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63) *불당골에서의 음담패설 (上)

우현 띵호와 2021. 9. 30. 23:07

방랑시인 김삿갓 (163)
*불당골에서의 음담패설 (上)

"자네들이 순천댁에게 맡겨 두었던 돈은 이자리에서 내가 돌려 주겠네.

자네들은 이 돈을 돌려 받거든 장사를 잘해 가지고

모두가 부자가 되도록 하게.

끝으로 자네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번처럼 자네들 사이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의 원인은,

자네들이 서로간에 친구를 믿지 못한 데서

일어난 불상사였다고 나는 생각하네.

친구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친구를 도둑놈으로 만들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자네들 자신도 도둑놈이 될 수 있다는 말일세.

우정은 돈으로 살수 없는 귀한 것이네.

서로간에 믿고 살았으면 이번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니,

이제부터는 서로를 믿고 살아가도록 하게.

믿음이 없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생은 부생공자망

(浮生空自忙: 허망하게 떠 도는 인생살이)에 그칠 것이네"

네명의 장사꾼은 한결같이 고개를 수그린채 아무 말도 못했다.
김삿갓은 그들을 돌려 보내고 , 자기도 길을 떠나려고 하였다.
그러나 길을 떠나려하자,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 하였고,

마을 노인들조차 길을 떠나려는 김삿갓을 한사코 붙잡는 것이었다.

"선생은 우리 마을에 은인이시오.

순천댁을 살려 준 선생을 어떻게 비가 오는데 떠나게 할 수 있겠소.
떠나시더라도 비가 개거든 떠나십시오." 고맙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꼼짝 못 하고 비가 개기를 기다릴밖에 없었다.
그러나 비는 좀체 개지 않았다.

이러한 와중에 또 다른 재미가 생겼으니 그것은,

마을 노인들이 저녁이면 제각기 술병을 들고

김삿갓이 지내는 사랑방으로 찾아와 술잔을 나눠가며,

구수한 덕담을 나누는 것을 커다란 낙으로 알고,

김삿갓이 계속 이곳에 머물러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사랑방에 모인 마을 노인들은 체면 불고하고 할 소리 못 할 소리 주책없이

지껄여대면서, 김삿갓과 함께 배를 움켜잡고 웃기도 하면서 밤을 보내는데,

그것은 인정미가 철철 흘러 넘치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러기에 김삿갓도 그들과 어울려 덕담을 지껄여 가면서,

어느날 밤에는 노인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이런 말도 하였다.

"노인장들께서 재미나는 이야기를 너무도 많이 들려 주셔서

저녁마다 이렇게 웃어 쌓다가는 숫제
허리가 끊어져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노인들의 덕담은 천태만상이었다.

개중에는 점잖은 사람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음담패설도 많았으나,

때로는 두고 두고 음미해야 할 의미있는 교훈담도 적지 않았다.

듣던중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향장 영감님이 들려 준 였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으로 부터 이십여 년전,

불당골 마을에 서당이 처음으로 생겼을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마을에는 훈장이 될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훈장을 다른 지방에서 모셔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이백 리나 떨어져 있는 해주에서

훈장을 모셔오게 되었는데 ,

훈장의 이름은 황금색(黃金色)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황금색 훈장은 눈병이 있어서 언제나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고 다녔으므로, 마을에 어떤 노인이 어느 날 훈장에게 농담삼아,

"훈장의 눈은 언제나 족제비 똥 누듯 하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요 ? "

하고 말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농담이 마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훈장을 "황서랑(黃鼠狼)" 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족제비를 한문으로 이라고 하는데,

훈장의 성씨가 마침 인데다가, 눈이 보였으므로,

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황서랑은 성품이 소심한데다가 마음은 워낙 착해서,

누구하고도 다툼 한 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모르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신에 비해 젊고 얼굴이
예쁜 마누라가 외방 남자와 가끔 바람을 피우는 일이었다.

마누라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어느 남편에게나 열받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훈장 이 만약 성미가 괄괄한 사내였다면,

바람을 피우는 마누라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서 ,

한 여름에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질은 물론 ,

바람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까무러 칠 정도로,

다시는 바람을 피우지 못하게 마누라의 주리를 틀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훈장 황서랑은 마누라를 인정사정 없이 두들겨 팰 정도로

모진 성품이 안 되었기에, 언제나 말로만 마누라를 타일러 왔다.

그러니까 마누라는 남편을 얕잡아 보고,

바람 피우는 버릇을 좀처럼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남편도 마누라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것은 아니기에,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훈장이 어느 날 고향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기자,

마누라의 일이 새삼스럽게 걱정 되었다.

그것은 자기가 집을 비운 때 ,

마누라가 사잇서방을 어엿하게 집에까지 불러들이지도

모르겠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훈장은 며칠을 두고 고민을 하던 끝에,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내가 갑자기 볼일이 생겨 고향에 며칠 다녀와야 하겠네.

내가 없는 사이에 임자가 무슨 짓을 할지몰라,

여간 걱정스럽지않네그려. 이 일을 어찌 했으면 좋겠나 ? "

마누라는 그 말을 듣고 남편을 원망하듯, 이렇게 나무랐다.
"볼일이 있거든 얼른 다녀 오세요. 나 혼자 있기로 무슨 걱정이예요.
아무 걱정 말고 빨리 다녀오기나 하세요."
"아니야. 암만해도 임자의 행실을 믿을 수가 없어."
마누라는 그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당신 마누라를 그렇게나 못 믿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나를 그렇게나 못 믿겠거든, 차라리 내 손과 발을 꽁꽁 묶어 놓고

다녀오시면 될 게 아니겠어요 ? "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바람을 피우는 여자일수록 머리가 영리한 법이어서,

엔간한 남편은 대꾸하는 마누라의 말을 당해
내지 못하는 법이다.

훈장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설래설래 내저었다.
"예끼 이사람아 ! 손과 발을 묶어 놓으면, 밥은 어떻게 지어 먹고

뒷간은 어떻게 다닐 것인가 ? "

훈장은 마누라를 향해 이렇게 말을 하는 순간

번개같이 머리를 스치는 묘책 하나가 떠 올랐다.