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⑹석녀(石女)

우현 띵호와 2021. 9. 18. 02:19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⑹석녀(石女)

시집온 무실댁 애가 들어서지 않자
눈물 흘리며 쫓겨나 어디론가…
어느 날 장에 간 시어머니
인사하는 무실댁을 보고 놀라는데…

무실댁은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고을에서 가장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갔다.
흰 수염이 한자나 늘어진 의원이 무실댁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하더니

냉이 심하다고 한소리를 한 뒤 혀를 찼다.

한참이나 기다려 탕재를 열두첩이나 받아들고 의원을 나온 무실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시어머니 뒤를 따라 집으로 왔다.
시어머니가 이를 악물고 “이 탕재값이 얼만 줄 알기나 하는 기여?

이걸 먹고도 소식이 없어 봐라!” 하며 일침을 가한다.

무실댁이 시집온 지 이태가 지났지만 애가 들어서지 않아 애를 태우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별짓을 다했다.

닭 소리도 들리지 않는 꼭두새벽에 뒤뜰 우물가에 정화수를 떠놓고

삼신할미께 빌지 않나, 족집게 점쟁이 집을 찾아가지 않나,

무당을 불러 득남 굿판을 벌이지 않나….

무실댁이 아들과 그 어미만 살고 있는 고래등 기와집에 시집왔을 땐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샀건만 한숨 소리를 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날이 걸리지 않았다.

시어머니라는 이는 제 아들만 중히 여기지 며느리 무실댁은 씨받이 취급을 해

한달도 지나지 않아 태기를 물어댔다.

신랑이란 자는 삼대독자 외아들, 무실댁보다 세살 위의 백면서생으로

키만 크고 삐쩍 마른 데다 목소리는 가느다랗고 툭하면 몸이 아프다고 드러누웠고,

그러면 시어머니는 아예 아들을 안방에 눕히고 새색시는 며칠씩 근처에도 못 오게 했다.

 

외아들을 끼고 사는 시어머니는 성격이 표독스러워 무실댁 오장육부를

뒤집어놓기 일쑤였다. 배운 게 없는 쌍것이라느니, 혼수가 그게 뭐냐느니 하더니

이제는 아이도 못 낳는 석녀(石女)라며 무실댁을 몰아붙였다.

무실댁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것이 시어미가 씨앗은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밭만 탓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첫날밤 술 몇잔을 마셨다고 새 신부의 옷고름도 풀지 않고

모로 누워 혼자 자던 신랑이 며칠 후에야 신부의 옷을 벗기고 방사를

치르느라 껍적껍적하더니 옆으로 픽 쓰러졌다.

뭣이 어찌 되었는지 애매모호한 상황이 지나고 이튿날 아침 요를 봐도

핏방울 하나 없었다.

한달에 두어번 그 짓을 그런 식으로 치르는데도 시어머니는 며느리만 들볶아댔다.

열두첩 탕재를 다 먹고 석달 후 마침내 무실댁은 시집에서 쫓겨나

눈물을 흩뿌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달도 못 미쳐 매파가 들락날락하더니 이 집에서 논 열마지기를 떼어주고

처녀를 맞아들였다.

이 처녀는 서너달 만에 입덧을 하더니 열달 만에 옥동자를 낳았다.

무실댁을 쫓아낸 시어머니는 손자를 업고 온 동네를 쏘다니고,

이 집 대를 이은 며느리는 콧대가 높아져 시어머니가 차고 다니던

곳간 열쇠도 뺏어버렸다.

“우리 새 며느리가 황룡이 치마 속으로 들어간 태몽을 꿨지 뭔가.

이놈은 나중에 정승 자리 하나 꿰찰 것이여.”

시어머니는 손자를 업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해댔다.
몇해가 지났다. 손자도 무럭무럭 자라 알밤 같은 일곱살이 되었건만

어느 날부터인가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집 손자가 커갈수록 제 아비는 안 닮고 뒷산 암자 돌중을 닮았다는 것이다.

새 며느리는 첫날밤을 치러 보고 새벽마다 뒷산 암자에 기도를 갔던 것이다.

손자 손을 잡고 동네를 하루에도 열바퀴나 돌던 시어머니도 두문불출이다.
어느 날 고개 넘고 개울 건너 장에 간 시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무실댁이 인사를 하는 것이다.

작은 아이는 등에 업고 큰 아이는 손을 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