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1-(17)

우현 띵호와 2021. 9. 26. 23:39

방랑시인 김삿갓 01-(17)
* 두견새야 너는 어찌 그리도 박정해서, 봄날 지는 꽃만을 울어주느냐.*

"대사님 , 갑자기 술 이야기는 어째서 하십니까 ? "

사실 술 생각이 나지 않는 바는 아니었지만 입석암을 훌쩍 떠나고

싶지 않아서 참고 있었던 그였다.

그런데 돌연 노승이 술 이야기를 꺼내자 마치 잊고 있었던

정든 여인의 이름을 듣는것 같아았다.
그러나 어째서 갑자기 술 이야기를 거내 놓는지 노승의 마음이 궁금했다.

"허허허 , 난 자네의 마음 속을 환히 알고 있네.

중이 되어가지고 자네에게 술 대접을 할 수는 없는 일이고

마침 자네가 술을 실컷 마실 좋은 일이 생겼네."

김삿갓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수 없었다.

"입석봉 동쪽으로 조금 돌아가면 그럴듯한 절이 하나 있네.

내 지금 그 곁을 지나왔는데 천하에 내노라 하는 시객들이 모여

시회를 열고 있더구먼. 자네 심심할 것이니 거길 다녀오게

맛있는 술이 생길걸세. 그렇다고 너무 취해 돌아오진 말고."

김삿갓은 비로소 노승의 말을 알아 들었다.
"예. 시회가 열렸다면 구경을 가야지요.

얼마나 쟁쟁한 시객들이 모였는가 궁금합니다."

"이사람, 시객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술이 궁금하겠지 ? "
두사람은 너털 웃음을 웃었다.
"어서 다녀 오게나."
"예, 그럼 다녀 오겠습니다."
김삿갓은 술도 술이지만 시회를 열고있는 시객들의 수준이 더욱 궁금하였다.

그는 가파른 길을 조심하면서 입석봉 기슭에서 동편으로 휘돌았다.
노송이 우거진 가운데로 제법 큰절이 보였다.

절 입구 시내위로 누각이 올라서 있는데 선비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김삿갓은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갔다.
누각 아래로는 근처 아낙네들 인듯 서너 여인들이 푸짐한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다.
"허허, 호화판 시회로구나."
김삿갓은 공연히 신명이 났다.

누가 아는체도 하지 않는데 그는 성큼 누각위로 올라갔다.
"뉘시오 ? "

시객들은 불쑥 나타난 김삿갓을 힐끔 쳐다 보았고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예, 천하의 고명하신 분들께서 시회를 열고 계시다기에 구경차 왔소이다.

물리치지 마십시오."

선비들은 삿갓을 쓰고 차림새가 허술하여 혹 강호를 떠돌며

어설픈 글로 술이나 빌어먹는 그런 부류로 알았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이 젊은 과객에서는 냉큼 얕볼수 없는

이상한 힘이 있는 것 같아 감히 물러가라는 말을 못했다.
선비들은 마냥 외면을 하였다.

김삿갓은 물러가라는 말이 없자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이 시를 가다듬고 있는 시제를 보니 가을이었다.
허허, 벌써 가을이던가 ?
김삿갓은 먼 산봉우리를 쳐다 보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칠월 하순. 평지 같으면 노염(老炎)이 기승을 부릴 때 인데

이곳은 지대가 높은 산중이다 보니 벌써 찬서리가 내린 듯 ,

먼 봉우리 중턱이 붉으스럼하게 보인다.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김삿갓의 가슴에는 가을에 대한 시상과 더불어 천만가지 감회가 아련히 깔렸다.

이런 김삿갓의 모습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선비들이 자기들 끼리 수근거린다.

"보아하니 사이비 과객은 아닌듯 하니 글을 한번 지어보라고 하면 어떠하오 ?

듣자하니 입석봉 시승을 이겼다는 젊은 과객도 삿갓을 쓰고 다닌다고 하는데

저 사람이 장본인인줄 뉘 알겠소 ?"
"그 삿갓을 쓴 과객은 지금 입석암에 눌러 있으면서 노승과 더불어

시선(诗仙)의 경지를 즐기고 있다는데 여기에 나타날 일이 있겠소 ?"
"하지만 저 사람 거동으로 보아하니 뭐가 나올법도 하니 글제를 주어 봅시다."
선비들은 구수회의 하듯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후 한사람이 김삿갓에게 말을 던졌다.

"여보시오 보아하니 시상을 가다듬고 있는것 같은데 한수 지어 보겠소 ? "

김삿갓은 그렇지 않아도 시를 읊조리고 있던 차였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예, 불초에게도 기회를 주신다니 기쁘기 한량 없습니다. 글제는요 ? "

"푸르던 나무잎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으니 이제 머지않아

낙옆이 짙게 되지 않겠소 .
떨어지는 잎을 보고 한수 지어보소. "

"예"
김삿갓은 간단히 대답했지만 이미 머리속에서는

어느새 한편의 시가 무르익었다.
"그럼 지필을 좀 빌려주실까요 ? "

"옛수 ! "
한 사람이 화선지와 붓을 내주었다.

김삿갓은 필을 들기 무섭게 싯귀를 죽죽 써내려갔다.

소소슬슬 우제제. 매산매곡 혹몰계
(蔬蔬瑟瑟 又斉斉. 埋山埋谷 惑沒溪 )
<낙엽이 쓸쓸히 휘날려. 산에도 계곡에도 시내에도 떨어지네>

여조이비 환상하. 수풍지자 각동서
(如鸟以飞 还上下. 隨风之自 各东西 )
<새가 나는 듯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바람에 휩슬려 사방으로 흩어지네>

녹기본색 황유병. 상시구록 우갱처
(綠其本色 黃猶病. 霜是仇綠雨更凄 )
<푸른것은 나무의 본 얼굴이고 누런 것은 병색이라.

서리도 원수이지만 가을비는 더더욱 처절 하구나>

<두자이하 정박물. 일생하위 낙화제
(杜子爾何 情薄物. 一生何为 落花啼 )
<두견새야 너는 어찌 그리 박정해서.

일생을 봄 날에 지는 꽃만을 울어주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