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84)큰스님의 큰절

우현 띵호와 2021. 10. 5. 01:18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84)큰스님의 큰절

계모에게 학대받은 덕수와 덕순 남매

지나가던 큰스님이 덕수를 보고 갑자기 큰절을 하는데…

갓 장수 임 서방은 홀아비다.

부자는 아니더라도 보릿고개 걱정 없이 조신한 마누라와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를 두고 살갑게 살았는데,

그 마누라가 둘째 애를 낳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임 서방은 장사도 접은 채 세 살배기 아들을 둘러업고

핏덩어리 둘째 딸아이는 포대기에 싸안고 이 집 저 집,

강 건너 남의 동네까지 다니면서 젖동냥 하는 게 일이 됐다.

삼년을 그렇게 살다가 매파 할미 중매로 과부와 재혼을 하게 됐다.

과부는 딸 셋을 데리고 들어왔다.

식구가 일곱으로 늘어나자 쌀독이 쑥쑥 줄고,

닳아 없어지는 신발도 불감당이라 임 서방은 거의 4년 만에

갓 장수를 다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임 서방이 만들어 놓은 갓을 싸 들고 외장(外場)을 떠돌자

자나깨나 걱정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새 마누라가 임 서방 아이 둘을 구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 마누라는 임 서방이 집에서 갓을 만들 때에는

제가 낳은 새끼인 양 임 서방의 남매를 보듬어 줬다.

그러나 임 서방이 집을 나서기만 하면 온갖 학대를 다했다.

매질에다 밥 굶기기 일쑤여서

어린 남매는 개 밥그릇의 보리쌀도 주워 먹고,

남의 집 채반에 얹어 놓은 누룽지도 훔쳐 먹었다.

어린 남매가 배고파서 이 집 저 집 몰래 들어가 닥치는 대로

훔쳐 먹으니 동네에서도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손버릇 나쁜 아이들로 낙인이 찍혀 그만 동네의 애물단지가 됐다.

두 남매는 거지 꼴에 버짐 난 머리엔 새집이 들어설 판이었다.

이에 반해 제 배에서 난 또래의 딸 셋은 잘 먹여서

토실토실 살 오른 얼굴에 비단옷을 입혀 놓으니

하나같이 제 잘난 줄 알고 갓 장수 남매를 종 부리듯이 부려 먹었다.

한두 해가 지나자 새엄마라는 여자는 얌전한 갓 장수

임 서방의 눈치를 보는 것도 집어치웠다.

들어온 돌들이 박힌 돌들을 빼서 내동댕이친 격이다.

외장을 돌다가 열흘 만에, 보름 만에 돌아오면 임 서방은

불쌍한 두 남매를 껴안고 함께 울기 일쑤였다.

덕수는 자기집 머슴 꼴이고, 덕순이는 자기집 하녀가 된 셈이다.

그러던 어느날,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외고 스님이 동자승들을 거느리고 번왕사에서 내려오다가

마당에서 자기 키보다 더 긴 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는

덕수를 보고선 걸음을 멈추더니 넙죽 엎드려 절을 하는 게 아닌가!

큰 절 번왕사의 조실로 있는 외고 스님으로 말하자면

한양의 대감들도 내려와 찾아뵙는 당대의 큰스님이다.

몇년 만에 민가로 내려온 외고 스님이 거지같은 열살 아이에게 큰절을 하다니!

“장차 정승 자리에 오르실 큰 인물이오니 부디 자중자애 하시옵소서.”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놀라고 계모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덕수에게 큰절을 세 번이나 올린 노스님은 뒷걸음질로 물러나

바람처럼 사라졌고, 덕수는 도끼자루를 놓지도 않은 채 얼이 빠졌다.

이튿날부터 덕수의 팔자가 싹 바뀌었다.

흰쌀밥에 고기반찬을 먹고 비단옷을 입은 채 계모의 손을 잡고 서당으로 갔다.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 있던 훈장님은 버선발로 내려와

덕수를 안고 서당 안으로 모셨다.

학동들도 눈치가 빨라 덕수를 상전 떠받들듯이 대했다.

훗날 정승의 친구가 되고픈 것이다.

큰스님의 절을 받기 며칠 전만 해도 덕수를 거지 취급하던

동네 사람들도 열살 꼬맹이 덕수에게 잘 보이려고 야단이 났다.

소문을 들은 고을 사또도 개엿이다, 유과다, 호두를 한 고리짝

가져와서 덕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게 일년이 지났을 무렵, 훈장님이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했다.

정승이 될 아이라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쳐야 하거늘

덕수는 여태 천자문 하나 못 떼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훈장님은 속으로 ‘큰 인물은 대기만성(大器晩成) 한다지’ 여겼다.

나중에 정승이 된다는 덕수는 그렇게 호강하고,

누이동생도 덩달아 잘살기를 십년.

덕수는 어깨가 떡 벌어진 스무살 청년이 되었다.

문제는 또래 학동들은 사서삼경에 매달리고

초시에 합격한 아이도 있는데 정승이 될 덕수는 아직도

<사자소학> <명심보감>에 붙잡혀 있었다.

어느 봄날, 덕수는 산속을 걸어걸어 번왕사를 찾아가

조실 외고 스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물어봤다.

스님, 소인은 언제 과거에 붙어 언제 정승이 됩니까?”
스님이 호탕하게 껄껄 웃고 나서 말했다.

“지난 십년간 네가 악독한 계모의 학대에서 벗어나 정승처럼

호강한 게 늘그막에 진짜 정승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