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83)사기꾼 골탕먹이기

우현 띵호와 2021. 10. 5. 01:58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83)사기꾼 골탕먹이기

가난하지만 법 없이도 사는 착한 농사꾼 안서방이

장에 가서 눈을 질끈 감고 배 세 개와 꿀 한 단지를 샀다.

심한 고뿔로 몸져 누운 아내에게 꿀을 넣은 배숙을 해 먹이기 위해서다.

아내를 위해 먹고 싶은 막걸리 한 잔 안 마시고 비싼 꿀을 사왔는데 이럴 수가...
위에만 살짝 꿀이고 그 아래는 전부 조청이 아닌가.

안서방은 가짜 꿀단지를 안고 20리 길을 달려 장으로 갔지만

그 꿀장수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다음 장날 아침,

안서방은 다시 장으로 갔다. 눈을 부릅뜨고 온 장터를 샅샅이 뒤진 끝에

마침내 주막에서 나오는 그 사기꾼을 잡았다.

 

“여보시오, 지난번에 당신이 판 건 가짜 꿀이오. 당장 내 돈 돌려주시오.”
덩치 큰 사기꾼은 술 냄새를 풍기며 우습다는 듯 안서방을 째려봤다.
“나는 당신한테 꿀 판 적 없어. 저리 비켜.”
왜소한 안서방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마터면 가짜 꿀단지마저 깨뜨릴 뻔했다.

사기꾼이 성큼성큼 장터를 빠져나가는 걸 안서방은 뒤를 쫓아가 앞길을 막았다.
“나하고 당장 사또 앞으로 갑시다.”
“이거 오늘 재수 옴 붙었네.”
걸음을 멈춘 사기꾼이 발길질을 하자 꿀단지가 박살이 나고

안서방도 나뒹굴었다.

오기가 발동한 안서방은 말 없이 스무걸음쯤 거리를 두고 사기꾼의 뒤를 밟았다.

사기꾼이 힐끔힐끔 뒤돌아봤지만 안서방은 모르는 척 먼 산을 보며

그 간격을 계속 유지했다.
그때 저만치서 기골이 장대한 텁석부리가

그의 아내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안서방이 갑자기 그 부인을 보고..
“부인, 자색이 곱구랴. 내 첩으로 들어와 팔자 한번 고쳐 보지 않겠소?”
여자는 깜짝 놀라 입을 못 다물었고

텁석부리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에서 불을 뿜으며

솥뚜껑 같은 손으로 안서방을 덮쳤다.

하지만 안서방은 몸은 왜소하지만 몸놀림이 재빨랐다.

몸을 뺀 안서방이 냅다 뛰기 시작하자

벌겋게 달아오른 텁석부리가 따라왔다.
주먹다짐엔 언제나 밀리지만 달리기는 자신 있어

안서방은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계속 도망을 쳤다.

그러다가 저만치 앞서가던 가짜 꿀 사기꾼 옆을 지나며 큰소리로..
“형님도 빨리 도망가시오.

저 불한당 같은 놈이 나를 잡아 죽이려 해요.”
그 말을 끝내고 안서방은 바람처럼 달아나 버렸다.

텁석부리는 걸음을 멈추고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사기꾼의 멱살을 잡았다.
“네놈을 죽이면 네놈 동생이 송장을 치우러 오겠지.”
“어어, 왜 이러시오?”
사기꾼은 영문도 모른 채 초주검이 됐다.
산 위 소나무 뒤에서 사기꾼이 묵사발이 되는 것을 지켜보던

안서방은 텁석부리가 고개 너머로 사라진 후

반송장이 된 사기꾼의 주머니에서 꿀값을 빼내

휘파람을 불면서 산 넘고 물 건너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