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64)

우현 띵호와 2021. 9. 27. 23:59

방랑시인 김삿갓 (64)
*결코 만만치 않은, 만만집 주모 "하편"
"지금 저 여편네는 술장사를 해먹을망정 사람 하나만은 진국이라오.

인정 많고, 남의 사정 잘 알아주고 ...

계집으로서는 돼 먹은 계집이지요."

김삿갓은 조금전까지 서로 아옹다옹 다투던 모습과는 달리,

백수 건달이 주모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노형이 주모를 칭찬하는 것은 너무도 뜻밖이구료.

나는 두 사람이 개와 고양이 사이처럼 보였는데."

"주모와 나 사이가 개와 고양이 처럼 보인다구요 ? ..

근데요 사실은 주모가 나를 아껴주고, 내가 주모의 사정을 알아주고 ...

딱히 뭐랄 것은 없지만 그렇게 지내지요."

"노형이 주모를 이렇게 좋게 말하고 있지만,

외상술을 안주려는 것을 보면 주모는 노형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것 아니오 ? "
김삿갓은 그들의 관계를 좀더 알아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비틀어 보았다.

그러자 백수 건달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다시 한마디 하는데,
"천만의 말씀. 주모가 나에게 외상을 안주면 누구에게 주겠소.

나는 술을 입에 댓다 하면 억척스럽게 마시는 버릇이 있어요.

그래서 주모는 술을 안 주겠다고 앙탈을 부리는거죠.

이를테면 나를 생각해서 술을 못 주겠다는 것이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삼년 동안 술장사 하는 동안 계속 외상술을 마셨다니,

나라도 외상술 주고 싶은 생각이 나겠소 ?"

"아닌게 아니라 개업 첫날부터 외상술을 먹어 온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돈이 생길때 마다 갚아 온것도 사실이고,

꼬투리가 몇 푼 남아 있을 뿐이지 ..사실은 거의 다 갚아,

실상인즉 외상값은 몇 푼 남지 않았다오.

그런데 저 망할놈에 여편네가 나만 보면 삼 년전

외상값을 갚으라고 지랄을 하지 뭐예요."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박장 대소를 하였다.
"하하하, 삼 년 전의 외상값 꼬투리가 그냥 남아서 돌아간다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오 ? ... 그나 저나 나는 궁금한 것이 하나 있소이다."

"뭐가 궁금하단 말씀이오."
"우리에겐 옛날부터 홀아비가 한방중에 

과부를 보쌈해 가는 관습이 있지 않소?

이 부근에도 홀아비가 없지 않을 터인데 ,

이렇게 과부 혼자서 버젓이 술장사를 해오고 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이오 ? "

이 말을 들은 백수 건달은 생각나는 일이 있는지,

들고 있던 술잔을 술상위에 털썩 내려놓으며 말한다."

"아 참 ..그 말을 듣고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군...

이 집 주모가 한밤중에 홀아비한테 업혀갔던 사건이 두 번씩이나 있었다오."
"엣? ... 홀아비한테 두 번씩이나 업혀 갔던 일이 있었다구? "

이번에는 백수 건달이 술 한잔을 단숨에 쭉 들이키고 나서,

비어있는 술잔을 김삿갓에게 건네며 말한다.
"삿갓 선생! 과부 업혀 갔던 애기도 좋지만 술이나 마셔 가면서 애기 합시다.
내가 한잔 따를테니 기분좋게 쭈욱 들이키시오."

백수 건달은 남의 술로 선심을 써가며, 호기롭게 말을한다.
"이 집 주모가 한밤중에 홀아비한테 업혀 가던 이야기를 들으면

삿갓 선생의 배꼽이 빠질거요."
"배꼽이 빠져도 좋으니 그 애기 좀 들어 봅시다."
"듣고 싶다면 애기해 드리죠."

그리고 백수 건달은, 주모가 한밤중에 산너머 마을에

홀아비에게 업혀 가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지금으로 부터 20여 년전, 주모가 30고개를 막 넘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주모는 결혼한 지 10여 년 만에 남편이 죽고,

딸 하나를 데리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젊고 아름답던 시절이라,

재혼을 시켜 주려고 중신 할미들이 꼬리를 물고 찾아 왔다.
그중에는 읍내의 갑부인 최부자가 소실로 데려 가겠다는 유혹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과부는 일체의 유혹을 부리치며,

누구에게나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누가 뭐라해도 재혼은 안 해요.

백년 가약을 맺었던 남편이 비록 죽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남편은 남편이에요.

재혼을 했다가 훗날 저승에 가서 남편을 무슨 낯으로 대하겠어요.

그러니까 나는 딸 자식 하나를 데리고 죽는날 까지 혼자 살다가

먼 훗날 저승에 가서 남편을 반갑게 만날 결심이에요."

본인이 이런 각오를 다지고 말을하니, 중매쟁이들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밤, 커다란 이변이 생겼다.

젊은 과부는 정신없이 잠을 자다가 그만,

포대 자루 속에 갇혀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내등에

강제로 업혀 가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젊은 과부는 업혀 가면서도 포대 속에서 "사람 살리라"는

고함을 고래 고래 지르며, 사지를 결사적으로 버둥 거렸음은 말 할 것도 없었다.

납치범은 그런대로, 포대 자루 속의 젊은 과부를 얼마를 업고 갔다.
그러나 포대 속에 든 과부의 몸부림이 어찌나 극성스럽던지 ,

더 이상 업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납치범은 마침내 포대 자루를 길바닥에 내려놓고,

제법 정다운 어조로 이렇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강제로 업혀가기 싫거든 포대 속에서 내놔 줄테니

아뭇소리 말고 따라 오라구. 우리들 같은 과부
홀아비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 줄 알아요.

과부와 홀아비라도 남부럽지 않게 잘살면 될 게아닌가.

나는 그만한 자신이 있어 임자를 업어가는 것이니

잠자코 따라오면 얼마나 좋겠누 ..."

포대 속에 갇혀 있는 젊은 과부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문득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을했다.
"나는 죽으면 죽었지, 이렇게 강제로 끌려가서는 못 살아요."
"그럼 포대 속에서 내놔 주면 나를 순순히 따라 오겠지?

우리 둘은 어차피 한번씩 아픔을 겪은 사람들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새롭게 출발해서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 보자구."

납치범은 일이 순조롭게 풀려 가는 줄로 알고 포대를 끌러 주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젊은 과부는 포대 속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별안간 표범처럼

사내에게 달려들어, 대뜸 그의 불알을 움켜잡고 늘어지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 나쁜 놈아 ! 짐승만도 못 한 네놈은 아예 뿌리를 뽑아 버리겠다."

사태는 급전 직하로 역전 되었다.

과부를 납치해 가려던 사내는 졸지에 급소를 공격당한 아픔에 기절 초풍을 하였다.
"아야 아야 ! 아이구 나 죽네 .. 제발 이것 좀 놔주쇼 ! 아이구 아야 ! ..."

사내는 금방 죽어 갈 듯한 비명을 질러댓다.
그러나 과부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려고 요동을 칠수록

고통은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개만도 못 한 놈아! 또다시 그럴 테냐 어쩔 테냐,

아예 오늘 여기서 뿌리를 뽑히고 갈테냐."
사태가 이쯤 이르자 제아무리 항우 장사라도 배겨날 길이 없었다.

"다시는 안 그럴테니 제발 사람 살려요."
젊은 과부가 얼마나 납치범의 불알을 세게 쥐었는지,

마침내 젊은 과부가 그것을 놓아 주었을때는,

납치범은 혀를 가로 물고 쓰러져 버렸다.

김삿갓은 거기까지 듣다가, 배꼽을 움켜잡으며 포복 절도를 하였다.
"하하하, 하마트면 하나밖에 없는 귀물을 송두리째 뽑혀 버릴 뻔했구료.

사내의 급소를 사정없이 움켜잡고 늘어졌으니 당사자는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만 하여도 남에 일 같지 않구려."

"그러게나 말이에요. 그러니까 삿갓 선생도 행여 그것만은 조심하시오."
"에이 여보시오. 남에 걱정은 말고 노형이나 조심하시오."
"납치 사건이 두 번 있었다고 했는데, 또 한번의 납치는 어떻게 모면했나요.

그 애기도 들려주시구려."
그러자 백수 건달은 고개를 가로 젓으며,

"삿갓 선생은 술 한잔 사주고 그 좋은 이야기를 죄다 공짜로 듣겠다는 말씀이오.

그건 너무 하시오."
라고 말을 하면서 거절하는 투로 나온다.

"에이..밑천도 안 들인 애기를 무얼 그리도 비싸게 구시오.

술은 얼마든지 살 테니 어서 다음 이야기를 들려 주시오."
"어험, 그러면 밑천이 안 들은 이야기니 선심을 쓰기로 할까 ? "
백수 건달은 김삿갓이 이야기에 바짝 흥미를 같자, 잔뜩 뜸을 들인후 ..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하늘 아래 하나밖에 없는

희귀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어요."
그리고 백수 건달은 두번째의 납치 사건을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달은 발이 없어도 하늘을 걸어가고

(월무족이 보천 : 月無足而 步天) 바람은 손이 없어도 나무를흔든다

(풍무수이 요수 : 風無手而 搖樹) 라는 옛말이 있더니 ,

첫번째 납치 사건은 아무도 모르는 한밤중에 일어난 일 이 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젊은 과부가 납치범의 불알을 움켜쥐는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는 소문이

며칠이 안되어 동네 방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쫙 퍼졌다.

예나 지금이나 홀아비는 어느 마을에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첫 번째 납치 미수 사건을 듣고 난 근동에 홀아비들은

문제의 과부를 업어 올 엄두를 내지 못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처럼 무서운 과부를 섣불리 업어 오려다가

불알이 뽑혀 버리는날이면, 인생이 송두리째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라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과부가 워낙 귀한데다가 홀아비는 흔해 빠졌으므로 ,

개중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팔자를 고쳐 보려는 홀아비가 노상 없지도 않았다.

문제의 과부집에서 50리 가량 떨어진 청석골이란 마을에 살고 있는

황서방이라는 홀아비가 그런 부류에 속하는 만용가

(蠻勇家 : 오랑캐 같은 무모한 용기를 가진자) 였다.

40 고개를 갖 넘은 황서방은 ,

힘이 황소같이 거침없는 사내로써 동네에서는 고집도 황소처럼 세고,

우둔하기도 짝이 없어 사람들 끼리 그를 부를 때는 흔히, "황소방' 이라고 하였다.

바로 그 황 서방이 어느 날 늙은이들이 그늘에 모여 앉아 한담을 나누던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어느 홀아비가 젊은 과부를 업어 오다가 그만,

불알을 움켜 쥐이게 되어 뿌리가 뽑힐 뻔 하였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장담하였다.

"계집에게 뿌리를 뽑히다니오 ?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계집이 제아무리 힘이 세기로, 사내의 뿌리를 무슨 재주로 뽑는단 말이오.

나 같으면 계집년을 그 자리에 자빠뜨려 놓고 말뚝 같은 물건을

사타구니 속으로 꼿아 버리겠소.

그러면 계집은 대번에 거품을 물고 나가 떨어질 게 아니오."

그 말에 늙은이들은 포복 절도를 하였다.
"이사람아 ! 누군들 자네만 못해서 뿌리가 뽑힐 뻔 했겠나.

여자들의 "악다구리"는 오뉴월에도 서리가 맺히는 법이네.

자네는 여자들의 무서움을 전혀 모르는가 보구먼."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요.

언제나 밑에 깔려 돌아가는 것이 계집인데 무섭긴 뭐가 무섭단 말이요."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어디, 자네가 그 과부를 업어와 보게나."
"과부의 집이 어딘지나 알려 주시오. 그깟 계집, 오늘밤 안으로 업어오지요."
이리하여 젊은 과부의 두 번째 납치극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날 밤, 황서방은 젊은 과부를 포대 자루 속에 넣어 등에 업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과부는 포대 속에서 결사적으로 난동을 부려 보았지만

황서방은 끄떡도 않고 자기 집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에 온갖 지랄을 해 보아도 끄떡도 않는 황서방의 등에

업힌 포대 자루 속에 과부 자신도 이번만은 "큰일났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 산골짜기를 지날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저 멀리 산 위에서 홀연,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두 눈에 쌍불을 켜고,

우뢰와 같은 호성(虎聲)을 지르면서 황서방을 향하여 번개처럼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황서방은 혼비 백산하여 "악!" 소리를 지르고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랑이는 도망가는 노루를 추격해 오는 중이었고

그 방향은 공교롭게 황서방의 가던 길과 마주쳤던 것이었다.

그러나 황서방은 호랑이가 자기를 노리고 달려 오는 것으로 알고

에 질린 나머지 그 자리에서 뻗어 버렸던 것이었다.

납치되어 오던 과부가 간신히 자기 손으로 포대를 끌르고 나왔을 때에는,

호랑이는 이미 온데간데 없고 자기를 납치해 오던 사내는

누런 똥을 한바가지 싸 갈겨 놓고 송장이 되어 있었다.

김삿갓은 두 번째 납치 미수담을 듣고 포복 절도를 하였다.
"하하하, 하늘이 무심치 않아 , 황서방인가 하는 자가 천벌을 받은 셈이구려."
"물론이지요. 그야말로 천벌이지요."
마침 그때 주모가 삶은 닭고기를 소반에 받쳐 들고 들어오며 두 사람에게 말한다.
"무슨 애기를 그렇게나 재미있게 하세요."

김삿갓은 웃음이 가시지 않는 얼굴로 주모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끼고 아끼던 씨암탉을 잡아 오게 해서 미안하오....
우리들은 지금 홀아비가 과부 업어 가던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소."
주모는 대번에 눈치를 알아차리고, 백수 건달을 흘겨보며 정면으로 나무란다.
"백수 건달이 허풍을 떤 모양이구먼." 그러면서 김삿갓을 보고,
"그런 허풍은 믿지 마세요."

그러자 백수 건달도 한마디 하는데,

"허풍은 무슨 허풍이야. 모두가 사실인걸. 누가 없는 말을 꾸며 냈을라구."
"사실이거나 말거나 간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긴걸..."
주모는 백수 건달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나서,

"쓸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서 닭고기나 들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김삿갓에게 말한다.

"술 안주를 정성껏 만들어 오기는 했지만 음식 솜씨가 워낙 없어서 ..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맛이 없더라도 많이 드세요."

김삿갓은 우선 국물 맛을 보았다.
간도 잘 맞았지만, 어떤 양념을 넣었는지 향취가 그윽하게 풍기는데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응? ... 이게 바로 "천하 일품" 이라는 것이 아닌가? 이

렇게도 기막힌 음식 솜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토리묵 한가지 만으로 술을 마시라고 한 것은 너무하지 않았소."
그러자 백수 건달이 딴지 거는 소리를 던지고 나오는데,

"삿갓 선생! 섣불리 감탄 하다가는 삿갓 선생도

누구 모양으로 뿌리를 뽑히게 될까 걱정스럽소."
"에이, 여보시오. 주인 아주머니가 아무리 분별이 없기로 내 것이야 뽑자고 뎀비겠소 .

하하하... 안그래요, 아주머니 ? "
주모는 닭고기 담긴 솥을 김삿갓 앞으로 내밀어 놓으며 말한다.

"시장하단 양반이 무슨 군말이 그렇게나 많아요. 어서 닭고기나 드시우."
그리하여 술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술에는 김삿갓도 자신이 있었지만,

백수 건달은 밑 빠진 독처럼 한이 없이 마셔댓다.

그러자 주모가 김삿갓에게 귀띔을 하는데,

"저 사람은 술을 한번 폭음하고 나면 열흘 가량 앓아 눕는 버릇이 있다우.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게 권하지는 마세요."
주모의 은근한 보살핌에 김삿갓은 내심 감격해 마지않았다.
아까는 백수 건달이 닭 값을 많이 받아 주려고 애를 쓰더니,

이번에는 주모가 백수 건달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것이 아닌가 ?

그렇다고 그들 사이에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아껴 준다는 것은 얼마나 순박하고 아름다운 인정인가? ....

출호이자 반호이 (出乎爾者 反乎爾),

이쪽에서 마음을 터 놓고 손을 내밀어 보이니,

상대방도  무심중에 그 손을 잡아주는 것 ...

이렇게 세 사람은 흉금을 터놓고 말하는 중에

형용하기 어려운 우정이 쌓여만 갔다.

아울러 이런 친밀감은 양반 사회에서는 좀처럼 맛 볼수 없는 아름다운 인간미였다.
(인생이란 이렇게 살아가야만 옳는 것이 아닐까.)

김삿갓은 이와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들과의 어울림이

꾸밈없이 좋아서 술에 취하고 사람에 취했다.
이런 시간이 나흘째 되는 날 아침, 조반을 먹은 김삿갓은 주모에게 물었다.

"오늘은 길을 떠나야 하겠소. 술값은 얼마나 드리면 되겠소 ? "
그러자 주모는 몹시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돈을 안 받았으면 좋겠지만,

살림이 워낙 군색해서 전혀 안 받을 수는 없는 일이고 ...."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궁리에 잠겼다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한다.

"열 냥만 주세요."
김삿갓은 술값이 너무도 헐한 데 깜짝 놀랐다.
"에엣 ? ..열 냥이라뇨 ?

둘이서 사흘 동안이나 먹고 자면서 술을 연달아 퍼마셨는데,

열 냥은 너무 헐하지 않소 ? 게다가 씨암탉 값도 있는데 ..."
그러자 백수 건달이 중간에 끼어든다.

"삿갓 선생 ! 주모의 말대로 열 냥만 주시오.

인생은 인정으로 살아가야 할 일이지,

돈으로 셈하면서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이예요. 열 냥이면 본전은 될 거요.
삿갓 선생같이 좋은 분을 우리가 언제 또 만날수 있겠소."

지난번에는 닭 한마리를 잡아주고 대 여섯 마리 값을 받으라고 부추겼던

백수 건달이었건만,이제는 술 값을 체감해 주려고 애쓴다.

"내가 가진 돈은 어차피 며칠 못 가서 죄다 없어질 돈이오.

그러니까 열닷 냥만 받으시오."

김삿갓이 주모의 손에 돈을 억지로 쥐어주고 "만만"집을 나서자,
백수 건달과 주모는 문밖 까지 따라 나오며 ,

" 이제 , 다시는 만나기 어렵겠지요 ?" 하고 이별을 아쉬워한다.
김삿갓은 대답 대신 시 한 구절을 읊어 보였다.

오늘 아침에 한번 헤어지면
어디서 다시 만날수 있으리오.

후일 천국에서나 만납시다.

今朝 一別後 (금조 일별후)
何處 更相逢 (하처 갱상봉)
後天國之相逢 (후천국지상봉)

김삿갓,

비록, 오늘 아침에 두 사람과의 이별은 슬프지만

마음만은 더할 나위없이 흐뭇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