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37) *부처님과 보살의 차이.

우현 띵호와 2021. 9. 29. 23:03

방랑시인 김삿갓 (137)
*부처님과 보살의 차이.

김삿갓은 벽암 대사와 화기애애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더니 벽암 대사가 짐짓 손짓을 하니, 상좌가 술을 한상 차려다 놓는다.
"삿갓 선생이 술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술이 아닌 곡차(穀茶)를 좋아합니다.
절에 오셨으니, 우리 곡차를 한잔 나누십시다."
벽암 대사는 멀쩡한 을 익살맞게 라고 불렀다.

김삿갓도 술을 좋아하지만 벽암 대사의 주량은 끝이 없었다.
그는 마셔도 마셔도 취할 줄을 모르므로, 김삿갓은 너무도 놀라워,
"주장관사해(酒腸寬似海 : 술 마시는 배가 바다와 같다)라는 옛 말이 있더니,

스님의 술배는 정말, 바다와 같이 크십니다그려 !"
하고 말하니 벽암대사가 화답을 하는데,​
"내 배가 라면, 시를 잘 지으시는 선생은

시담대어천(詩膽大於天 : 시를 짓는 담력이 하늘처럼 크다)올시다."
하고 대구(對句)를 응구첩대(應口輒對)로 받아넘긴다.

김삿갓은 이왕 고승을 만난 기회에 불교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알고싶어,

벽암 대사에게 물었다.
"부처님과 보살은 어떻게 다르옵니까 ?"
"부처님이란 모든 중생이 지니고 있는 온갖 미망(迷妄)과

번뇌를 깨끗이 떨쳐 버리고, 자기 자신 속에서 불성(佛性)을 찾아내어

자연의 진리를 깨닫고, 다른 중생까지도 교화를 시켜 깨닫게 해준 성인을

부르는 칭호지요.

처음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 한 분만을 이라고 불러 왔지만,

그 후에는 석가여래를 따르는 많은 선각자(先覺者)들이 생겨나서,

지금은 그들도 넓은 의미에서 부처님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그러면 이라는 것은 무엇이옵니까 ?"
"보살 -이라 함은 위로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구하면서,

아래로는 중생들을 교화시켜 성불(成佛)하게 하려고 수행에 힘쓰는

불자(佛者)를 부르는 칭호지요. 사람은 누구나 불성을 타고 났어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수행만 잘하면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이 쉽지, 그만한 수행을 쌓으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야 물론이지요. 신라 때의 고승 부설거사(浮雪居士)는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심경을 다음과 같은 계송으로 말하고 있어요.

눈에 뵈는 것이 없으면 분별이 필요치 않고 귀에는 시비가 없는 소리만이 들린다.

분별과 시비를 모두 떨쳐 버리니
마음은 절로 부처님에게 귀의하게 되노라.

벽암 대사가 읊은 게송을 들은 김삿갓은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육기가 먼저 동하는 나 같은 속물은

도저히 부처님이 될 수 없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 삿갓 선생이야 말로 부처님의 성품을

선천적으로 풍부하게 타고나신 분일 겁니다."

"과찬의 말씀을 하시는 걸 보니, 대사께서는 술이 몹시 취하신가 봅니다."
벽암 대사는 는 소리에 ,머리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내가 취했다고요 ? 천만의 말씀이오. 술을 마셨다면 취했을지 몰라도,

곡차를 마시고 취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이까 ?"
벽암 대사는 이와 같이 익살을 부려 가면서,

"나는 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유(儒),불(佛),선(仙)에 모두 능통한 선생께서
요산요수(樂山樂水)로 영풍농월(詠風弄月)로 팔도를 두루 편답하고

계시는 만고의 풍류객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만인의 입에서

널리 회자(膾炙)될 것을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날 밤이 늦도록 두 사람은 술을 마셔가며 혹은 불교를 말하고

혹은 유교와 도교를 논하며 뜬눈으로 밤을 꼬박 보냈다.

그러고도 미진해 김삿갓은 벽암 대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아직 참선(參禪)이라는 것을 해본 일이 없는데,

참선이 그렇게도 좋은 것이옵니까 ?"

그러자 벽암 대사는 대뜸 다음과 같은 선시 한 수를 적어 보였다.

一默禪心淸 (일묵선심청)
한번 참선을 하면 마음이 깨끗해져서

對物最分明 (대물최분명)
모든 사물이 분명하게 보인다

猶如風過竹 (유여풍과죽)
이것은 마치, 마치 바람이 대나무 사이를 지나감과 같나니

竹中不溜聲 (죽중불유성)
대나무는 바람을 붙잡아 두지 않는다.
이 글을 읽은 김삿갓은 참선에 대해,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아 아리송하였다.

마침 그때, 상좌가 손님이 찾아 오셨다고 문밖에서 알린다.
"어떤 손님이 아침부터 찾아 오셨는고 !"
벽암 대사는 방문을 열고 내다보다가,

"아니, 일영(一影) 보살이 이게 웬일이야. 어서 들어와요."
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나 찾아온 여자 손님은 방안에 들어올 생각은 안하고,
"아침부터 무례하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혹시 이라는 분이 여기 와 계시는 것은 아니온지요?"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