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99)<노총각 심마니>

우현 띵호와 2021. 10. 6. 19:20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99)<노총각 심마니>

색줏집을 때려 부숴 곤장 맞고

술 취해 인사불성이 된 ‘덕배’

재를 넘어 가는 길에 한 여인이…

하룻밤 옥살이 끝에 동헌 앞마당에서 곤장 열대를 맞고

관아를 빠져나온 덕배는 곧장 주막으로 들어가

탁배기(막걸리)를 퍼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덕배는 노총각 심마니다.

조실부모하고 어릴적부터 약초꾼인 당숙을 따라

이산저산을 헤매고 다녔다.

그런데 당숙이 몸져눕자 외톨이 심마니가 되어 가끔 현몽을 꿔

산삼을 캐면 한의원에 팔아 목돈을 챙겼다.

노총각 덕배는 6척 장신에 어깨가 떡 벌어져 풍채가 좋다.

이따금 산삼을 캐다가 부러진 것들은 자신이 와그작 먹어버리고,

허구한 날 비호처럼 산을 타다보니 허벅지는 한아름이요,

장딴지는 옹기만 하다. 하지만 밤이 되어도 넘치는 힘을

쏟을 곳이 없어 용두질로 달래곤 한다.

사흘 전,

덕배는 산삼 다섯뿌리를 팔아 묵직한 전대를 차고 주막에서 술 한잔을 걸쳤다.

술김에 색줏집을 찾아 돈만 주면 훌렁 치마를 벗는

삼패(기생 등급 중 최하급)를 불렀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던 기생이 벽에 기대앉은 덕배를 보더니

놀라서 문을 닫고 도로 나가버렸다.

어릴 때 아궁이에 넘어져 시뻘건 장작불이 얼굴을 온통 인두질해버려

한쪽 눈은 애꾸가 되고 입은 턱밑에, 콧날은 뭉개져 괴물처럼 흉측했던 것이다.

분개한 덕배는 바로 색줏집을 때려 부쉈고,

그 바람에 옥에 갇혀 엉덩이에 피가 나도록 곤장을 맞았다.

술에 떡이 되어 비틀비틀 집으로 가는 길은 술에 취해,

분노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다.

날은 어둡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소나무에 박치기를 하며

솔티재를 넘다가 덕배는 걸음을 멈췄다.

장옷을 덮어쓴 여인이 길가 나무 밑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낭자는 어쩐 일로 이 밤중에 이 외딴 고갯길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오?”
깊은 산속을 혼자 쏘다니는 담력 센 덕배이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쇤네는 이 고개를 넘다가 발이 삐어 오도가도 못하고 있습니다.”
덕배는 비몽사몽간에 여인을 업었다.

솥뚜껑 같은 두손으로 여인의 엉덩이를 받치자

그녀는 양팔로 덕배의 목을 감쌌다.

오솔길로 들어가 산허리를 돌자 단아한 기와집이 나타났다.

안방까지 그녀를 업고 들어가 내려놓은 뒤 촛불을 밝히니,

장옷을 벗은 그녀의 얼굴이 천하일색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부둥켜안고 ‘후~’ 촛불을 껐다.

난생 처음 여인을 안아보는 덕배는 감격에 겨워 숨이 막힐 지경이다.

여인도 몸을 떨며 덕배를 맞았다.

둘은 구름 위를 걷다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다가 지축이 흔들리고 구들장이 내려앉았다.

진흙탕을 걷는 황소의 발자국 소리에 자지러지는 비명, 호랑이의 포효….

그러다가 오싹한 한기에 덕배는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인가!’
덕배는 바위 위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더욱이 소나무 가지 하나가 끊어진 새끼줄을 매달고 있었다.

그믐달이 새끼줄 끝에 매달렸다.

“여기가 바로 그 독바위라면….”
박박 얽은 곰보 처녀가 시집갔다가 첫날밤에 소박을 맞고

이 바위에서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맨 바로 그 자리다.

덕배는 걸음아 나 살려라, 고개 넘고 물 건너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보름쯤 지나자 그 괴기하고 무서웠던 기억은 사라지고

뜨거웠던 그날 밤 생각만 간절했다.

어느 날, 한낮에 길도 없는 숲을 헤치고 덕배는 독바위를 찾아갔다.

무서워서 아무도 그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는 독바위에 앉으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깍지 낀 양손을 머리에 대고 벌러덩 누웠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 동안 잤을까. 덕배가 눈을 뜨니 그때 그 기와집 안방 금침 위에 누웠고,

옆에는 아리따운 그 여인이 주안상을 차려놓고 앉아 있었다.

덕배가 물었다.
“모든 여인이 내 얼굴을 보면 기겁하고 도망가는데 낭자는….”
여인은 대답 대신 구리거울을 덕배의 얼굴에 디밀었다.

거울 속의 덕배는 이목구비가 반듯했다.

미남미녀는 그날 밤새도록 미친듯이 운우의 정을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