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1-(20)* " 眼中七子 皆为盜"

우현 띵호와 2021. 9. 26. 23:41

방랑시인 김삿갓 01-(20)
* " 眼中七子 皆为盜"

김삿갓은 외금강에 이르러 바다와 접한 금강산의 또다른 풍치를 마음껏 감상했다.
이제 계절은 중추(仲秋)로 접어들어 산중의 바람은

얇은 베옷을 헤집고 들어와 오한을 느끼게 한다.
그는 마침내 발길을 북쪽으로 돌렸다.

망망한 바다를 보니 막혔던 속이 확 트이는것 같으면서도

시름은 파도를 타고 더욱 간절하게 밀려오고 있었다.

외금강에서 함경도 땅으로 가는 길은 바다와

육지가 숨박꼭질을 하는 길이었다.
바다를 끼고 나란히 길을 걷다가도 고개를 하나 넘으면

바다는 갑자기 먼곳에 있었다.
이렇게 해금강이라 일컬어지는 외금강을 지나 북으로 발길을 계속하자

강원도 땅이 다하고 함경도 경내로 들어서게 되었다.

처음으로 들어선 큰 읍내는 통천(通川) 이었다.
통천은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삼백여호의 큰 읍이었다.

읍내 저자거리를 지나 어느 소슬대문이 거만하게 솟아 있는 집 앞에 당도하였다.
무슨 잔치가 있는지 사람들이 분주하게 대문을 들낙거리고 울 안에서는

기름 냄새와 더불어 음식냄새가 풍겨 나오는데

배가 고픈 김삿갓의 회를 요동시켰다.
김삿갓은 마침 다가오는 사람이 있어 냉큼 물었다.

"이집에 무슨 경사가났소이까 ? "
"네, 윤진사 아버지의 회갑잔치라오."

김삿갓은 올커니 했다. 밥과 술을 넉넉히 얻어먹겠구나.

그는 다짜고짜 소슬대문으로 들어섰다.

"당신 누구요 ? "
하인인 듯한 사내가 문간 안에 서 있다가 사납게 소리친다.

"앗따 , 그사람 간떨어지게 만드네. 누구긴 누구야.

윤진사 춘부장님 수연에 참석하러 왔지."
김삿갓이 눈을 부라리며 응수하자 사내는 주춤했다.
그리곤 살펴본 꼬락서니로 보아 윤진사쪽을 잘아는 망쪼들은

양반 껍데기 쯤으로 생각되어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넓은 대청에는 잔칫상이 호화스럽게 차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로 회갑을 맞은 늙은이가 의관을 갖추고 점잖을 빼면서 앉았고 ,

맞은 편에는 이지방에서 행세깨나 하는 상객들이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대문간 곁에는 아무렇게나 둘러앉은 걸인에 가까운 부류들이 있었다.
좌중을 둘러본 김삿갓은 기왕에 얻어 먹을것,

상객들이 앉은 대청위로 성큼 올라섰다.

"아니, 어디라고 올라서는게요 ! "
김삿갓의 행색을 마뜩하지 않게 쳐다보던 하인 한 놈이

김삿갓 뒤통수에 대고 큰 소리를 질렀다.
일순 , 좌중에 모두는 김삿갓과 하인을 향했다.
"아니 무슨일인데 그러냐 ?"
윤진사가 큰 소리가 나자 점잖게 참견 했다.

"글쎄 걸인 주제에 대청으로 오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

그래 소인이 끌어내리는 중입니다요."

"오늘 같은 날 너무 큰 소리 내지 말고 술잔이나 먹여 보내도록 하여라."

김삿갓은 기가 막혔다.

행색은 걸인 행색을 하였지만 막상 걸인 취급을 받고보니

기막히기도 하고 울화도 치밀었다.

그는 점잖을 빼는 윤진사가 얄미워 그쪽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인도인가 부대인, 주인인사 난위인"
(人到人家 不待人 , 主人人事 难为人 )
<즉 사람이 집에 찾아왔는데도 사람 대접을 안 하니

주인의 인사는 사람답지 못하구나 하는 말이었다.>

통천 지방에서는 글줄이나 읽는 윤진사라

삿갓의 이 말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음 ? "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김삿갓을 쳐다 보았다.

그러나 김삿갓은 이미 홱 돌아서서 대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여봐라 저분을 모셔오너라."

"저 걸인을요 ? "
하인놈은 영문을 몰라 주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놈아 내가 보기에는 보통 걸인이 아닌것 같다.

냉큼 가서 불러 오너라."

하인놈은 궁시렁 거리면서 김삿갓의 뒤를 따라 문간으로 뛰어갔다.
"윤진사, 무슨 일이오 ? "
술을 마시느라 삿갓의 말을 못들은 손님이 물었다.

"초라한 과객인데 잘하면 좋은 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소이다."
"초라하다니 행색은 어떻습디까 ? "
"허름한 무명 두루마기에 삿갓을 썼습니다."

"그래요 ? "
"아니 그런 과객을 알고 계시오 ? "

"듣자하니 삿갓을 쓰고 다니는 젊은 과객이 금강산 일대에서

크게 이름을 날리고 있다더군요.

금강산이라면 숨어서 공부하는 인재나 고승이 많을 것인데

그들보다 윗질이라 하더이다. "

풍문으로 김삿갓의 행장을 들은 모양인데 ,

윤진사에겐 초문이었다.

"금강산이 여기서 어디라고 그 글 잘하는 과객이 왔겠소 ,

삿갓이야 누구든 쓰면 될것이고."

한편 김삿갓은 큰 길을 향해 걷고 있었다.

배를 주릴지언정 말석에 끼어앉아 콩나물 대가리를 씹고 십지는 않았다.

"이보시오 ! "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알아줄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낯선 곳에서

설마 자기를 부르랴싶어 삿갓은 그냥 걸었다.

"여보시오 삿갓쓴 양반."
그제야 김삿갓은 뒤를 돌아다 보았다. 아까 그 하인놈 이었다.

김삿갓은 울컥 분통을 터트렸다.

"뭣 때문에 나를 불러세운단 말이오 ? "
김삿갓은 조금전 분풀이를 하듯 눈을 부라리며

뒤따라온 하인놈을 위 아래로 훝으며 쳐다보았다.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 나으리께서 댁을 모셔오랍니다."
"나를 ? "

"어떤 일인줄 나도 모르겠지만 하였튼 가십시다."
김삿갓은 아까 자기가 내뱉은 말을 윤진사가 들였으려니 생각했다.
그리고 하인을 따라 다시 윤진사 집으로 들어갔다.

"어서 올라오시오. 아까는 대접이 소홀했던 것 같소.

너무 괘념치 마시고 술이나 한잔 드시오."

김삿갓은 대청으로 올라 말석에 자리를 잡았다.
"보아하니 글께나 아시는 선비신듯 한데 이런 자리에서는

의례 시 한 수 쯤은 오갈법 하지 않겠소 ?
음식을 드시면서 천천히 글놀이나 해봅시다."

윤진사는 호기심이 동해 이렇게 서두를 꺼내놓았다.

음식상이 새로 차려져 나왔다.

김삿갓은 우선 먹고 볼 일이라고 생각하고 사양하지 않고

이것저것 배불리 먹고 마셨다.

"애, 지필묵을 가져 오너라"
윤진사가 아들에게 명하자 장성한 아들 하나가 냉큼 가지고 왔다.

"저 선비께 드려라."
삿갓 앞에 지필묵이 놓여졌다.

"그럼 , 내 노부님을 위하여 수연시 한 수만 지어 주십시오."
사실 윤진사는 뭣인가 속에 들은체 하고 있는 삿갓을 반신반의 하고 있었다.

따라서 수연시를 청해 삿갓의 실력을 알고 싶었다.

"음식을 대접 받았으니 그 값을 해야지요.

그냥 돌아가면 진짜 걸인이 되지 않겠소이까 ? "

삿갓은 필을 들었다.
그리고 생각도 할 필요 없다는 듯 , 첫 귀절을 달필로 써 놓았다.

"피좌노인 불사인"
(彼坐老人 不似人)
<저기 앉은 노인은 사람같지 않구나.>

"뭐라고 ? "
윤진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기 부친을 가르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람같지 않다고 썼으니 ,

이런 모욕이 또 어디 있으랴. 손님들도 글씨를 넘겨 보더니 쑥덕쑥덕 거렸다.
삿갓은 일부러 보란듯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
다음 귀절을 썼다.

"의시천상 강신선"
(疑是天上 降神仙)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오신 신선만 같구나.>

이 글을 보자 울그락푸르락 하던 윤진사 얼굴이 바보처럼 해맑아졌다.
"하하하하..이것 참 기막히군 ! ..나는 첫 귀절을 읽고 깜짝 놀랐구먼,

내가 나이를 들었어도 아직도 성질이 괄괄해서 큰 일이란 말씀이야."

좌중의 분위기도 한결 부드럽게 풀어졌다.
김삿갓은 빙그레 웃으면서 다음 귀절을 써내려 갔다.

"안중칠자 개위도"
(眼中七子 皆为盜)
<눈 앞에 있는 아들 일곱은 모두 도둑놈이다.>

좌중은 다시 한번 난리가났다.
"당신 누구보고 도둑놈이라고 하는 거요."

"음식을 좋게 얻어 먹었으면 고이 삭힐 일이지 재는 왜 뿌리는거야 ? "
윤진사 아들들이 벌떼같이 일어섰다.
"가만 있어라. 글이란 완성을 한 후 평하는 법이다."
윤진사는 소매자락까지 휘저으며 성난 아들들을 만류했다.

"참 사람들 성질도 급하구료."
김삿갓은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결구를 써놓았다.

"투득천도 헌수연"
(偸得天桃 献寿宴)
<몰래 천도를 훔쳐서 수연상에 바쳤구나.>

즉 ,효성을 나타낸 글이었다.
"하하하 내 그럴줄 알았소이다.

정말 본인으로선 따를 수 없는 명시 올시다 !
내가 틀림없이 ,사람을 보기는 잘 보았지."
윤진사는 입이 귀에 걸릴정도로 웃으며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