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3) - 외상술

우현 띵호와 2021. 9. 22. 02:52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3) - 외상술

알뜰하고 길쌈솜씨 좋은
복덩어리 음실댁 각시로 맞아
해마다 땅 늘리는 재미 쏠쏠한데
남편 권서방은 장날마다 술타령…
술값 필요했던 권서방
어느날 묘한 궁리를 짜내는데…

권 서방은 부모한테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초가삼간에

화전 밭뙈기 몇 마지기뿐인데 운 좋게도 복덩어리 음실댁을 각시로 맞아들였다.
음실댁은 마음씨 곱고, 인물 또한 빠지지 않고,

지아비 권 서방을 하늘처럼 받들고,

무엇보다 살림 솜씨가 빈틈이 없는데다 길쌈 솜씨는

조금 게으른 여자 세 몫을 한다.

감자와 조를 심어 나물죽으로 끼니를 때우던 권 서방은

이제 쌀밥에 가끔 백숙까지 먹는 팔자가 되었다.

각시 음실댁의 권유로 권 서방은 얼마 되지 않는 밭이란 밭에

모조리 삼농사를 짓는다. 여름이면 권 서방과 음실댁은 삼을 베어와 쪄서

껍질을 벗긴다. 동지섣달 긴긴 밤이면 음실댁은 종아리가 벗겨져라

삼을 삼아서는 베틀에 앉아 고운 삼베를 짠다.

동네의 다른 아낙들이 15승 한필을 짜는 동안 음실댁은 20승 세필을 짜 치운다.

음실댁은 일전 한장 허튼 데 쓰질 않는다.

동네 마실 가는 것도 마다하고 장날 장터 나들이도 하지 않는다.

대신 가을걷이가 끝나면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매년 밭을 한마지기씩 사들인다.

덕분에 부부는 보릿고개도 쌀밥을 먹으며 넘긴다.

이 재미난 가시버시 사이에 끼어들어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술이다.

권 서방은 삼농사 짓느라 땀을 흘리다가도 장날만 되면 고주망태가 되어

친구들에게 업혀오기 일쑤다.

음실댁이 애써 짠 안동포를 내다 판 돈을 술값으로 축내기도 다반사다.

어떤 날엔 안동포 세필을 들고 나갔다가 술에 취해 두필 값만 들고 온다.

그래도 음실댁은 한숨을 토해낼 뿐 악다구니를 쓰지는 않는다.

“돈을 모아 겨울에 밭 한뙈기 사려는데 술집에 흘려버리면 어떡합니까?”

하는 정도다. 권 서방은 그게 미안해 정신이 멀쩡한데도 취한 척 쓰러진다.

권 서방은 장날 친구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인데

돈 나올 구멍은 음실댁이 짠 안동포뿐이다.

그러니 장날 집에 돌아갈 때면 소가 도살장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권 서방은 묘한 궁리를 짜냈다.

그날은 친구들한테 술을 얻어 마셔 안동포 두필 판 돈은 일전 한푼 축내지 않고

고스란히 음실댁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인 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돈을 받아 든 음실댁은 희색이 만면해 물었다.

“오늘은 무슨 돈으로 술을 마셨소?”

권 서방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내 양물을 맡기고 외상으로 마셨소.”
그런 다음 권 서방이 호롱불 뒤에서 허리끈을 풀고 바지를 쑥 내리자

음실댁이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털썩 주저앉더니 대성통곡이다.
“이 몸이 부서져라 삼을 삼고 엉덩이에 창이 나도록 베틀에 앉아 있어도

그것 하나 믿고 참았는데, 으흐흐흑….”
순진한 음실댁은 흐르는 눈물을 치마로 훔치며 말을 이었다.
씨암탉을 장에 내다 팔지 않고 백숙해서 올린 것도 그것 하나 때문인데,

으흐흐흑….” 

서방은 놀라서 술이 확 깼다.

“그것은 당신이 보관하고 있을 뿐이지 제 것인데 그 보물을

주막집 주모한테 맡기다니, 으흐흐흑….”

권 서방이 “여보! 찾아오면 될 것 아니오?” 하고 달래듯 말하자

음실댁은 울음을 멈추고 “빨리 찾아오세요” 하면서 포 한필 값을 건네준다.
권 서방은 부리나케 삽짝을 나서며 웃음을 참느라 입을 막았다.

인적 없는 캄캄한 길에서 권 서방은 기다란 양물의 귀두를 가죽끈으로

묶어서 불알을 덮으며 사타구니 뒤로 감췄던 걸 풀었다.
그날 밤 음실댁은 권 서방의 양물을 잡고 반가워서 흐느껴 울었다.
그 이후로 권 서방은 장날마다 음실댁으로부터 술값으로 두냥씩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