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6) 정선사또는 울고 그의 처는 뺨을 맞다

우현 띵호와 2021. 9. 24. 22:55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6

정선사또는 울고 그의 처는 뺨을 맞다

집안 볼것없는 박대근 허우대만 멀쩡
천석꾼 최부자의 외동딸과
하룻밤 보낸후 헛구역질하자 혼례
빈둥빈둥 거리던 박대근
최부자 돈으로 처외당숙에게 줄대
첩첩산중 정선사또가 됐는데…

집안 볼 것 없고 배운 것도 변변찮은 박대근은 허우대 하나만은 타고났다.

어깨가 떡 벌어진 팔척 장신에 이목구비가 뚜렷해 의관을 차려입고

저잣 거리로 나서면 속은 비어 있어도 겉모습은 위풍 당당하다.

말솜씨 또한 그럴듯해서 수중에 땡전 한닢 없어도 헛기침을 크게 하고

주막에 들어가 툭툭 주모의 엉덩이를 치며 입으로 구슬려 얼큰하게

취해서 나오는 것이다.

박대근은 천석꾼 최부자의 무남독녀 외동딸 오순을 달 밝은 밤,

물레방앗간에서 제 손으로 옷고름을 풀게 하였다.

최오순이 헛구역질을 해대자 부랴 부랴 혼례를 치렀다.

허구한 날 빈들빈들 놀고 있는 사위가 못마땅하지만 아들 없는 최부자는

박대근을 보면 한편으론 든든하다.

박대근에게 최부자 구슬리는건 아주 쉬운 일이다.

우선 베갯머리송사로 오순을 녹여 외동딸 오순이 최부자를 조르도록 만들었다.

사돈의 팔촌격인 처 외당숙이 육조 가운데서도 인사권을 쥔 이조판서와

끈이 닿는다는 걸 알았고, 때는 바야흐로 매관 매직이 성행하는 시절이라

최부자의 전대를 풀도록 외동딸은 끊임없이 아버지를 졸랐다.

최부자가 사위를 불렀다. “그래, 얼마를 갖다바치면 무슨 자리를 꿰찰 수 있는가?”

“논 백마지기만 찌르면 변방의 사또자리는 문제없고요,

일년 반 이면 본전을 뽑을 수 있습니다.”

처 외당숙이라는 작자는 한때 말단 관직에 있다가

지금은 관직 거간꾼으로 살고 있는데, 자신이 이조판서인 양 으스대는 위인이다.

처 외당숙이 중간에서 삼할가량은 떼먹고

마침내 박대근은 첩첩산중 정선사또가 되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고 박대근은 부임 하자마자 수청 기생을 뽑았다.

이 산골짝에 이런 인물이 어떻게 태어났을까 싶게 수청 기생 청계는 천하일색이다.

마누라 최오순이 사또 정부인의 위세를 떨쳐보려고 살림 보따리를 싸서

내려가겠다 고 편지를 보냈지만 박대근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못 내려오게 했다.

거의 일년을 독수공방으로 보내던 최오순이 밀객을 정선으로 내려 보냈더니

아니나 다를까, 수청 기생 치마폭에 쌓여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최오순이 분해서 부들부들 떨다가 찾아간 곳이 외당숙이다.

외당숙이 최오순의 하소연을 모두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후, 외당숙이 나귀를 타고 정선으로 떠났다.

밤이면 주막에서 자고 낮엔 길을 가기를 몇 날 며칠이던가.

마침내 정선 관아에 도착, 수문장이 안으로 달려가 정선사또에게 고하자

박대근은 버선발로 달려나왔다.

정선사또 박대근은 처 외당숙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다.

그날 저녁 연회자리에서 처 외당숙이 수청 기생 청계를

보고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연회가 파하고 나서 둘만 남은 자리에서 처 외당숙이 말했다.

“청계라는 기생은 소문대로 천하일색이구먼.”

“당숙님, 청계가 한양까지 알려졌습니까?”

처 외당숙이 태연히 말했다.

“자네가 천하일색을 구했다 해서 이조판서는 학수고대하고 있네.”

꼼짝없이 청계를 빼앗기고 나서 박대근은 넋을 잃었다.

당나귀 등에 처 외당숙과 기생 청계가 타고 정선을 떠나자

박대근은 눈물을 흘리며 아침부터 술을 퍼마셔 저녁나절에는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 시간, 하진부 주막집에 남녀를 태운 당나귀가 들어왔다.

주막집 객방 하나가 그날 밤 지진이 났다.

한양으로 돌아온 처 외당숙은 남산골에 조그만 기와집을 마련하여 청계를 앉혔다.

어느 날, 최오순이 시름에 젖어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데

외당숙 마누라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들어와 다짜고짜

오순의 뺨을 갈기며 분풀이를 했다. “야이년아?,

네 신랑한테서 뗀 찰거머리를 왜 우리 남편에게 붙였놨노? 으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