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8)동업

우현 띵호와 2021. 9. 22. 02:51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18)동업

단짝 친구인 정기와 영배
동업하기로 결의하고 한양으로
가던 길에 보물주머니를 주웠는데…

정기와 영배는 단짝 친구다.

그러나 집안 형편은 딴판으로 영배는 천석꾼 부잣집 아들이고

정기네 아부지는 영배네 집사로 일하며 근근이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

또 한편 정기는 서당에서 벌써 사서삼경을 뗐는데

영배는 아직도 사자소학에 매달려 있다.

어느 날 훈장님의 회초리를 맞던 영배가 “나 공부 안 해” 하고

큰소리로 외치고 집으로 가버렸다.

그날 저녁 정기가 영배의 책 보따리를 들고 영배네 집에 가자

영배 아부지 권 참사가 정기를 사랑방으로 불렀다.

정기가 꿇어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담배를 길게 빨던 권 참사가 정적을 깼다.

“너도 우리 영배와 동갑이니 열여섯살이지?” “네. 어르신….”
또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권 참사가 입을 뗐다.
“너는 공부를 그리 잘하니 과거를 보겠구나.” “그러려고 합니다만….”
땅땅 곰방대를 놋재떨이에 떨던 권 참사가 말을 이었다.

“네가 내 아들 같아서 하는 말이다만 네 아부지 한번 봐라.”
정기가 고개를 떨구었다.

“과거에 매달리다가 조상한테 물려받은 논밭뙈기 다 날려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내가 불러다 집사로 쓰고 있는 걸 너도 잘 알잖냐.

네 아버지도 네 나이 때 공부를 썩 잘해서 훈장님이 정승감이라 치켜세웠다.”

또 정적이 흘렀다.

“돈이 최고야. 일찌감치 장삿길로 나가. 내가 돈을 빌려줄 테니

우리 영배와 동업을 해봐.”

정기는 모깃소리만 하게 “생각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이 초시에게 얘기했다.

이 초시는 “나도 권 참사로부터 들었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라고 묻고는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이 초시가 여덟번이나 과거에 낙방하고 논밭을 야금야금 팔아 치우고 나서

삯바느질에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고생한 정기 어미는

울면서 장삿길에 나가라 애원했다.

아침저녁 찬바람이 부는 처서에 영배와 정기는 각자 삼백냥씩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 집을 떠났다.

주막집에서 둘은 새끼손가락을 칼로 베 피를 술잔에 타 나누어 마시며

동업 장사 결의를 다졌다.

이튿날 두사람은 한양을 향해 또 길을 걸었다.

“육백냥이면 종로에서 포목점 하나를 살 수 있지 않겠어?”

“제물포에 가서 배를 한척 사다가 새우젓을 떼 오면….”

온갖 청사진을 그려내며 길을 걷다가 영배가 길가에서 주머니 하나를 주웠다.

열어보니 금반지 하나에 옥노리개와 은비녀가 나왔다.

“우와, 나는 횡재했어.” 영배가 소리쳤다.

영배는 보물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더니 정기를 보고

“사람은 눈이 밝아야 해” 하며 팔짝팔짝 뛰었다.

잠시 뒤 우람한 남자 셋이 앞에서 다가오더니 “너희들 주머니 하나 주웠지?”

하고 윽박지르듯 묻는 게 아닌가. 눈을 부라리며 달려드는 기세가 거짓말한다고

통할 것 같지 않아 영배가 주머니를 건넸다.

사내들은 주머니를 낚아채 풀어보더니 철썩철썩 따귀를 한대씩 갈기고는

으름장을 놓는다. “이 두놈을 관가에 고발해야겠어.” “우리를 도둑놈 취급하는 거예요?”

하는 영배의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사내들은 발걸음을 돌려 가마 행렬로 가버렸다.

두 녀석은 얼얼한 뺨을 문지르며 근처 주막으로 들어갔다.

막걸리를 몇잔 비우고 나서 정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영배야,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너희 아버님에게 빌린 돈 여기 있다.”

정기가 품속에서 전대를 꺼내 영배에게 건네자 영배가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고

따지듯 물었다. “정기야! 따귀 한대씩 맞았다고 이렇게 쉽게 포기하냐?”

정기는 말없이 또 한사발을 마시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몸조심하고, 거상이 되어 금의환향해라.”

정기는 이 말을 남기고 먼저 주막을 떠났다.

떠난 지 사흘도 안 되어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앉혀놓고 정기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주 앉았다.

아들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정기 어미는 “불알 찬 사내 녀석이 뺨 한대 맞았다고

그렇게 쉽게 뜻을 접냐?”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기 아버지 이 초시는 “잘했다” 한마디만 했다. 정기 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영배는 보물 주머니를 주웠을 땐 “나는 횡재했어” 하며 독차지를 하고는,

곤경에 처했을 땐 “우리를 도둑놈 취급하는 거예요?” 하며 정기까지 끌어들였다.

그런 친구와 동업을 했다가는 어떻게 결말이 날지 너무나 뻔한 일이다.

정기는 공부에 매달려 이듬해 과거에 급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