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4)<죽은 건 살고 산것은 죽고>

우현 띵호와 2021. 9. 24. 22:56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54)

<죽은 건 살고 산것은 죽고>

혼인후 애 셋 낳고 십년 지나니
신랑은 얼굴 보기도 힘들어
부아가 치민 음실댁은…

음실댁은 우물가에만 가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나는 우리 신랑 때문에 못 살겠어.

밤이고 낮이고 나만 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치마를 걷어올리려 드니 말이야.”

송산댁의 즐거운 비명에 기다렸다는 듯 막곡댁이

“어제 낮에 부엌에서 연기에 코를 막고 밥을 푸는데

글쎄 애 아빠가 들어와 바지춤을 내리고 달려들지 뭔가,

한 손에 밥주걱을 들고 다른 손엔 밥그릇을 든 채 꼼짝없이 당했지 뭐야.”

모두 까르르 빨랫방망이를 놓고 배꼽을 뺐지만 음실댁은 부아가 치밀었다.

“아지매는 아제가 가끔 안아줘요?” 나이 지긋한 아지매는 빙긋이 웃으며

“너희는 안팎으로 토끼 새끼들이여. 부엌에서고 안방에서고 파르르 떨다가

나가떨어지잖아. 운우의 정, 깊은맛을 너희들은 몰라.” 아흠! 아흠!

눈을 지긋이 내리깐 아지매의 헛기침이 우물가 모든 여편네들의

주둥이를 꿰매버렸다.

음실댁이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니 땅을 치고 대성통곡하고 싶은 맘이다.

대갓집 허우대 멀쩡한 신랑한테 시집간다고 모두 부러워했건만

막상 시집을 와보니 신랑이란 게 집에서도 의관을 차려입고

사랑방에서 글만 읽고 도대체 음실댁 보기를 돌같이 보는 것이다.

별채 사랑방에 기거하며 찬모가 하루 세끼 날라주는 밥상만 비우고

밤이 돼도 안방에는 올 생각도 않으니 어떤 때는 사나흘 동안

신랑 얼굴 한번 못 볼 때도 있다.

신혼 초에는 그래도 한 장이 서는 터울로 안아주더니만 애 셋을 낳고

십 년이 지나니 본체만체다.

그렇다고 신랑이라는 위인이 칠락팔락 기생집에 드나드는 것도 아니요,

첩실 살림 차린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음실댁이 문제인가? 아니다.

처녀 때도 조신한 미인이었고 삼십 대 중반의 지금도 미색은

조금도 빛바래지 않았다. 오히려 육덕이 무르익어 색기가 온몸에서 풍겼다.

하루는 방물장수가 찾아왔다. 방물고리짝을 열어놓고 거울이며 노리개,

팔찌 이것저것 보다가 비단주머니에 들어 있는 걸 꺼내던 음실댁의 얼굴이 빨개졌다.

“마님 그것은 과부들이 찾는 겁니다.” 그것은 나무로 갈고 닦아 만든 남근, 목신이다.

음실댁이 그 물건을 사자 방물장수 노파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날 밤 음실댁은 눈물이 흘렀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차라리 힘센 농사꾼한테 시집갈 걸 그랬나….”

이 생각 저 생각에 뒤척이다 이를 꽉 물었다.

이튿날 밤, 부엌에서 목욕하고 분을 바르고 머리엔 동백기름을 바른 후

간단한 술상을 차려 들고 사랑방으로 향했다.

허진사가 부인이 안 하던 짓을 하니 흠칫 놀랐다.

음실댁이 술 한잔을 따라 올리고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이자

연거푸 석 잔의 술을 마신 허진사가 술상을 밀고 촛불을 끄고

음실댁의 옷고름을 풀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아무리 용을 써도 허진사의 남근은 일어설 줄 모른다.

음실댁은 불덩어리가 돼 허진사의 품을 파고들었지만

그럴수록 허진사의 그것은 번데기처럼 오므라들었다.

“부인, 면목이 없소.” 허진사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음실댁의 가슴을 찢었다.

“나으리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첩이 몸보신을 제대로 시켜 드리지 못한 탓입니다.”

이튿날부터 십전대보탕을 달이고 산삼과 사향을 먹였지만

두 달, 석 달이 지나도 허진사의 고개는 쳐들 기미가 없었다.

방물장수 노파가 다시 찾아왔다.

“마님이 그때 목신을 살 때 내가 짐작했지.

이 환약은 중국 천인당에서 나온 음양곽으로,

제물포에서 중국상인들로부터 어렵게 샀습니다요.”

그날 저녁, 음양곽 한 움큼을 털어 넣은 허진사는 남근이 돌덩어리가 돼

음실댁을 기절시키고 나서 가슴이 답답하다며 음실댁 목덜미에

고개를 묻더니 복상사하고 말았다.

“죽은 걸 살려놓았더니 살아있던 게 죽었네!”

음실댁이 대성통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