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1-(22)

우현 띵호와 2021. 9. 26. 23:42

방랑시인 김삿갓 01-(22)
*김삿갓의 수작



아침을 거르고 나선 길이라 오전이 지나니 몹시 시장기가 들었다.
게다가 날씨마저 춥고보니 따듯한 불기운이 더욱 그리웠다.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며 시름없이 걷고있는데 삼거리가 나타났다.
오른쪽 길 저만치에 주막이 보였다.
김삿갓은 반가운 마음에 그쪽으로 행했다.
사실 , 수중에는 엽전 한 닢 없지만 그곳으로 가면 무엇인가 생길것 같았다.

주막은 마당도 넓고 마루도 넓었다. 한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반쯤 열려있는 사립문으로 성큼 들어섰다.
"게 아무도 없소 ? "
비록 가진 돈은 없었지만 우선 호기롭게 주모를 찾았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다시 한번 주모를 불렀다.
잠시후 안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여인 하나가 나타났다.

삼십이 넘었을까, 아니면 조금 못 되었을까 ? 첫 눈에 ,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어찌 오셨어요 ? "
여인은 시답지 않게 대꾸했다.
"주막에 나그네가 찾아 온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거 무슨 말을 그리 하시오 ?"
김삿갓은 마루에 걸터 앉으며 여유있게 수작을 부렸다.
"미안하지만 요즘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장사를 안 하신다니 , 외상술이라도 먹어대는 건달이 많습니까 ? "
"그런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장사를 하지 않으니 다른 집으로 가세요.
여기서 한마장쯤 더 가시면 좋은 주막이 있습니다."
말을 마친 여인은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주막이 있든 없든 상관 없소이다.

댁이 주막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왔을 것이니까요."
여인은 무슨 말인지 언듯 이해하지 못하고 돌리려던 몸을 멈추고

김삿갓을 바라 보았다.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보시지 마시오.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요.

다만 문전걸식을 하면서 떠돌아 다니는 사람입니다.

어차피 주막을 찾더라도 돈 주고 술을 마실 형편은 못되는 몸이니 ,

찬술 한사발이라도 얻어 마시면 고맙겠습니다."

"보셔요 손님. 우리집에는 지금 일이 있어 손님을 대접할 형편이 못 되니

훗날 다시 오신다면 그때는 잘 대접해 드리지요."

여인의 말씨는 차분하면서도 위엄이 서려 있었다.

주막이라면 의례 주모가 있어 적당히 수작을 부려도

슬그머니 받아주기 마련인데, 주모같지도 않은 이 여인은

미모로 보나 위엄있는 행동거지를 보나 ,

뭇 사나이들에게 술이나 팔고 있을 여인같지가 않았다.

해서 김삿갓은 더욱 흥미를 느꼈다.

"나는 떠돌아 다니기는 하지만 한번 지나간 곳을 다시 들리지 않습니다.

후일 다시 찾아오라 하셨지만 다시 뵐 일이 없을것 같으니

오늘의 인연은 술 한잔으로 끝내시면 되겠습니다."

여인은 김삿갓의 요모조모를 뜯어보고 있었다.

차림새는 그렇다치고 , 생김새나 말씨가

그냥 허투로 떠돌아 다니며 걸식하는 낭인은 아닌것 같았다.

(혹시 암행어사 ? ... )

여인의 상상은 이렇게 비약 되었다.
새카만 눈썹아래 자리잡은 두눈은 범인과 다른 총명한 정기가​ 서려있었다.

여인은 속 마음을 감추고 퉁겨보았다.

"미안합니다만 지금 머슴도 없고 주모도 없어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서 떠나심이 좋을것 같습니다."

여인의 말을 듣고 김삿갓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속으론 과연 생각대로 주모가 아니었구나 하고

자기의 추측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주막에 주모가 없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 "
김삿갓은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만 무슨 수가 날것 같아서였다.

"저를 주모로 알고 계시는 모양인데

이 주막을 맡아서 장사하는 분은 따로 있어요.
그러니 전들 어쩌겠어요 ?"

"허 참 딱하게 되었소이다. 실인즉 아침도 거른터이라

이제는 발길을 옮길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따듯한 숭늉이라도 주셨으면 합니다만 ..."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여인은 갑자기 수심어린 얼굴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사정이 정 그러시다면 대접할 것은 없지만 저쪽 방으로 드십시요.

시장기나 면하게 해드리지요."

"고맙소이다."
김삿갓은 일이 잘 되어 간다고 내심 기뻐하면서

여인이 가르킨 마루가 이어진 방으로 성큼 들어갔다.

방은 어제밤 사람이 유 했던듯 아랫목은 따듯했고 훈기가 돌았다.
그는 바람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쭉 폈다.

이사이 여인은 안채로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곡절이 있는 집 같았다.

우선 사람이 보이지 않는것 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한참후에 여인이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김삿갓은 깜짝 놀라며 얼른 일어서 밥상을 받아 잡았다.
"차린 것은 변변치 않으나 시장하실 터이니 어서 드시지요."

김삿갓은 밥상을 앞에 놓고 공연히 가슴이 뛰었다.
조금전에 밥상을 건네 받을때 여인의 머리와 자신의 머리가

가까워지면서 여인의 야릇한 체취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여인은 보기드문 미인이 아닌가 ?

집을 떠난 이래로 아내말고 이토록 젊고 예쁜 여인과

마주 대하는 것은 처음일성 싶었다.

"고맙소이다."
김삿갓은 정중히 예의를 차리고 수저를 들었다.

차린것 없다는 여인의 말과 달리 소반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쌀밥이 주발에 가득 얹혀 있고 갖 끓인 동태국까지 놓여 있었다.

"음식 맛이 이집 마나님 성품을 닮은 모양입니다."
동태국을 한숟가락 입에 떠 넣은 삿갓이 수작을 걸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 "
"정갈하고 감칠맛이 있어 해본 소리입니다."
여인은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디서 오시는 길이세요."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문쪽으로 옷깃을 여미며 앉은 여인이 물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 오는지 부인은 아십니까 ?
소생은 바람과 같은 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