놓아도 놓을 텐데….”

주막집에 모여서 막걸리를 퍼마시는 동네 사람들의 안주는

천하의 노랑이 황 참봉이다.

동네 앞 개천의 외나무다리가 떠내려가자 돌다리를 놓기로

의견을 모은 동네 사람들이 삼천석지기 부자인 황 참봉에게

비용을 반쯤 부담하라고 통사정했지만 황 참봉은 다른 집과

똑같이 내겠다는 것이었다.

석수장이 일곱이서 개울가 바위를 깨고 동네 사람들이 거든다 해도

한집에 나락 두가마니씩을 내놓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가난한 집들은 당장 겨울나기가 막막했다.

모든 집에서 남정네들이 나와 일손을 거드는데 황 참봉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황노랑이한테는 나락 두가마 받지 말고 그집 씨들은 다리를 못 건너게 하자고.”
동네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황 참봉을 씹는데 듣고 있던 낯선 땡추가

비꼬듯 킬킬 웃는다.

“그렇게 씹기만 하면 황노랑이 곳간이 저절로 열린당가?”

며칠 후 황 참봉네 집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참봉 어른, 횡재수가 생겼습니다.”

황 참봉이 집사 손에 이끌려 뒷산으로 올라가 보니 희한한 풍경이 펼쳐졌다.

가마니를 깔고 앉은 웬 땡추가 목탁을 두드리는데 바로 그 앞에 돌부처가

땅에 파묻힌 채 눈까지만 솟아올라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일은 온 동네 사람뿐 아니라 산너머 다른 동네 사람들도 몰려와

합장을 하고 땡추가 깔고 앉은 가마니에 엽전을 던지는 것이었다.

“땅에 파묻힌 부처 대가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 난리야?”

황 참봉이 물었다. 집사는 “저 부처는 땅을 뚫고 저절로 조금씩 올라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산은 참봉 어른네 선산이 아닙니까!”라고 답했다.

황 참봉이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사람들을 밀치고 땡추 앞으로 다가가서는

“땡추 양반, 내 땅에서 허락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요?” 하고 따졌다.

땡추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엽전은 땅 주인이 모두 가져가시오.

소승은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불사를 이루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대꾸했다.

황 참봉의 눈신호에 집사는 두루마기를 벗어 엽전을 싹쓸이해 담고

자루처럼 어깨에 둘러멨다.

‘부처가 올라온다?’ 제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황 참봉은 목탁을 두드리는

땡추 옆에 앉아 돌부처 머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럴 수가! 저녁나절이 되자 돌부처가 코까지 땅 위로 올라온 것이 아닌가.

“대사님의 불력을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거기에 절을 지으려면 얼마나 들겠습니까?”

황 참봉의 사랑방에 좌정을 한 땡추는 목탁을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어흠어흠…. 제대로 지으려면 오천냥은 들어야….”

‘절을 지어 놓으면 방방곡곡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몰려오고 불전함은

엽전으로 넘쳐날 테지….’ 황노랑이는 무지개 청사진을 그렸다.

금강송을 뗏목으로 엮어 오고 천하제일 대목장을 데리고 오겠다며

오천냥을 받아 간 땡추는 두달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참다 못한 황노랑이가 도로 밑으로 내려간 돌부처를 발로 걷어차자

몸통도 없는 돌부처 머리는 떼굴떼굴 굴러가고 그 자리엔 썩은 콩나물이 가득했다.

사기꾼 땡추가 구덩이에 콩을 쏟아붓고 물을 부은 후 그 위에 돌부처 머리를 놓고

흙을 살짝 덮어 놓았는데 콩나물이 자라자 돌부처 머리가 올라왔던 것이다.

다리를 놓은 석수장이들은 땡추로부터 두둑이 돈을 받아 제각각 고향으로 돌아갔고

황노랑이는 화병으로 드러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