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2)

우현 띵호와 2021. 9. 22. 02:52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22) 추석날 생긴 일
지난 설, 장인·장모의 사기 골패로
첫째·둘째 사위 돈 왕창 털려
추석 전날밤
첫째 사위, 애들 동원해 암호 짜고
둘째 사위는 마누라와 고민하는데…

추석 전날 밤, 맏딸 집.
“자∼, 마지막으로 연습해보자.”

맏사위가 안방에 요를 깔고 골패판을 준비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맏딸이 접시를 들고 오며 “여보, 쑥송편 하나 들고 하시오”라고 하자

맏사위가 “생각 없어” 하며 손에 들고 있던 백오 패를 던졌다.

맏딸이 목소리를 높인다. “여보, 쑥송편은 오륙 패인데 백오 패를 던지면 어떡해!”

맏사위가 머리를 긁적였다. 다시 맏딸이 묻고 맏사위가 답했다.

“콩송편?” “어사!” “물김치?” “주륙!” “식혜?” “직흥!” “또 틀렸어, 또!

식혜가 어떻게 직흥 패야?! 관이 패지.”

지켜보던 이 집 아들이 고개를 쳐들고 한마디 한다.

“엄마! 아빠! 어디 가서 사기도박이라도 하려고 그래?”

맏사위가 아들에게 쏘아붙인다.

“야 인마, 지난 설 때 네 외할아버지 사기도박에 걸려들어

내가 얼마나 털렸는지 알기나 해? 거의 오십냥을 잃었어!”

맏딸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단단히 못을 박는다.

“눈에는 눈, 코에는 코! 잔말 말고 당신은 여기 적힌 암호나 달달 외우시오.

그리고 이 작전이 들통 나서 무용지물이 되면 2단계 작전으로 들어가야 해.”

맏딸이 제 딸을 보고도 작전을 지시한다.“2단계 작전은 네 손에 달렸다.

‘외할아버지 등 아프시죠?’ 하면서 어깨와 등을 두드리고 곁눈질로

외할아버지 패를 보란 말이야.

그다음 네 아버지와 눈을 맞추고 왼쪽 눈을 한번 깜박이면 백사 패,

두번 깜박이면 장삼 패, 세번 깜박이면….”

추석 전날 밤, 영감 댁.
“영감.” “왜 불러?” “지난 설 때 골패판을 벌려 얼마나 땄소?”

“맏사위한테서 한 오십냥, 둘째 사위한테서 스무냥, 합이 칠십냥.

그 돈으로 할멈에게 비단치마와 저고리 해 입히고 한양 구경 다녀왔잖소.”

“호호호.” 웃던 할멈이 웃음을 딱 멈추고 비장한 표정으로 영감과 얘기를 나눈다.

“우리가 그 수법을 몇년이나 써먹었지요?”

“갑술년 설 때부터 써먹었으니 6년째야.”

“영감,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되는 거 아니요?”

할멈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자 영감이 빙긋 웃으며 할멈을 안심시킨다.

그러곤 호롱불 아래서 오른손 검지 끝을 감았던 보드라운 옥양목을 두달 만에 푼다.

영감의 아홉개 손가락은 거칠고 새까만데 한 손가락은 새하얗고 보드랍다.

추석 전날 밤, 둘째 딸 집.
둘째 사위가 혼자서 골패판을 벌려놓고 한숨을 푹푹 쉰다.

“내 비록 과거엔 낙방했지만 지난 설 때 돌대가리 동서 형님과

삭은 머리 장인어른과 붙어서 어떻게 스무냥이나 털렸지?”

옆에 있던 둘째 딸이 남편에게 구박을 준다.

“당신은 어찌 그리 눈치코치가 없소? 엄마와 아빠가 짜고 사기 도박판을 벌린 거예요.

엄마가 골패판을 둘러보고 당신과 형부가 든 패를 아빠한테 가르쳐준 거예요.”

“어떻게?” “손톱 끝으로 다락문을 두드려서 암호를 보낸 거예요.”

추석날 밤, 영감 댁.
장인과 사위들은 오로지 골패판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둘째 딸은 제 어미 감시하느라 맏딸이 “여보! 식혜 좀 들고 하시죠”라고

암호 보내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런데 영감이 눈치를 채고 골패판을 사랑방으로 옮긴 다음

아무도 못 들어오게 문을 잠가버렸다.

새벽 닭이 울 때 사랑방 문이 열리고 영감은 빙긋이 웃으며,

사위들은 우거지상이 되어 나온다.

안방에서 할멈을 끼고 누운 영감이 히죽히죽 웃었다.

“오른손 검지를 두달 동안 옥양목으로 감아 뒀더니

감각이 예민해져 골패에 눈에 보이지 않게 파놓은 홈을 정확하게 읽었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