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고지식한 선비
남재준장군의 가석방
남재준 장군이 가석방으로 구치소에서 지난 30일 풀려났다.
그는 국정원장 시절 관행으로 내려온 대통령에게
특수 활동비를 갖다 바쳤다는 죄로 영어 (囹圄)의 몸이 되었다.
문재인이 국정원 돈을 갖다 주었다고 올가맨 죄는
겉으로 내세운 명분이고 실제는 남재준 원장이 국정원장 시절
노무현이 북한에 NLL을 양보 했다는 관련 자료를 까발렸기 때문에
당시 민정수석을 했던 문재인을 난처 하게 만든
괴씸죄 때문에 엮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다음 사례는 남재준 장군이 우리 시대에 남은 얼마 안되는
꼬장꼬장한 선비상을 가진 분이라는 의견에 대한 입증 사례가
될 것으로 생각되어 소개 한다.
그는 육군 총장시절 뿐아니라 군생활내내 골프를 하지 않았고 총장
활동비로 교관과 장교들 해외 견학을 늘리라고 지시하였다.
여가시간에는 전쟁사 공부 를 했다. 총장을 그만둔 후 충남대학
에서 석좌 교수로 전쟁사를 강의했다.
보통 20여 명이 강의를 듣는데 하루는 축제일이라 학생들이
강의에 거의 참석하지 않고 2명만 참석했다.
그래도 그는 칠판 판서 2면을 빽빽하게 채우는 강의를 하였다.
대학의 강사료라는게 시간당 4-5만원이라 서울에서 대전까지
왕복 차비도 나오지 않는 사례비에도 기꺼이 남총장은 강의를 수락했다.
그리고 강사료로 나오는 돈보다 더 많은 액수의 고기를
제자들에게 사주었다.
한번은 육대처장 시절 초청을 하여 식사를 같이 했다.
모처럼 기분이 좋으셨던지 술을 많이 드셨다.
그 날 사모님이 운전을 하셨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자 부인이 기다리시다
자리에 합석을 하셨다.
그날 나는 두분의 노래를 듣고 놀라 뒤로 자빠졌다.
회식 후 노래방에 가면 남장군은 항상 애국가를 불렀다.
부부가 부른 노래가 소대장 시절의 소대가부터 중대가, 대대가, 연대가,
사단가, 수방사가, 육군가에 이르기까지 군가만 부르셨다. 아니 본인이
부르는 것은 이해를 한다만 어떻게 부인까지 군가를 부르시나하고
여쭈었더니 사모님 왈
“저 양반이 맨날 불렀다하면 군가 특히 부대가만 하도
불러 내가 자동적 으로 가사를 외울 수밖에 없었다”고 답하였다.
사전 약속된 음주를 해야 할 날에는 부인이 옆자리서 대기 하였다가
운전을 대신하였다.
남재준 장군의 군생활에는 가족의 애환이 절반 임을 알 수있었다.
역대 국정원장 중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원장이
누구 였냐고 물어 보면 남원장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하고 물으니 인사가 가장 공정 했고
자기의 역량을 최고로 발휘 하도록 근무 여건을 보장했다.
그러면서도 국정원이 해야 할 역할을 정확히 식별하고 국가가
지향 해야 할 대업모략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공사를 대단히 엄격 하게 구분했다.
총장 재임시절 공관과 관사의 개념을 확실히 구분 하여 공관의 경우에는
부대에서 난방 기름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예하 부대에서는 관사의 기름을 사적으로 부담 하라고
지시하여 난방비 때문에 곡소리가 났던 때가 있었다.
너무 결백 해서 탈이었다.
연못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모여들지 않는다.
수초도 있고 그늘도 있어야 하는데 너무 결백 하였다.
그는 전두환의 1212를 반대하여
중령을 7년차에 겨우 턱걸이 하여 대대장을 했다.
그는 종종 충무공 이순신과 비교하는 부하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충무공과 본인은 감히 비교 조차 되지 않지만 충무공과 비견될 수 있는
한 가지는 있다.
충무공이 선조와 많이 다투었는데 나는 노무현 대통령 과 많이 부딪혔다.
당시 노무현은 ‘정중부의 난’을 거론하며 남재준 총장을 치기 위하여 여러
부조리 관련 자료를 수집 지시 했다. 아무리 털고 털어도 먼지 하나 드러
나지 않자 이를 보고 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다면 모든 사안을 없던
일로 하라”고 지시 했다. 정치권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 하기 위하여 사표도
불사한 배수진으로 그는 정치권으로 부터 군을 보호 하였다.
또 하나는 육대 선발 제도와 관련하여 그는 이런 지시를 내렸다.
육대 정규 과정 선발을 통하여 한번 정리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군 장교 들은 전부 육군참모 총장을 지향한다.
일찍이 전문화를 분류하여 자기 전문 분야를 설정해야 하는데
우리 군은 우수자원을 선발 하여 집중교육하는 엘리트 교육이 없어서
그게 문제다 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 군사사상과 군사이론과 전쟁사를 교육과정에서 중점
강조하였다.
그는 최초 해외 파병 문제에 적극적 이었다.
분쟁지역 에서 해외 파병 경험은 큰 자산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회와 파병지 조정 과정 에서 전혀 적이 없고
위험이 없는 안전 지대에 가서 시간만 떼우고 오는 파병은
굳이 장려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경력에 마이너스 이니
그런 해외 파병은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고 반문했다.
의왕 교도소에 있을 동안 그는 부하들이 위문을 갈려고 하면
극구 못오게 말렸다.
자기가 푸른 수의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는 안에서도 전사책과 사서 삼경을 읽고 또 읽었다.
전역하고서도 부하들 가족들과 모임을 하면 꼭 의미있는 답사를 했다.
수원 화성를 둘러보고 다산 정약용의 일대기와 현륭원과
건능을 둘러 보았고 화성을 짓기위해 배다리등에 얽힌 고사를
살펴보았다.
또한 아산 현충사를 답사하여 충무공의 정신을 계승하고 현양하는데
앞장 섰다. 남재준 장군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꼬장꼬장한 선비다.
그는 항상 이양연이 쓴 시를 암송했다.
踏雪野中去
눈길을 걸을 때
不須胡亂行
어지럽게 걷지마라
今日我行蹟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遂作后人程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군인의 길을 가다가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영원한 군인의 사표가 될뻔 한
남재준 장군의 소신있는
처신이 보기드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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