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0)뚱순이

우현 띵호와 2021. 9. 25. 22:58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60)뚱순이

어려서 먹세가 남달랐던 뚱순이…혼기가 차도 식욕은 여전…
어느날 돌팔이 허도사를 만나는데

사람들은 동순이를 뚱순이라 부른다.

이진사의 고명딸 뚱순이는 태어나자마자 먹세가 남달랐다.

제 어미 두개의 젖무덤을 납작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염소 젖을 한사발씩 마셔댔다.

젖도 일찍 떼더니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다섯살 적에 벌써 고봉밥을 뚝딱 해치웠다.

이진사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아 등에 업혀 장터에 가면

노리개며 색동저고리·나막신 같은 것은 본체만체, 깨엿·

갱엿·찹쌀떡·약밥 등을 닥치는 대로 입으로 넣기에 바빴다.

동순이 네살 때 사람들은 이름을 뚱순이로 갈아치웠다.

할머니는 주문을 외웠다.

“우리 동순이는 곳간이 그득한 부잣집으로 시집가야 해.

아무리 먹어도 쌀독이 축나지 않는 집으로.”

뚱순이 열일곱이 되자 품새가 대단해졌다.

등짝은 떡판만 하고 엉덩이는 가마솥이요,

목과 허리는 그저 밋밋하니 형체가 없어졌다.

팔은 또래 허벅지만 하고 제 허벅지는 또래 엉덩이 둘레다.

뚱순이에게도 혼기가 차올랐다.

“아이고 우리 아씨 얼굴이 환하게 꽃처럼 피어나네!”

문지방이 닳도록 매파가 들락날락하더니 산 넘고 물 건너

노박골의 박첨지네 셋째 아들과 혼담이 오갔다.

“허우대 멀쩡하고 부잣집 셋째 아들이라 아씨가 시집가면

호강은 떼어놓은 당상입지요.”

뚱순이 할머니가 꼬치꼬치 캐묻자 매파는 그 집 숟가락 숫자까지

세세하게 설명했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낯선 젊은이가 동네에 들어와 뛰어노는 아이 중

머리가 굵은 놈 하나를 잡고 손바닥에 엽전 한닢을 쥐여주며 귓속말을 하자

“이동순? 이동순? 아! 뚱순이. 저를 따라오세요” 하면서 아이가 앞장서고

젊은이가 두리번거리며 뒤따랐다.

“저기 개울에서 빨래하는 여자들 있잖아요, 오른쪽 세번째가 뚱순이예요.”

이튿날 매파가 뚱순이 할머니를 찾아와 한숨을 길게 쉬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동순아씨 허리통을 좀 줄여야 할 터인데….”

아닌 게 아니라 할머니 눈에도 손녀의 몸매는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사실, 뚱순이는 몸뚱아리가 우람해서 탈이지 얼굴은 주먹만하고

이목구비는 또렷하다.

뚱순이는 할머니 손에 이끌려 남인당한의원에 가서 밥맛 떨어지는 약을

한재 지어와 달여 먹으며 밥은 하루 두끼로 줄였다.

스무날 약 한재를 다 먹어도 밥맛이 떨어지기는커녕 식욕은 더욱 맹렬해졌다.

삼십리 떨어진 대처에 가서 살 빠지는 약 한재를 다시 지어다 먹어봐도

뚱순이의 넉넉한 허릿살은 빠질 기미가 없다. 돼지감자를 달여 마셔라,

쇠비름을 말려 가루를 내어 먹어라 …

온갖 민간처방도 효과 없기는 마찬가지다.

고뿔로 열이 펄펄 나도, 학질에 걸려 삼복에 이불을 덮어써도

뚱순이의 식욕은 떨어질 줄 모든다.

한끼만 굶어도 세상이 노랗고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밥을 두그릇씩 비워 제어미로부터 등줄기를 맞으면 시집을 안 가겠다고 떼를 쓴다.

온 집안이 한숨으로 지새우는데 주막집 주모가 쪼르르 달려왔다.

“삼년 만에 허도사가 왔는데 살빼는 건 책임질 수 있답니다.”

주모한테 반해서 잊을 만하면 찾아와 주막집에 또아리를 틀고

점도 보고 관상도 보고 때로 병도 고친다고 큰소리치는 돌팔이 허도사 앞에

뚱순이와 할머니가 앉았다.

뚱순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육갑을 짚어보고 손금을 보더니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한다.

“살 뺄 필요 없어, 식욕 억제할 필요 없어.

시집갈 필요도 없어. 맛있는 거 실컷 먹어.”

할머니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요?”

“당신 손녀는 시월상달 보름날 죽을 팔자야.”

뚱순이네 집은 눈물바다가 되고 뚱순이는 혼쭐이 빠져 드러누웠다.

석달이 쏜살같이 흘렀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상달보름,

온 집 안에 촛불을 밝혀두고 아무도 말 한마디 없이 정적만 흐르는데

삼경이 지나고 사경이 되어 꼬끼요~ 닭이 울었다.

보름날이 지난 것이다. 뚱순이는 죽지 않았다. 그녀는 반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