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62) 한양 광교 다리 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

우현 띵호와 2021. 9. 27. 23:58

방랑시인 김삿갓 (62) 한양 광교 다리 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

잠자리를 찾아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는 동안

어느덧 거리는 더욱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얼마후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이 저마다 도망이라도 치듯이 황급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그렇게도 야단스럽던 한양의 거리가

삽시간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김삿갓이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조금전 들렸던 종소리는 통행 금지를 알리는 인정(人定) 소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양 도성에 통행 금지가 있다는 것을 알 턱 없는 김삿갓은,
(그 많던 사람들이 별안간 어디로 가버렸을까 ? )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어둠이 깔린 거리를 혼자서 유유히 걷고 있었다.
얼마를 걸어가다 보니 , 저만치서 순라군(巡羅軍)인듯 한 사람,

네 댓이 김삿갓 쪽으로 비호같이 달려와 사방으로 둘러싸며,

"이 도둑놈아 !

통행 금지 시간에 네 놈은 어디로 무엇을 훔치러 가느냐! " 하고

벼락 같이 호통을 치는것 이었다.
그러자 김삿갓이,
"나는 도둑이 아니오."
"이놈아 ! 네가 도둑이 아니라면 어째서 통행 금지 시간에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냔 말이냐 ? "
"통행 금지라뇨 ? 한양에 통행을 금지하는 시간이 있단 말이오 ? "

"허허 ..이런 촌 놈을 보았나 !

너는 도데체 어디서 굴러왔기에 통행 금지도 모른단 말이냐 ?"

"나는 시골서 조금 전에 한양에 올라온 사람이오.

한양 땅에 통행 금지가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오."
그러자 순라군들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을한다.
"통행 금지도 모르는 이런 시골뜨기를 잡아다 가둘 수도 없고 ..

이걸 어쩌지 ?"

그러자 두목인듯 싶은 순라군이 말하는데,
"아무 생길 것도 없는 놈을 잡아다 가두면 뭘해 !

숫제 광교 다리 밑에 움막 아이들 한테 갖다 맡기지."
그러면서 김삿갓을 쳐다 보며 말한다.

"이놈아 ! 한양에는 통행 금지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다녀라."
김삿갓은 기가 막혔다.
본시, 하늘과 땅이란 남여 노소, 귀천을 불문하고 만인이 공유하는

소유물일진데,

누구나 낮이나 밤이나 마음대로 다닐수 있는 곳이 땅이 아니던가 ?

그러나 이렇듯 황당한 경우를 당하고 보니

땅을 마음대로 밟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였다.

그러나 잠자리를 구하고 있던 차에 순라군 이야기로 짐작컨데 ,

잠자리를 구해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
(그것 참 다행이다.)

김삿갓은 광교 다리밑 움막이라는 곳이 궁금해,
"지금 나를 데려 가는 곳이 어떤 곳이지요 ?"하고,

광교 다리 밑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는 순라군에게 물어 보았다.
" 이놈아 ! 통행 금지도 모르는 놈이 그런건 알아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감옥 속에서 자는것 보다는 백번 낳을 것이니 잠자코 따라 오너라.

그리고 오늘밤은 움막에서 자고, 내일 아침 파루(罷漏)가 울리거든

어디든지 마음대로 가란 말이다."

김삿갓이 광교 다리까지 끌려와 보니,

다리 아래 개천가에는 제법 큰 움막이 쳐져 있고 그 움막
속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순라군은 김삿갓을 다리 위에 세워 놓고 움막에 대고 소리를 크게 지른다.
"애들아 ! 통행 금지도 모르는 촌 사람 하나 데려왔다.

오늘밤 너희 틈에 재우고 내일 아침에 보내 주도록 하거라."

그러자 움막 속에서 네 댓 아이들이 날치기 처럼 잽싸게 달려 나오더니

김삿갓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순라군에게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오늘은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비단 구렁이 한 놈을 잡아 왔어요.

그놈을 고아 먹으면 아저씨 가운데 다리가 "뻘떡뻘떡" 일어설 테니,

한번 써 보세요. 아저씨한테는 특별히 싸게 드릴께요."
구렁이를 팔아 먹으려고 덤비는 소리였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하, 이놈들이 광교 다리 밑에 사는 땅꾼놈들이로구나 ! )
하고 아이놈들의 정체를 대뜸 알아낼 수 있었다.
순라군이 웃으며 대답했다.

"예끼, 이놈들아 !

나는 그런 것을 먹지 않아도 밤마다 육봉(肉棒)이 후끈후끈

달아올라 못 견딜 지경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비싼 돈을 내고 그런 것을 사먹느냐.

쓸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이 손님이나 받아라 ! "

"아저씨가 안 쓰시려거든, 돈 많은 부자 양반들한테 좀 팔아 주세요.

삼백 냥만 받아 주시면 이번에는 섭섭치 않게 구문으로 백냥을 드릴께요."
"알았다, 알았어. 장사 애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어서 이 손님이나 받어 !"

"네, 손님은 받을테니까 ,이번 구렁이는 아저씨가 꼭 좀 팔아 주세요.

우리들은 이번에도 아저씨만 믿어요."

순라군과는 예전부터 어떤 거래가 있었든지,

땅꾼 아이들은 그렇게 당부를 하고 김삿갓을 움막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아저씨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끌려 오셨소.

한양 도성에 통행 금지가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셨던가요?"

"나는 한양이 초행이라네.

하늘 아래 땅은 누구나 마음대로 다닐수 있는 곳인데,

통행 금지가 있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말이 안되는 소리야 !"
김삿갓은 무심결에 통행 금지에 대한 비난을 한마디 씨부렸다.

그러자 땅꾼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손뼉을 치며 웃는다.
"그것 참 옳은 말씀 입니다.

하늘 아래 땅은 누구나 마음대로 다닐수 있는 것인데,

대감이니 영감이니 하는 날도둑들을 보호하기 위해

통행을 금지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웃기는 애기지요."

광교 다리 밑에 있는 땅꾼들의 움막은 겉으로 보기에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는데, 김삿갓이 이곳에 와서 움막 안을 두루 살펴보니

아이들의 살림살이가 놀랄 만큼 풍성하였다.
"오늘밤은 아저씨도 우리와 한식구요.

밥은 넉넉하니까 많이 잡수세요."
하며 늦은 저녁을 차려 내는데, 개다리 소반에 얹힌 저녁 반찬만 하여도

호박 볶음에 낙지 젓갈이 차려져 있고, 돼지 고기 구운 것과

훈제 오리고기며, 부추 무침에 각종 쌈 채소 조차 있는 것이,

정승 댁 잔칫상이 부럽지 않을 지경이었다.

김삿갓은 땅꾼 아이들이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조차,

스스럼 없이 인정을 베푸는 것을 보니,

그들의 인간성은 대문을 겹겹히 걸어 잠그고 허세를 부리며

살아가는 한양 양반님네와는 비교 안될 만큼 다정 다감 하였다.
"그럼 나도 자네들과 같이 먹기로 하겠네 ! "

김삿갓은 몹시 허기지던 판인지라 염치 불구하고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넌즈시 말을 걸었다.

"자네들이 이렇게 잘 살아가는 것을 보니 ,

장사가 잘되는 모양일쎄.." 하며

그들의 생활상을 떠 보았다.
그러자 우두머리인 듯 싶은 땅꾼 아이가

자신 만만한 어조로 이렇게 말을한다.
"우리들의 장사는 언제나 잘됩니다.

그것만은 자신있게 장담할 수 있지요."

"이 사람아 ! 장사란 경기를 타는 법인데

자네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그런 장담을 하는가 ?"

"물론 다른 장사라면 시세와 물량에 따라 굴곡이 있겠지요.

그러나 뱀 장사만은 땅 짚고 헤엄치기 인 걸요."

"어째서 땅 짚고 헤엄치기란 말인가 ?

얼핏 들어 서는 알수 없네..."

"생각해 보세요. 사내들치고 계집 싫어하는 사람은 없쟎아요.

이 많은 사람일수록 좋아하는 계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아,

하초가 영 신통치 못한 법이지요 ..

젊고 아름다운 소실이 있어도 배꼽아래 물건이 영 신통치 못하니까,

값은 고하간에 뱀을 사먹지 않을 수 없답니다.

그러니 우리네 장사는 경기도 안타고, 땅 짚고 헤엄치기죠."

김삿갓이 듣고 보니 과연 그럴 듯한 소리였다.
"아까 잠깐 듣자하니 구렁이 한 마리에 삼백 냥이라 하던데,

뱀의 값이 그렇게나 비싼 것인가?"

"아저씨도 참 ! 뱀의 값이 너무 싸 버리면

뱀을 사려는 사람이 효과를 의심하기 마련이예요.

그러니 처음 부터 높은 값을 불러 놓고,

흥정을 할 때 못 이기는 척 하고 조금 깎아주면

인심도 얻고 뱀도 팔수 있고, 서로 좋은 일이지요."

"그래도 그렇지 뱀 한 마리가 삼백냥이면 너무 비싸군.

이건 일종의 사기로구먼, 안그래?"

김삿갓이 웃으며 이렇게 말을 하자 ,

땅꾼 아이는 고개를 가로 젓으며,

"아저씨는 잘 모르시는가 본데, 한양 장안에 부자 양반들은

모두가 백성의 등을 쳐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예요.

그런 사람 돈을 좀 나눠 먹기로 무슨 죄가 된다고 생각 하세요 ?" ...

"하하하, 그 말을 듣고보니 자네 말에도 일리가 있네 그려.

그러고 보면 세상 만사가 돌고 돌아가며

절로 균형을 이루게 되는 모양일세 ! "

"우리들은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몰라요.

아무튼 뱀이라는 것은 값을 비싸게 부를수록 잘 팔리는 법이예요.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돈이 썩어나는 양반들에게는

돈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고, 오직 정력을 왕성하게

하는 것 만이 대단히 중요 하거든요."

"음 ..그렇기도 하겠네."
다음날 아침, 땅꾼 아이들은 아침을 먹기 무섭게 제각기

꼬챙이와 자루를 하나 씩 들고 움막을 나서며 김삿갓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이제부터 산으로 뱀을 잡으러 갈거예요.

아저씨는 서울 구경을 다니다가 잠자리가 없게 되거든 우리한테 또 오세요."
밤사이에 정이 들었는지, 고맙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한다.

"말만 들어도 고맙네.

덕분에 신세를 많이지고 가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은 사람이니,
섭섭하지만 이만 작별하세.

그리고 앞으로 건강하고 일 열심히 하면서 돈도 많이 벌게 되기를 빌어줌세 !"

"그래요 ? ... 이거, 섭섭해서 어떡하죠 ?"
그러면서 땅꾼 아이들은 저희끼리 눈짓을 하더니,

한 아이가 옆전 열 냥을 불쑥 내밀면서,
"이거 몇 푼 안되지만, 가시다가 술이라도 한잔 사 드세요."
하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밤새 신세를진 것도 고마운 일인데 돈까지 내밀다니 ..
너무도 고마운 인정을 만났기에 김삿갓은 눈시울이 후끈 달아 올랐다.

"나는 본시 돈이 필요치 않은 사람인데,

자네들이 정으로 주는 돈이니, 이 돈을 고맙게 받겠네."
김삿갓은 엽전을 주머니 깊이 간직하고 다시 서울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오늘은 풍수 지리상 백호의 기(氣)를 담고 있는

인왕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왕산에서 굽어보는 장안의 풍경은 글자 그대로 장관이었다.
만호 장안(萬戶長安)을 굽어보던 김삿갓은

어제 겪은 일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한양 도성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쓰고 살면서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밥 한그릇 먹이려 하지 않으니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이란 말인가.

그런 일에 비한다면 양반님네들이 멸시하고 더럽다

여기는 땅꾼 아이들의 고마움은 상대적으로
크게 비교가 되는 것이었다.
(한양이란 매우, 극과 극의 삶이 서로 섞여 돌아가는 곳이군 ...)
이런 생각으로 장안을 내려다 보던 김삿갓, 갑자기 뒤가 마려 옴을 느꼈다.

그리하여 바위 사이에 쪼그려 앉아 장안을 내려다 보며

뒤를 보려는데, 별안간 방귀 한 방이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나왔다.
어젯밤 땅꾼 움막에서 과식을 한 탓인지,

방귀 냄새가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요란스런 방귀 한 방을 뀌고 나니,

속이 그렇게도 시원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뒤를 보며

다음과 같은 즉흥시 한 수를 읊어댓다.

인왕산에서 똥을 누려니 방귀가 먼저 터져 나와

향기로운 냄새로 온 장안이 진동했다.

放糞仁旺 第一聲 방분인왕 제일성
香震長安 億萬家 향진장안 억만가.
이 시는 김삿갓이 인심 사나운 한양 도성을 떠나는

"이별의 시"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