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글

어느 시골노인의 글 ( 그믐이 되얏는가 )

우현 띵호와 2021. 10. 23. 18:58

어느 시골노인의 글 ( 그믐이 되얏는가 )

어리중천에 초승달 걸렸는데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 무더기에 마음이 시리네

명절 에 맏이네는 큰놈 중간고사라고 차례상앞에 궁둥이 두어 번 조아린 뒤

그 길로 내빼더니 전교1등은 따 놓은 당상 이렷다.

둘째네는 보리와 콩도 분간 못하는 코흘리 개를 데리고

명절에 구라파로 역사여행 간다더니 이순신보다

나폴레옹 생애 줄줄 외는 신동이 나겠구나.

 

막내 며늘애는 당직 이라 우는 시늉을 하더니 혹 몸져누운 것이냐.
요즘처럼 황망한 세상엔 무소식이 희소식 이라지만

삼 형제가 약속이나 한 듯 감감 하니 아비 어미 죽어 달포가 지나도

부고 낼 자식이 없을까 두렵도다.

내 오늘 단톡을 소집한 것은 중차대히 전할 말이 있어서다.
너희 어머니, 즉 내 아내가 쓰러졌다.

당나라 군대에 쫓기 듯 차례상 걷기 무섭게 달아난 자식들이 남긴

설거지와 빨래, 먼지 더미를 사흘 내 쓸고 닦더니 새벽녘 밭일
간다고 나서다 고꾸라져 응급실로 실려갔다.

의사왈,

고혈압,당뇨,갑상선 약을 달고 사는 노인네가 끼니는 거르고 중노동만
하니 몸이 배겨내겠소. 와중에도 자식들 심란하게 전화 걸지 말라다 너희
어미를 보며 내 가슴을 쳤노라.

저 여자는 무슨 죄 있어 평생 구두쇠 서방 잔소리에 망나니 사내 자식들

키우면서 쓰다 달다 말이 없는가.

제사도 1회, 명절도 1회로 줄였거늘 그 도 못마땅해 입이 댓 발 나온 며늘애들

눈치 보느라 전전긍긍하는 저 여인은 바보인가 천치인가 두 늙은이 굽은 등으로

다리절며 고추며, 열무를 수확해 앞앞이 택배를 올려 보내도 고맙다

전화 한통 없는 자식들은 원수인가 애물단지인가,

하여 결단 했느니, 앞으로 우리 집안에 명절도 제사도 없다.

칠순이고, 팔순이고, 생일 잔치도 막살할 것이며,

어버이 날이니 크니마스니 하여 요란 떨 일은 더더욱 없다.

고로 상속도 없다.

우리 부부 가진 거라곤 벼룩 콧등만한 집 한채 뿐이나

무덤에 지고 갈지 언정 너희한테 물려주지 않겠다.

군청 말단으로 취직해 봉급은 쥐꼬리만 하나 손끝 맵고 짜게 살림하는

여인 만나 아끼고 쟁여온 덕에 옴팡간 장만한 재산 이다.

이를 남김없이 갖다 팔아 바다 건너 라고는 울릉도 밖에 못 가본

저 늙은아내와 세계 곳곳을 주유천하하며 몽땅 써버리고 죽을련다.

나의 아내에게도 면세점 이란 곳에서 외제 화장품, 외제 손가방도 사줘 보고,

사르트르 와 보부아르가 연애했다던 불란서카페에 가서 쓰디쓴 커피도

한잔씩 볼 것이며,천국 과 한뼘 거리라는 융프라우에 올라 온 세상 발밑에 두고

사진 한방 멋지게 남겨볼련다.

우리가 돈을 쓸 줄 몰라 허리띠 졸라맨 줄 아느냐.

영어를 몰라 해외여행 마다한 줄 아느냐.

한 치 앞 안 보이는 세상,앞길 구만 리인 자식들에게 한 푼이라도 보탬이 될까
이 악물고 살아온 죄밖에 없느니,그런 우리 한테 꼰대니 틀딱이니

손가락질하는 인심이 기가 차기만 한데, 내자식도 별수 없다.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내 비록 날샌 올빼미신세이나 가장(家長) 의 이름으로 남기는 마지막 부탁은

부디 덕과 예로써 세상을 살거라. 의로운 것이 아니면 머리카락 한 올도 취하지 말고,

자식들은 재주보다 덕(德)이 앞서는 사람 으로 키워라. 또한 아끼며 살거라.

적을 두려워하며 대처하는 자는 이길 것이 나, 세상에 나만한 사람 없다고 믿는 자는

망하리라. 아닌 밤 홍두깨 유언에 요강 뚜껑으로 물 떠먹은 낯빛일 것 없다.

바람처럼 와서 구름처럼 머물다 가는 것이 인생.

천지간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창공을 훨훨 나는 두 마리 학처럼

세상을 떠돌것이 니,

어느 날 우리내외 부고가 들려와도 슬퍼 하지 말거라.

오뉴월 물오이 처럼 쑥쑥 자랄 내 손주들 못 보는것이 다만 애통할진저.

※P.S: 여행갈 때 등산복 좀 입지 말라고 눈 흘긴 게 둘째더냐.

너희가 멀쩡한 바지를 찢어 입든 꿰매 입든 내 일절 참견 하지
않았느니 우리가 빤스만 입고 비행기를 타든 머리에 태극기를 두르든 괘념치 말라.



#임총무님 초대로 벙개팅! 늦게 보내온 사진! 어느날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좋은 친구랑 함께해서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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