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4) - 산골짝 외딴집

우현 띵호와 2021. 9. 22. 02:53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4) - 산골짝 외딴집

한양가던 선비, 한밤중 산길 헤매다
혼자 사는 과부 집에서 보내기로
밥 얻어 먹고 잠을 청하려는데
부엌에서 나는 물소리
방에 누웠지만 마음은 이미…

상강(霜降)이 지나자 밤공기가 싸늘해졌다.

선비는 발길을 재촉했지만 가도 가도 시커먼 산골짝엔

불빛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식은땀을 닦으며 산허리를 돌자

가느다란 불빛이 깜박거린다. ‘이제는 살았구나.’ 선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를 건너 갈대밭을 헤집고 사립문까지 다다랐다.

“주인장 계시오? 문 좀 열어주시오.” 선비의 고함에

안방 문이 열리고 아낙이 나왔다.

“이 밤중에 누구를 찾으러 오셨는지요?”

“한양 가는 길손입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단양에 닿을 줄 알았는데

산속만 헤매다가 불빛을 보고 불고염치….”

“길을 잘못 들었군요. 이 길로 삼십리만 가면 매포에 닿을 수 있습니다.”

선비는 산길 삼십리를 또 걸어야 한다는 말에

“부인 살려주십시오. 하룻밤 댁에서 유할 수 있도록 선처해주십시오” 하고

통사정을 했다. “곤란합니다. 이 집엔 저 혼자 살고 있어서….”

말끝을 무 썰듯이 싹둑 자르지 않아 선비가 또 울음 섞인 소리로 “부탁입니다.

호환이 두렵습니다”라고 하자, 부인은 마당을 가로질러 사립문을 열어준 것이다.

부인이 선비에게 다짐을 받는다.

“산골짝 외딴집에 혼자 사는 과부라고 함부로 흑심을 품지 마십시오.

개 같은 사람이라면 제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부인, 안심하십시오.

저는 이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건넌방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나서 부인이 부엌에서 밥상을 들고 왔다.

“이 시간에 산길을 헤매다 왔으면 끼니도 못 챙겼을 것 같군요.”

선비는 감격해서 목이 잠겼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부인이 깔아준 이부자리에 눕자 잠이 오지 않는다.

비운 밥상을 들고 나가던 부인의 육덕이 눈에 아른거리는 것이다.

그때 부엌에서 첨벙첨벙 물소리가 난다.

‘이 밤중에 설거지를 하는가? 무슨 설거지를 이렇게 오래 하나?’

선비는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방문을 열고 부엌문 디딤돌에 앉아

한치나 벌어진 틈으로 한쪽 눈을 갖다 댔다.

이럴 수가! 발가벗고 나무 물통에 들어가 있는 부인이 아궁이의

장작 불빛을 받아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남자 밑에 깔려 요분질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흑단 머리가 덮인 긴 목이 어깨선으로 이어지고,

탱탱하게 솟아오른 젖무덤 아래로 허리에 살이 조금 올랐지만

아직도 엉덩이 폭에는 한참 모자라고, 배꼽 아래 물속에 비친

거웃은 밤길 산골짝처럼 시커멓다.

선비는 돌덩이처럼 곧추선 양물을 짓누르며 몇 번이나 다짐했다.

‘나는 개 같은 사람이 아니야.’

선비는 마루를 건너 건넌방으로 들어가 누웠지만 두눈은 말똥말똥하고

양물은 바지를 뚫을 듯이 솟아올랐다.

부인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를 듣고 선비는 속으로

‘나는 개다. 나는 개다’ 하며 문을 열고 두어걸음 마루를 건너

안방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자는지 자는 척하는지 호롱불을 켠 채 요염하게 요 위에 누워 있는

부인을 보고 선비는 속으로 ‘부인, 나 좀 살려주십시오’ 하며

안방 문을 살짝 당겼더니 문을 잠그지도 않았다.
“아니야! 나는 개 같은 놈이 아니야!”

선비가 선잠에서 깨어나니 벌써 해가 중천 가까이 갔다.

부랴부랴 의관을 차려입고 단봇짐을 메고 처마 밑에서

“부인,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해도 안방에서는 대답조차 없다.

사립문 닫는 소리가 들리자 사립문 밖으로 부인이 나와 한줌의 소금을

홱 뿌리며 한마디 뱉는다. “개만도 못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